#성인 ADHD검사#생존법#양육태도
아이의 ADHD 진단을 통해 부모도 ADHD 진단을 받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7, 80년대에는 ADHD가 낯설었다.
“애들이 다 그렇지 뭐”라는 사회 인식이 컸기 때문에 주의력이 부족하고 활동적인 아이들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의 부모들은 부모가 되어서야 아이의 진단을 통해 본인도 ADHD 성향이 있음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아이가 ADHD 진단을 받고 나 스스로를 의심해 보면서 ‘성인 ADHD’라는 것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소아 때 ADHD에 대한 적절한 치료가 이뤄지지 않으면 50% 이상이 성인기에도 증세가 이어진다고 한다.
하지만 성인은 본인의 증상을 숨기거나 검사에 솔직하지 않아서, 혹은 우울증 등과 구분이 어려워 진단이 쉽지 않다고 한다.
나는 내가 ADHD인지 아닌지 확인해야만 했다.
그래야만 실타래같이 엉켜버린 내 머릿속과 답답한 마음이 풀릴 것 같았다.
관련 서적들을 읽고 인터넷 카페에도 가입하고 자가검사도 해봤다.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난 ADHD가 분명했다.
하지만 남편과 회사 동료들은 “나이 들면 다 깜빡하고 그래. 너만 그런 게 아니야”, “그렇게 정리 정돈을 잘하는데 네가 무슨 ADHD?”라며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다.
‘내가 확증편향인 걸까?’
하지만 그럴수록 더 알고 싶었고 확실히 하고 싶었다.
성인 ADHD 전문의를 물색해 집에서 지하철로 1시간 거리의 개인병원을 찾아가 문진을 했다.
“말씀하신 증상들을 봤을 때 집중력 결핍에 취약성은 있지만, ADHD는 아닌 것으로 보이니 검사 안 받으셔도 될 것 같은데요? 겉으로는 전혀 알 수 없었는데 40대 중반에 ADHD 진단받으신 남자분이 계셨어요. 그분은 지능이 굉장히 높아서 그동안 커버가 됐던 거고요. 어떻게 하시겠어요?”
“멀리에서 온 거라 온 김에 검사받아 볼게요.”
간호사와 함께 검사실에 들어가 헤드셋을 끼고 컴퓨터 의자에 앉았다. 간호사는 검사방법을 알려주었다.
특정 이미지를 보았을 때 컴퓨터 키보드 스페이스 바를 누르는 검사
처음 해보는 검사라 매우 흥미로웠다. 더구나 시각정보 구별에 강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 난 자신감에 넘쳐 검사를 이어 나갔다.
특정 소리가 들렸을 때 스페이스 바를 누르는 검사
종합건강검진 때 해본 청력검사와 유사해서 이 검사 또한 무리 없이 진행했다.
X가 아닌 도형이 나왔을 때 스페이스 바를 누르는 검사
검사를 시작한 지 20분 이상 지났을까?
이때부터 집중력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점점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스페이스 바를 누르기도 하고 못 누르기도 했다.
가로로 배열되어 있는 5개의 사각형 중 정 가운데 사각형이 뚫려 있는 방향의 컴퓨터 방향키를 누르는 검사
‘Y도 이 검사를 한 거겠지?’ 딴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딴생각을 하다가 정신을 붙잡아 다시 검사로 돌아오게 하긴 했지만, '자꾸 왜 이러지?' 싶었다.
여러 종류의 소리와 도형을 동시에 보여주고 직전에 나온 소리 또는 도형과 하나라도 일치하면 스페이스 바를 누르는 검사
이 영역에서는 다시 집중해서 열심히 하려고 했는데 난도가 높았다. 눈, 귀, 머리, 손이 따로 움직였다.
맞다.
이것이 바로 2년 전에 Y가 풀배터리와 함께 했던 종합 주의력검사(CAT : Comprehensive Attention Test)라는 것이었다. 컴퓨터로 검사를 진행해서 결과를 바로 듣고 결과지도 받을 수 있었다.
원하는 시각, 청각 자극에 반응할 수 있는 능력
→ 시각, 청각 모두 정상
반복되는 자극, 행동에 일정한 반응을 유지하며 충동성 억제하는 능력
→ 정반응시간 평균 저하
간섭을 무시하고 필요한 자극에 반응하는 능력
→ 오경보 오류 저하
두 가지 이상의 자극을 동시에 처리할 수 있는 능력
→ 정상
검사 결과지를 본 의사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목표자극에 반응하는 속도(정보처리 속도)가 평균보다 느리고, 비목표자극에 반응을 억제하는데 어려움(인지적 충동성)이 있다는 결과였기 때문이었다.
“제가 OO님을 본 것과 검사결과가 다른 것이 의아하네요. 성인 ADHD는 지능이 높을수록 늦게 나타납니다.
아이 종합심리검사받을 때 부모님 MMPI(Minnesota Multiphasic Personality Inventory : 미네소타 다면적 인성검사)도 함께 하셨죠? 상세내용을 봐야 좀 더 자세한 진단을 내릴 수 있을 것 같은데, 검사결과 가지고 또 오실 수 있나요?”
병원까지 먼 거리지만 ‘이제야 진짜 나를 알 수 있게 될 것만 같은 기대감’에 MMPI 결과지를 가지고 다음 날 다시 내원했다.
나의 MMPI 결과지를 본 의사는 “적응장애 치료를 받고 계시다고 하니 어느 정도 치료되면 다시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근데 제가 진료한다면 ADHD 약을 소량 추가할 겁니다.”라며 돌려보냈다.
복잡한 내 마음의 원인에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사라졌고 의구심을 가진 채 1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심리상태도 많이 안정되었다고 느껴 성인 ADHD 관련 책을 많이 지필 한 전문의가 있는 K종합병원을 찾았다. 전임의로 보이는 사람과 1시간 넘게 문진을 했다.
성장환경에서부터 현재까지 살아온 전반의 이야기를 하던 중 전임의의 반응이 심상치 않은 포인트를 느꼈다.
20년간, 자면서도 자유로울 수 없었던 사건이었다.
때는 고등학교 3학년 12월 어느 날,
예술고등학교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나는 수능과 논술을 보고 난 이후 실기전형 준비를 위해 미술학원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던 중 낯선 번호의 전화를 받았다.
“○○○ 학생인가요?”
“네. 누구세요?”
“전 서울대학교 조교인데요. ○○○ 학생 면접 순서가 됐는데 어디에 있죠?”
“면접이요? 전 내일로 알고 있는데요.”
“오늘이에요. 기다려줄 테니 지금 올 수 있어요?”
어떤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면접을 위해 준비해 놓은 교복을 갈아입고 갈 겨를도 없이, 물감 묻은 통 넓은 청바지를 입은 채로 학원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택시를 잡아타고 40분 거리의 학교로 향했다.
폭설이 내려 질퍽하고, 한겨울이라 어둑한 남부순환도로를 달리며 엄마와 전화통화를 했다.
“엄마가 갑자기 편찮으셔서 병원에 다녀오는 바람에 늦었다고 둘러대.”
“……”
그러는 사이 가로등이 켜진 캠퍼스에 도착했다.
대부분의 관계자들은 퇴근하고 조교 한 명과 노(老) 교수 한 명만이 면접실에 앉아 있었다.
'도대체 서울대 면접에 지각한 지원자는 어떻게 생겼나. 얼굴이나 보고 가자.'라는 표정으로.
얼마나 긴장했던지 의자에 앉은 이후 기억은 전혀 나지 않는다.
다만, 이후 20년간 이따금씩 눈이 무릎까지 쌓인 학교 운동장을 허둥지둥 뛰어 가로지르는 꿈을 꾸었고 그런 날이면 꼭 안 좋은 일이 생기곤 했다.
‘어떻게 면접 날짜를 잘못 볼 수가 있지?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무엇인가에 홀렸었다고 밖에 설명할 수 없었던,
영원히 미스터리로 남을 것 같았던 사건.
지금 생각해보니 입시요강을 대충 본,
내 주의력 결핍으로 인해 일어난 일이 아니었을까 싶다.
드디어 담당 교수를 만났다.
스스로를 ADHD가 아닌가 의심하기 시작했을 때 읽고 도움을 받은 <나는 왜 집중하지 못하는가>의 저자, 반건호 교수였다.
“1년 전에 검사는 우울증이 나아지기 전이라 결과에 영향을 미쳤을 겁니다. 지금은 상황이 나아졌으니 정밀검사를 다시 해보는 것이 좋겠고, 검사 오실 때 생활기록부같이 어렸을 때 기록이 있으면 가져오세요.”
집에 오자마자 내 유년시절의 단서가 될만한 것들을 찾아보았다. 일기장, 성적표, 생활기록부를 살펴봤다.
초, 중, 고 성적 모두 우수했고 선생님들의 코멘트에는 ADHD 성향이라고 할만한 특이점이 없었다.
하지만 확증편향의 발동인지 ‘아들도 학교생활은 잘하고 있는데 ADHD라 잖아. 나도 그런 것 아닐까? 지능으로 억누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부산에 살고 있는 중고등학교 친구에게 그간의 이야기들을 꺼내 놓았다.
“네가 지금 ADHD이건 아니건 무슨 상관이야? 지금까지 잘 살아왔잖아. 그거 검사비도 비싸다던데 그 돈으로 애들 책이나 사줘.”
친구의 말에 머리가 멍해졌다.
‘그래. 지금 알아서 뭐 하게? 알아서 달라지는 게 뭐지?’
큰 고민 없이 검사를 취소하고 말았다. (가끔, ‘너무 충동적으로 취소했나?’하는 생각이 든다.)
검사를 취소한 지 2년이 지났다.
꾸준한 약물, 상담치료 덕분인지 집중력은 조금 나아져 컨디션이 좋을 때에는 '흥미 있는 책에 한해서' 완독이 가능한 상태가 되었다. 하지만 읽은 책의 내용을 기억하는데 어려움이 있고 여전히 주의력이 부족해 여기저기 자주 다친다.
결국 난, ‘ADHD 약을 복용하면 나의 이런 부주의함, 집중력, 기억력이 나아질까?’라는 궁금함에 상담치료를 받고 있는 병원에서 ADHD검사를 받았다.
의사가 정확하게 “ADHD이다.” 혹은 “ADHD가 아니다.”라고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ADHD라고 해서 꼭 약을 먹어야 하는 것은 아니에요. 생활에 불편감이 크면 스트라테라를 처방해 드릴게요.”라고 했다.
그리고는 다음 진료 전까지 한 달치 약을 받아왔다.
다음날 아침, 약을 앞에 두고 갈등했다.
‘더 잘 기억하고 싶고, 더 잘 생활하고 싶다’는 마음과
'지금 복약하면 언제 단약 할지 모르는데 시작하는 것이 맞나?’라는 마음이 싸웠다.
결국, 2년 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시작하지를 말자. 더 이상 나의 상태를 의심하지 말고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보자.’로 마무리했다.
생각해 보면 그래도 무리 없이 40여 년을 살아온 것은 '나만의 생존전략'이 있었던 덕분인 것 같다.
ADHD 성향을 가진 사람은 무언가를 시작하기가 어렵다. 딱! 마음먹고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이 힘들다.
긴 시간을 두고 미리 시작하는 것은 시작하기 싫은 마음과 결국 마무리 못함을 예방하기 위한 방법이다.
난 어렸을 때부터 내가 이러한 성향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마음먹기가 어려워 미루고 미루다 결국 안 할 수도 있기 때문에 남들보다 아주 미리 해두어야만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학창 시절에는 수업 직후 쉬는 시간에 복습하는 습관을 길렀다.
결혼한 뒤에는 냉장고가 텅텅 비어서야 황급히 반찬을 만드는 등 극한 상황이 되어야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멸치볶음, 조림, 장아찌 등 오래 저장 가능한 반찬 중심으로 한 번 만들 때 양껏 만들어두고 자주 쓰는 볶음밥용 야채는 종류 별로 한 팩씩 다져서 냉동해 둔다.
냉동해도 맛에 변화가 없는 사골국, 카레, 미역국 등도 한 냄비 만들어 일부는 먹고 일부는 나중을 위해 냉동고에 넣는다.
많은 전문가들이 깜빡깜빡하는 사람들에게 메모하는 습관을 가지라고 조언을 한다. 하지만 내 경우는 메모해 놓았다는 사실조차 잊을 때가 부지기수였다.
대안은 항상 소지하고 있는 휴대폰에 알람을 설정하는 것이었다.
지금도 내 휴대폰 시계 앱에는 아이들 등하교, 등하원, 약 복용 등 매일 정기적인 일정부터 학부모 강의 선착순 신청, 중고거래 시각 등 일회성 일정까지 수많은 알람이 설정되어 있다.
알람은 해야 할 일을 기억하게 해 줄 뿐 아니라 과몰입하고 있는 나의 행동을 전환시켜 준다.
나는 무엇인가에 집중하고 있으면 그 일을 멈추고 행동을 전환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미혼일 때에는 업무에 몰입하는 것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가정과 아이들이 생기니 과몰입은 다른 일에 영향을 주곤 했다.
집에서 글을 쓰다가 아이들 귀가 알람이 울리면 그제야 겨우 컴퓨터를 끄고 저녁식사 준비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조금만 더 쓰고, 여기까지만 쓰고 하다가 온 가족이 저녁을 굶게 되니 말이다.
정리정돈이 어렵고 물건을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이 안 나 찾아 헤매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집에 오면 모델하우스 같다고 이야기한다. 집을 잘 꾸며서가 아니라, 살림살이가 많이 없이 깨끗해서다.
나 스스로 ADHD를 의심하고 남편, 동생, 친한 친구들에게 이야기했을 때 모두가 “네가 무슨 ADHD야. 100% 아니야” 라며 확신했다.
첫 번째 이유는 정리정돈을 잘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실 이 부분은 나도 의문점이 있는 부분이긴 하지만 확실한 것은 꼭 필요한 물건만 사는 등 소비를 절제하기 때문에 집을 깨끗하게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ADHD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불안도가 높다고 한다.
불안한 마음, 긴장된 마음, 우울한 마음을 떨쳐낼 수 있도록 일기를 쓰거나 믿을만한 사람과 수다를 떨곤 한다.
나는 지금도 초등학교 때부터 쓴 일기장을 모두 가지고 있다. 일기라고 하지만 주로 마음이 힘들 때 써왔던 공책이다. 그러다 보니 대다수 속상한 이야기이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가 글로써 스스로의 마음을 치유하는 법을 터득했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 글을 쓰는 것도 글을 쓰면 내 마음의 상처, 관계에 대한 스트레스가 치유됨을 느끼기 때문이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ADHD와 우울증은 공존질환이라고 한다. 성인 ADHD의 80%가 우울증을 경험한다고 하니 매우 높은 비율이다.
불안, 긴장도가 높은 기질에 성장과정에서 주변으로부터 부정적인 피드백을 많이 받은 탓일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우울이라는 감정과 가까워지려고 한다면 ‘내가 무엇을 할 때 우울감이 떨쳐지는지 알아차리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나의 경우에는 걷는 시간이었다.
마음이 복잡할 때 걸으면 기분이 한 결 나아진다. 빌딩 숲도 괜찮고 한적한 천변도 좋다. 때로는 혼자서, 때로는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걷는다.
직접 경험한 바에 의하면 우울이라는 늪에 한 번 빠지면 점점 더 깊이 빠져들기 쉬워 뼈를 깎는 노력으로 상황을 전환하지 않으면 그 늪은 더 넓고 깊고 견고해진다.
노력에도 불구하고 마음의 힘듦이 자주 찾아오고 커진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가능한 한 빨리 받는 것을 추천한다.
정신이 나약해서, 노력이 부족해서 우울함이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지금은 정신과에 대한 인식도 달라지고 문턱도 낮아졌다지만 코로나19 팬데믹(2019.12~2023.1) 이전만 해도 그렇지 않았기에 나는 정신과 진료라는 낙인에 대한 괜한 두려움으로 내원을 몇 년간 미루었다.
하지만 상담치료, 약물치료를 통해 호전되어 가는 것을 몸소 느끼며 ‘조금 더 일찍 치료를 시작했다면 지금 또 다른 삶을 살고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이 생존전략은 생존본능으로써 나도 모르게 체득되었고 습관이 되어 내가 되었던 것 같다.
주변에선 “천방지축 왈가닥이었던 네가 그래도 이만큼 사회화된 건 네 부모님이 엄격하고 강하게 키워서야.”라고 이야기한다.
비록 주변 눈치를 보는 일이 많으며 불안, 긴장, 우울감이 높아졌을지라도 부모님과 주위 사람들로부터 눈총 받지 않게 동글동글해졌다
또, 그 속에서 나 나름대로의 적응방식을 만들어 간 덕분에 초, 중, 고, 대, 직장까지 대한민국 사회에서 말하는 순탄한 길을 걸어올 수 있었다는 것은 어느 정도 인정한다.
하지만 이 역시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 아이의 1차 스트레스가 2차 스트레스로 이어지는 일만큼은 없게,
건강한 자존감을 가진 사람으로 키우고 싶다.
“아! 학교에 물통을 놓고 왔네!”가 1차 스트레스라면, “아...... 정말 난 왜 이렇게 자꾸 물건을 잃어버리는 거야? 내가 그렇지 뭐.”라며 스스로를 질책하고 비난하는 것이 2차 스트레스라고 한다.
아이들을 키워보니 생각보다 타고난 것들이 너무 많아 당혹스럽기도 하다.
그렇지만 ‘타고난 것들이 성장환경에서 어떻게 다뤄지는지에 따라 그 결과가 다르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유아기에도 자신감 있는 아이가 있는 반면,
걱정이 많아 매사 조심스럽고 행동을 할 때 주변의 반응을 살피며 실수했을 때 자책하는 아이가 있다.
ADHD 아이들은 충동성으로 인해 본인도 모르게 행동을 한 후 뒤늦게 자신의 행동을 자각하기도 한다.
나와 내 아이들의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후자와 같이 걱정, 불안도가 높은 아이에게는 스스로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 필요하다. 이는 어릴수록 주변의 반응으로부터 형성되고 이 반응이 차곡차곡 쌓여 자신감과 자아존중감이 된다고 본다.
이미 일어난 아이들의 실수를 너그럽게 이해하고 호탕한 태도로 대응하자.
잘못은 알려주어서 바른 방향으로 성장하게끔 이끈다는 마음으로 대하자.
아이들은 질책을 듣지 않아도 이미 스스로 자신의 실수와 잘못을 잘 안다.
혼날까봐 긴장했던 아이는 자신의 예상과 다른 어른들의 반응에 마음이 이완되고 더 큰 배움을 얻을 것이다.
더욱이 ADHD를 가진 아이들은 자신의 의지로도 행동을 어찌할 수 없기에,
인내심을 갖고 아이의 뇌가 성장하기를 기다리며
강점, 발전된 모습, 발전 가능성에 초점을 두어 칭찬을 아끼지 말자.
그럼 아이의 뇌가 성장한 언젠가 긍정적인 자아인식을 바탕으로 하여 성숙한 사회의 일원이 되어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이것이 내가 그토록 바랐던 부모님의 모습, 내가 매일매일 마음을 갈고닦아 되고자 하는 엄마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