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갈래 선택의 길에서 2

ADHD 자녀 엄마에게 흔한 고민 | 퇴사

by Journey


회원수가 가장 많은 ADHD 관련 네이버 카페 자유게시판에 종종 올라오는, 내 눈길을 끄는 글이 있다.

바로 ‘ADHD 자녀를 둔 엄마의 퇴사에 대한 고민 글’이다.

ADHD 자녀를 둔, 일하는 엄마라면 한 번쯤은 고민해 봤을 문제일 것이다.


나 또한 1년간의 상병휴직,

2년 6개월간의 육아휴직,

총 3년 반동안 휴직을 하며

각 휴직이 종료되는 시점마다 복직과 휴직연장을 놓고 치열하게 고민했다.

하지만 매번 워킹맘으로 사는 것에 용기 내지 못하고 휴직을 연장해 오다

지금은 퇴사 전 최후의 보루인 1년짜리 휴직 중으로

근로소득 없이 직장인이라는 신분만 유지하고 있다.


나에게 남은 휴직기간은 단 3개월.

입사 만 20년 차를 앞두고 복직과 퇴직 중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그 흔한 N 수, 휴학 한 번 없이 글로벌 대기업에 입사한 나는 ‘해당 직군 신입공채 입사자로서 최초의 여성임원이 되기.’를 꿈꾸었다.

하지만 그 꿈이, 자녀가 있는 여성에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깨닫는데 1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사내 어린이집에 다니는 5살 딸과 함께 이른 아침에 같이 출근하고, 늦은 밤에 퇴근하며

회사를 따라 이사 다니는 사수를 보며

회사와 가정을 양립하는 것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활동과 경제활동에 욕심 있는 나는, ‘최소한 남들 해본 만큼은 다 해보자.’라고 마음을 다지며 임신, 출산, 육아까지 15년 넘게 버텨왔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이유로 장기 휴직을 하고

퇴사까지 고민하게 되다니

인생은 그 누구도 알 수 없음을,

내 생각대로 되는 것이 아님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애들 몇 학년이지? 이제 초등학교도 들어갔고 다 컸는데 더 챙겨줄 게 있나?”

50대 남자 파트장님께 아이 돌봄과 내 건강회복을 이유로 휴직을 연장한다고 할 때마다 하신 말씀이다.

나의 자세한 마음건강상태도, 내 아이가 가진 ADHD의 특성도 모르시기 때문이다.

당연하다.



Episode 1.

“Y야, 이제 1학년이니까 영어 셔틀버스 타는 데까지 혼자 갈 수 있지?

"당연하지! 바로 앞인데 뭐!"


Y가 처음으로 영어학원 버스를 타러 혼자 나갔다.

버스 정류장은 집 현관에서부터 보통걸음으로 5분 거리인 아파트 후문 앞.

그런데, 몇 분 뒤 셔틀버스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머니, Y가 아직 안 나왔어요."

"네? 나간 지 10분은 됐는데, 진작에 도착했을 시간인데.....

죄송합니다. 먼저 가세요. 제가 나가볼게요."


허겁지겁 옷을 갈아입고 신발을 신고 있는데 초인종이 울린다.

문을 열어보니, 갈대같이 생긴 자기 키만한 풀을 한 손에 들고 흔들며 기분 좋은 얼굴로 서있는 Y.

"엄마! 오늘 날씨가 진~짜 좋아!"


Episode 2.

“Y야, 학교 끝나고 엄마랑 치과 갈 거니까 아파트 상가 1층 빵집 앞에서 만나.”

전날 저녁식사 하면서, 당일 아침식사 하면서, 등교 전 현관 앞에서도 이야기했음에도 약속장소에 안 나타난 3학년 Y.

길이 엇갈릴까 싶어 그 자리에 서서 30분을 기다려도 결국 오지 않은 아이.

(휴대폰은 노출을 최대한 늦추기 위해 아직 사주지 않았다.)


“아! 맞다! 깜빡했네. 난 엄마가 왜 집에 없나 했지.”

설마설마하며 집에 가보니 소파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Y.

집에 돌아온 나를 보며 해맑게 말하는 아이를 보고 아이가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기에 화낼 수 없었다.


한 학기에 같은 일이 두어 번 반복되자

아이는 약속 내용을 학교 알림장에 적어달라고 했다.

“엄마가 그 생각을 왜 못 했지? 좋은 생각이다! 역시 우리 Y!”


Episode 3.

“오늘 좀 늦었네?”

“멍 때리고 있었어. 한 5분? 얼마나 그러고 있었는지 모르겠는데, 교실에서 운동장을 가로질러 오다가 나도 모르게 바닥을 한참 쳐다보고 있었나 봐.

정신 차리고 보니 내가 바닥을 보고 있네?”

“찻길이 아니라 운동장이라서 다행이다.”


Episode 4.

‘하교 후 선생님 전화라니!’

순간 불안감이 엄습한다.

Y와 차를 타고 학원에 가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려 휴대폰을 보니 2학년 Y의 학교 담임 선생님이다.

운전 중이기도 했고 Y 옆에서 통화를 하면 안 될 것 같다는 직감에 우선 전화를 받지 않았다.

휴대폰은 끊어지지 않고 계속 울렸다.

‘무슨 일이지? 불길한데…...’

조카 L과의 사건 이후 나는 Y의 생활태도와 주변의 반응에 예민해져 항상 조마조마하다.

아이를 학원으로 서둘러 들여보내고 휴대폰을 보니 선생님으로부터 문자가 와있다.

“Y 어머님, Y 담임입니다. 하교 후 운동장에서 Y 관련된 일로 여자친구 얼굴에 멍이 좀 들었습니다. ㅜㅜ 문자 보시면 전화 부탁 드려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충동성 있고 말은 많아도 이제껏 폭력성을 보인 적은 없었는데 말이다.


집으로 가던 차를 멈춰 세우고 선생님께 전화를 걸었다.

선생님을 통해 들은 여자친구의 말과 Y의 말을 종합해 보면,

하굣길에 운동장에서 같은 반 여자친구와 남자친구가 슬라임을 던지며 노는 것을 본 Y가,

친구들 장난에 합류해 서로의 옷에 슬라임을 붙였다고 한다.

그러던 중 Y가 갑자기 여자친구에게 박치기를 했다는 것이다. 웃으면서.

더군다나 Y는 등하교를 자전거로 하기에 헬멧을 썼고 친구는 안경을 쓰고 있었다.

기분 좋은 상태가 고조되었을 때 충동적인 행동을 하곤 하는데 이 때도 그랬던 것 같다.


Y의 충동성에 의한 일이 생겨 속상한 마음,

친구와 부모님에게 미안한 마음,

긴장된 마음으로 친구 어머님께 사과 전화를 드렸다.

Y에게도 친구에게 사과편지를 쓰게 하고

편지에 타박상 연고를 붙여 보냈다.

다행히 친구의 어머님께서 이해해 주시어 더 큰 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여보, 나 이러다 심신 미약해질 것 같아요.

더 이상 긴장하고 싶지 않다.”



ADHD 등 발달장애 자녀를 둔 많은 엄마들이

‘아이 돌봄과 치료를 위해 퇴사해야 하나?’,

‘아이 치료비도 비싼데, 벌 수 있을 때 더 벌어야 하지 않을까?’ 갈등한다.


나에게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아이뿐 아니라 일과 양육을 균형 있게 해낼 자신감과 양쪽에서의 스트레스를 감당할 면역체계가 무너졌다는 것다.

둘째 S가 19개월이 된 가을 (Y는 39개월),

복직한 나에게 원인 모를 불편감이 찾아왔다.

뇌의 시냅스 일부가 끊어진 듯, 생각을 하고 싶어도 머릿속 어디선가 생각의 흐름이 차단되어 더 이상 깊게 생각하기 어려웠다.

대뇌의 주름이 모두 펴져 반들반들해진 듯,

정보가 저장되지도 필요할 때 빨리 출력되지도 않았으며,

업무 상 각종 신규제도를 이해하고 전파해야 하는데 새로운 것들을 이해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정확히는 글자가 눈에 안 들어왔다.

글자를 눈과 입으로 읽고는 있는데,

글자가 내 머리를 스쳐 밖으로 흘러 나가는 느낌이었다.

연말이면 차년도 업무전략을 수립하고 세부 액션 아이템을 도출해야 하는데,

아이디어 발산만 할 뿐 수렴이 안 됐으며,

겨우 도출한 실행 과제들을 문서에만 남기고 싶을 뿐 실행에 옮기고 싶지 않았다.

그냥 이대로 쓰러져 아무도 없는 병실에 입원하고 싶었다.


‘전에는 안 그랬는데, 나 왜 이러지?’

‘S 출산할 때 전신마취한 후유증인가?’

‘이러다 치매 걸리는 건 아닐까?’


예전과 다른 나를 느낄 때마다,

실수하고 깜빡깜빡할 때마다,

자괴감이 들고 자신감이 없어지다 못해 자존감이 떨어졌다.


사내 가정의학과에 가서 증상을 이야기하며

치매검사가 가능한지 묻자 의사는

“검사지 보시면 웃으실 거예요”라며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 몇 년도이죠?”, “여기가 어디죠?”, “지금은 낮인가요? 밤인가요?” 이런 식의 질문이었다.

당연히 난 치매가 아니었다.

복직한 지 얼마 안 돼서 적응 기간이라 그럴 수 있으며 점차 호전될 것이라고 했다.


‘아닌데, 그게 아닌 것 같은데, 나 정상이 아닌 것 같은데…..’

종합건강검진에 뇌 CT를 추가해서 확인해 보기로 했다.

이 역시 아무 문제가 없었다.

결국 증상에 대한 느낌만 있을 뿐 원인은 미궁에 남겨둘 수밖에 없었다.

(가정의학과 의사는 불편감이 지속되면 정신건강의학과를 가보라고 했지만, 정신병원을 간다는 것에 대한 거리낌으로 가지 않았다.)


그로부터 3년 뒤,

우리 아이들과 조카 사이에,

정확하게는 우리 부부와 언니 부부 사이에 갈등이 생길 것이라고 예견하듯

아이들의 수술놀이 일주일 전에 나는 사내정신건강의학과를 처음 찾아갔다.

정신과를 내 발로 찾아간다는 것이 망설여졌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앞으로 내가 어떻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더 컸다.

생리시작 전 일주일간은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이 너무 버거웠고, 우리 가정의 미래가 어둡게만 느껴졌다.

그리고 그 걱정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더 깊어져 암울했기 때문이다.

스스로는 ‘괜찮다. 잘하고 있다. 나니까 할 수 있는 것이다.’라며 지내온 초산 후 7년의 시간 동안 나도 모르게 스트레스가 만성화되어 뇌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엄마가 된 지 만 9년 5개월 차,

일주일간 수면 중 오한이 계속되어 내분비내과를 찾아갔다.

첫 진료 때 혈액검사 결과에 이상소견이 있어,

이후 두 차례 더 내원해 시낙텐 검사를 받았다.

스트레스를 이겨내게 해주는 호르몬인 코르티솔과 면역세포인 백혈구가 부족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장기 스트레스가 원인이라고 했다.

스트레스가 사람의 몸과 마음에 주는 영향이 이렇게 큰 지 새삼 깨달았다.


It is not the bruises on the body that hurt. It is the wounds of the heart and the scars on the mind.
아픈 것은 몸의 멍이 아닙니다.
마음의 상처와 정신의 흉터입니다.

- Aisha Mirza –


복직이냐, 퇴직이냐.

결정할 시간이 아직 3개월 남짓 남아있지만

많은 상황들을 고려해 나의 2, 30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직장을 떠날 예정이다. 아마도......

휴직기간 동안 예행연습을 했지만

회사라는 울타리를 완전히 벗어난다는 것이 두렵다.


‘사회적 명함을 버리고 온전히 엄마로서 살면, 자괴감 들지는 않을까?’

‘선배들이 버티라고 했는데, 이렇게 놓아버리는 것을 후회하지 않을까?’

‘애들이 클수록 교육비, 생활비가 더 든다는데 경제적으로 팍팍해지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더 두려운 것이 있다.

‘멀티 태스킹이 안 되고 아직 주의력, 기억력도 정상이 아닌데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집에 왔을 때 반겨주는 엄마가 없으면 아이들의 마음이 공허하지는 않을까?’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줄어들면 아이의 (뇌) 성장을 면밀히 관찰하기 어려워지지 않을까?’


그렇다.

회사는 내가 없어도 돌아가지만 가정은 그렇지 않다.

나를 더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자.

훗날 직장생활에 대한 미련이 남더라도 가정에 후회 남기지 않을 선택을 하자.(라고 위안해 본다.)



여기까지 글을 쓰고 발행을 사흘 전날 밤,

Y와 침대에 누워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엄마, 난 요즘 학원 다니느라 엄마랑 같이 있는 시간이 너무 짧아서 슬퍼."

"엄마 회사 나가라고 할 땐 언제고?"

"그건 9살 때 이야기고. 지금은 하루에 엄마랑 보내는 시간이 적은 게 속상해."

"엄마 이제 휴직 3개월 남았어."

"더 쉴 수는 없어? 더 쉬다가 나 중학교 1학년 때쯤 다시 가면 안 돼?"

"회사는 휴직할 수 있는 기간이 정해져 있어. 엄마는 다 쓰고 이제 마지막 휴직이거든. 이제 그만둘지? 다시 나갈지? 결정해야 해. 이번에 그만 두면 지금같이 좋은 회사는 다시 가기 어렵지. 아직 우리나라는 엄마들이 자녀양육에 더 많은 일을 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엄마들이 고민하는 부분이야. 이모님이 계시거나, 양가 부모님이 도와주지 않는 한."

"OO네처럼? OO네도 할머니가 오시잖아.

근데 정말 어려운 문제네.

우리나라는 왜 북유럽처럼 복지가 안 되는 거야?

아빠 혼자 일하면 아빠가 힘들지 않을까?

아빠 혼자 번 돈으로 우리 네 식구 살 수 있는 거야?

아빠랑 이야기해 봤어?"


이후에도 Y와 대화는 오랜 시간 이어졌다.

아이와 대화를 하고 나니

'어렵게 얻은 것(입사)의 소중함을 모르고, 너무 쉽게 놓으려고 하는 것(퇴사)은 아닌지?

많은 생각에 잠을 이루기 어려웠다.


3개월 뒤,

나는 어떤 모습으로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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