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DHD 자녀 엄마들의 우울감
내 인생에 대한 어렴풋한 기억은 서너 살부터 시작한다.
그 무렵의 기억이 순간순간 떠오르는 사진과 같은 모습(Still cut)이라면 맥락이 있는 동영상(Moving image)으로 첫 기억은 여덟 살 때이다.
내 여덟 번째 생일 며칠 전이던 초봄 어느 날,
아빠는 한쪽 허벅지 수술을 하시게 되었고 엄마는 아빠 병간호를 위해 집을 비우셨다.
10살 언니, 8살 나, 6살 동생은 우리 집 방 한 칸에서 한동안 같이 살던 아빠의 여동생인 둘째 고모에게 맡겨졌다.
둘째 고모가 주로 돌봐주셨지만 내 생일에는 막내 고모도 오셔서 생일상을 차려 주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고모 두 분께 참 감사하다.
하지만 국민학교(옛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어린 나에게 엄마, 아빠의 부재는 너무나도 크게 다가왔다.
엄마, 아빠가 쓰시는 침대에 누워 이불에서 나는 엄마 냄새를 맡으며 울었던 기억이 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내 생일 나흘 전,
남편이 갑상선 수술을 위해 집을 비웠다.
갑상선 암 진단을 받고 갑상선 반절제수술을 위해 대학병원에 입원한 것이다.
갑상선 암은 암 중에서 착한 암이라고 이야기하지만 막상 당사자와 가족이 되어 보면 이 세상에 착한 암이란 없다.
게다가 난 아직 30대에 불과했고 아직 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아이가 둘이나 있으니
‘혹시나’ 하는 불안이 너무 커져 상상력이 풍부한 난 ‘아이 둘의 과부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과 함께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인지 남편이 병원에 있는 동안 집 이사를 해야 했기 때문에 몸이 너무나도 바빠 두려움에 떨고만 있을 시간이 없었다.
불안감을 떨쳐내기 위해 더 많이 움직였다.
밤 10시까지 혼자 짐정리를 하고 친정에 맡겼던 아이들을 새 집으로 데려와서 애들을 재우고는 다시 집을 정리했다. 그렇게 며칠을 아이들 없는 시간 틈틈이 집 정리를 하며 바쁘게 보내다 시간 여유가 생기면 많은 생각들이 또다시 파도처럼 밀려왔다.
‘무엇 때문일까? 나는 왜 이렇게 자주 불안해하고, 걱정하고, 생각을 멈추지 못하는 것일까?’
아이들을 키우며 이목구비, 키, 체형과 같은 외모부터 식성, 좋아하는 것 등
성격도 타고난 것이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
돌이켜보니 성격의 타고난 특성과 측면,
즉 기질(temperament)에 있어 난 불안과 긴장도가 높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활동이 많은 아이, 호기심에 행동이 앞서는 아이를 양육하다 보니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가 쌓였던 것이다.
통계에 따르면 ADHD 아이의 엄마들 중 50% 이상에서 특별한 관리와 치료를 요하는 ‘우울증’ 병력이 나타난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엄마의 부정적 감정과 무기력감,
이에 따른 비일관된 양육태도가 자녀에게 악영향을 주어 자녀의 저항과 공격성을 불러일으키고 엄마는 다시 반항적인 자녀를 통제하기 위해 더욱 강하게 대처하는 악순환이 지속되면서 엄마의 우울증과 자녀의 ADHD 증상이 악화된다고 한다.
반대로 자녀의 ADHD 증상이 호전되면 엄마의 우울증 또한 줄어든다고 하니, 정상 자녀와 부모 관계보다 ADHD 자녀와 부모는 정서적인 면에서 더 강하게 유착(癒着)되어 상호작용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나 또한 양육에 스트레스받을 때마다 극도로 예민해져 아이들을 통제하려 들고 감정적으로 대했다.
그럴수록 첫째 Y는 감정을 격하게 드러냈고,
둘째 S는 나의 눈치를 보았다.
이후 남은 것은 ‘아이에 대한 미안함과 후회’였다.
원인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아이는 그대로인데 내 마음 상태가 문제’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내 마음이 편안하고 아이들을 포용적으로 대하면 아이들도 심리적으로 안정이 되어 나와 아이들 사이에 마찰이 눈에 띄게 줄었다.
나는 국민학생 때부터 출산 전까지 주말이면 집에 가만히 있는 날이 거의 없었다.
국민학생 때에는 해 질 때까지 밖에서 놀다 집에 들어왔고,
중고등학생 때에는 학원에 다니느라 바빴다.
대학생, 직장인일 때에는 사람들과 약속을 잡거나 꽃꽂이, 재즈댄스, 테니스, 스쿠버다이빙, 승마 등 취미 생활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출산과 함께 나의 취미생활은 모두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다행히도 난 어렸을 때부터 아기를 좋아했기에 육아가 힘들면서도 보람 있었다.
그리고 Y와 S가 각각 생후 50일을 넘겼을 때부터 주말이면 가족이 함께 외출을 했다. 아주 가끔 집에 있는 날이면 집에 있는 것이 더 힘들어 집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이 초등학생이 되어서도 다양한 체험, 경험기회를 준다는 명목 하에 많은 곳을 다녔다.
Y가 ADHD 진단을 받고,
나는 생산적인 활동을 하지 않으면 우울감을 느끼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고 난 뒤에야 비로소
주말에 우리 가족이 집에 있을 수 없는 이유를 알게 된 것이다.
Y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활동성을 발산하면서도
다른 사람들과의 부대낌을 피할 수 있는 공원, 동식물 농장, 모래사장, 산림욕장 등에 가면
아이의 기분이 한결 나아져 심리적으로 안정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음이 안정된 만큼 나와 남편의 말에 잘 수긍하고,
동생을 더 잘 보살피며, 기분 좋게 선행(善行)에 앞장서는 등
사회 친화적인 모습으로 변함을 볼 수 있었다.
그러면 자연스레 나의 스트레스 지수, 우울감은 낮아졌고 아이들을 더 따뜻하게 대할 수 있었다.
이렇게 선순환(善循環)이 이뤄졌다.
처음에는 아이들에게 애정을 표현하기 위해 아이들이 아침에 눈을 뜨면 포옹을 했고
아이들의 성장을 위해, 특히 약물치료로 입이 더 짧아져 성장속도가 느려진 첫째를 위해 잠자리에 누우면 전신 마사지를 해주었다.
그런데 포옹, 마사지, 이마 뽀뽀, 코 비비기, 볼 비비기, 침대에서 뒹굴기 등 아이들과 스킨십을 하면 오히려 내가 위로를 받았고 심지어 자아 효능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던 중 『국제학술지 '네이처 인간 행동(Nature Human Behaviour)'에 발표된 연구에서 '포옹과 마사지 같은 신체접촉, 이른바 ‘스킨십’이 불안과 정신적 우울감은 물론 신체적 통증까지 줄일 수 있으며, 비록 사물과의 접촉이라도 어느 정도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연구팀은 약 1만 명 이상의 실험 참가자를 대상으로 한 총 212건의 선행 연구에 대한 포괄적 메타 분석을 통해, 스킨십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했다. 그 결과, 스킨십은 사람들의 통증·우울·불안 증상을 경감시켰으며, 특히 아픈 사람은 건강한 사람보다 정신 건강상 이점이 더 크게 나타났다. (중략) 접촉시간보다는 빈도가 잦은 편이 우울증·불안이 개선되고 통증도 줄어들었다.』라는 데일리 포스트 기사를 접했다.
내가 아이들과의 스킨십을 통해 정서적 안정감을 찾는 것이 과학적인 근거가 있음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ADHD 관련해서 인터넷 검색을 하면
ADHD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
특히 엄마의 우울감을 호소하는 글을 자주 접한다.
수 없이 말해도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아이,
예측 불가능한 사건사고 다발,
기관으로부터의 연락 등
하루하루가 긴장이고 ‘정말 미쳐버릴 지경’이라는 말로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스트레스로 다 포기하고 싶은 심정이라는 내용이다.
그런 글을 볼 때마다 남 일 같지 않아 위로의 댓글을 달 수밖에 없다.
하지만 매듭지어야 하지 않은가.
아이의 부주의함과 과잉행동, 나의 우울감이 시너지를 낼 때 어떤 최악의 상황이 오는지 잘 알기에 이 악순환을 매듭 지어야만 한다.
나와 아이를 위해.
When you come to the end of the rope, tie a knot in it and hang on.
밧줄의 끝에 다다르면, 매듭을 묶고 꽉 붙잡으세요.
- 프랭클린 D. 루스벨트 (Franklin D. Roosvel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