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갈래 선택의 길에서 1

말할까? 말까? | ADHD, 오픈하면 상황이 좋아질까?

by Journey

‘유선염이 이렇게 아픈데 모유수유를 계속해야 하나?

그냥 분유 먹일까?’

‘이렇게 계속 안아 재우다가 습관이 되면 어떻게 하지? 울어도 그냥 눕혀 재워야 하나?’

‘가까운 단지 내 어린이집에 보내는 게 좋을까?

시설 좋은 회사 어린이집에 데려가야 하나?’

‘내년에 5살이니 유치원으로 옮겨야 하나?

옮긴다면, 일반 유치원 아니면 영어 유치원?’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지만 아이에 관한 일을 선택하는 것은 나만의 일을 선택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웠다.

‘선택은 나의 몫. 결과는 아이의 것.’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도 이러한데

아이의 증상, 뇌 발달에 관련된 선택을 앞에 두고는

더 큰 고민과 갈등을 할 수밖에 없었다.

평소, 선택해야 할 상황에 놓일 때마다

‘선택한 것에 후회가 남더라도 선택하지 않은 것에 미련은 남기지 말자.’라는 행동지침을 갖고 살다.

하지만 자녀양육만큼은 ‘후회도, 미련도 남기기 싫은 마음’이 크기 때문에 갈등이 생길 수 밖에 없나보다.


나는 Y가 4살 가을이 되자 ‘일반 유치원을 보낼지? 영어 유치원을 보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당시 다니고 있던 아파트 같은 동 1층 가정 어린이집은 4살까지만 다닐 수 있어서 전원은 불가피했고,

이제서 회사 어린이집으로 보내는 것은 애매해 유치원으로 결정한 것이다.


‘알고 선택하지 않는 것과 몰라서 선택하지 못하는 것은 다르다.’고 생각했기에

통원 가능한 영어유치원 3곳, 일반유치원 3곳의 설명회를 남편과 함께 다녔다.

영어교육만 보면 당연히 영어 유치원인데,

아무래도 일반 유치원에 비해 다양한 활동이 부족한 것이 아쉬웠다.

어렸을 때는 체육, 미술, 음악, 견학 등의 경험이 중요하고

호기심 많은 Y에게는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있는 곳이 맞다고 생각해

결국, 5세부터 일반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친구들보다 선생님과 대화하는 것을 더 좋아해요.

Y가 언어발달이 빨라서 그런 것 같아요."

라는 특이사항 외에 아무런 무리 없이 1년 반을 보냈다.


6살 가을이 되자

‘초등학교 입학 전 영어 생활환경을 경험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과

‘일반 유치원만 나오면 초등학교 때 영어학원 선택의 기회가 적어지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두려움으로

다시 영어 유치원 설명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글씨 쓰기를 싫어하고, 아직 본격적인 학습을 해본 적이 없는 Y의 상황을 고려해 학습식 영어 유치원은 모두 제외했다. 놀이식과 절충식 중에 고민하던 중

텃밭을 가꾸고 숲체험을 하는 전원주택 형태의 영어유치원이 집 근처에 개원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아직 어린데 가까운 곳이 최고지.’라며

7세 1년차 반에 등록했다.


의사들은 영어 유치원이 특수한 환경이기에 이곳에서의 피드백으로는 ADHD 여부를 확인하기 어렵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보니

- 내적 동기부여가 안 되었기에, 해야만 하는 일인 등원과 숙제를 거부한 것

- 수업 중에 갑자기 일어섰지만 자신이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고 한 것

이 모두가 ADHD 증상의 단초였다.


그럼에도 나는 ‘언젠가는 적응하겠지.’, ‘입학 철이 지난 지금 옮길 수 있는 다른 유치원이 없다.’는 생각으로

매일 아침 현관 벽을 잡고 울며 불며 등원거부하는 아이를 등원 이모님께 맡기고 출근했다.

‘원어민 선생님이 학습식 대형 학원에서 오셨다더니 너무 엄격하다.’라고도 생각했다.

Y는 자포자기하듯 3~9월을 등원했다.


그리고 7세 10월,

조카와의 수술놀이를 계기로 내원한 정신건강의학과에서 Y는 전형적인 ADHD라는 진단을 받았다.

‘한국인 담임 선생님께 Y가 ADHD라서 그동안 그런 행동을 했다고 이야기하면 이해해 주려나?’

‘아니야. 나도 ADHD에 대해 모를 때에는 색안경을 끼고 봤는 걸? 얘기해서 좋을 것 없어.’

수많은 고민 끝에,

그리고 ADHD 관련 네이버 카페에 선배 부모들의 조언에 따라 원에 말하지 않았다.


다만, Y의 언행에 대해 조금이라도 이해를 구하고 싶은 마음에 <Y의 인지, 성향 검사결과 공유>라고 명명하여 웩슬러 검사결과 중 언어이해 주요 내용과

‘과제의 호불호, 주변환경, 정서 상태에 따라 수행 기복이 크며, 해야 하는 일에 대한 명확한 지침과 그것에 대한 논리적인 이유 제시가 필요하다.’는 특성만 전달했다.

하지만 선생님이 어떻게 받아들이셨는지 확인할 길도, 아이에 대한 피드백의 변화도 없었다.


“재미있는 상황이 오면 너무너무 흥분해서 오랜 시간 컨트롤이 안 돼요. 그것에 대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파도타기를 해서 수업에 지장을 주네요.”

“수업 중 설명을 하는데 안 듣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별도로 설명을 해주면 또 다 알아듣고 그래요.

어떨 때에는 Y를 기다렸다가 진도를 나가기도 하는데 매번 그렇게 할 수도 없고요.

어쨌든 주어진 시간, 제한된 시간에 해야 할 것은 집중해서 해야 한다는 것을 가정에서도 잘 알려주시면 좋겠어요.”


‘이해받고 싶은 마음에, 내 욕심에, 괜히 말했나?’

후회가 밀려왔다.


5개월 뒤,

'학교에서는 잘 지낼 수 있을까?',

'포용적인 선생님을 만나야 할 텐데' 등의 걱정과 함께

집 근처 국공립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다행히 담임 선생님은 허용적이신 분이었고

“호기심 많고 박학다식한 Y는 커서 어떤 직업을 가질지 정말 궁금하다.”며 긍정적으로 봐주셨다.

단짝 친구를 만들거나 친구들과 활발한 교류가 있지는 않았지만

학급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것도,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어떠한 부정적인 피드백도 없었기에

Y가 ADHD임을 굳이 밝힐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2학년, 또다시 긴장되었다.

‘1학년 선생님처럼 Y의 특성을 좋게 봐주시는 분이면 좋겠다......

다행히 따뜻하신 분이었다.

“우리 Y는 에디슨 같다.”

긍정적인 말씀을 해주시며 아이에게 많은 칭찬을 해주셨다.

반면, 냉철하고 예리한 분이었다.

Y의 ADHD 특성을 간파하고 계셨다.


한동안 등교하기 싫어한다고 말씀하셨을 때,
종종 혀 내미는 모습을 보였다가 최근에 사라졌다.

수업과 관련된 이야기지만, 끊임없이 말을 해
짝꿍이 “귀가 아프다.”라고 얘기할 때가 있다.

어떤 때에는 굉장한 집중력을 보이다가
어떤 때에는 산만해 보인다.

‘지능 높은 아이들 중 산만한 아이는 아닐까’ 생각도 해보고,
본인이 교직에 오래 있어서 ‘아이의 특성을 공교육이라는 틀 안에 가두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봤다.

많은 아이들이 어려워하는 문제는 잘 푸는데
Y는 오히려 쉬운 문제에서 실수를 해서
본인이 갖고 있는 역량을 잘 발휘 못하는 일이 안 생기게
“문제를 조금만 더 꼼꼼히 보자.”라고
Y에게 자주 이야기하고 있다.

고지능이면서 산만한 아이들 중 악필이고
글씨 쓰는 것을 싫어하는 아이들이 있다고 들었다.
‘Y가 그런 아이는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봤는데, 지능검사 받아본 적 있는지? 궁금하다.

그렇다고 Y가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것도 아니라 ‘부모님께 자세한 말씀드리는 것이 맞나?’ 고민했다.


28명의 아이들 속에서 이렇게 세세하게 관찰하셨다는 것에 정말 감사했다.

ADHD라는 단어 사용을 안 하셨을 뿐,

너무나도 정확하게 아이를 파악하고 계셨기에 내 마음이 흔들렸다.

“선생님께서 정확하게 보셨어요. 사실 Y가 7살 때 ADHD진단을 받았고, 1학년 말부터 약을 복용하고 있어요.”라는 말이 목젖까지 올라왔다.

꾹 참았다.

2년 전 후회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4개월 뒤면 전학을 가기 때문에,

선생님으로부터 이해를 구하고 싶은 마음을 억눌렀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2학년 선생님께는 말씀드려도 되지 않았을까? 말씀드렸다면 아이에 대한 조언을 받아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어느덧 Y도 초등 중학년이 되어 수학학원에 다니게 되었다.

더 이상 내가 집에서 가르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학원에 보냈다.

서술형 문제가 나올 때마다,

자신이 쓴 숫자를 못 알아봐 답을 잘못 옮겨 적을 때마다,

나는 Y와 실랑이를 벌여야만 했다.



Episode 1.

“글씨 쓰기 싫어. 그냥 말로 하면 되잖아.”

“생각한 걸 말로 하는 거랑 써보는 건 달라.

그리고 이제 점점 더 복잡한 문제를 풀 텐데 풀이과정도 써보고 해야지. 머리로만 하는 건 한계가 있어.”

“싫어! 나 그럼 안 해!” (방으로 들어가 버린 Y)


Episode 2.

“Y. 이리 와봐. 이거 뭐라고 쓴 거야? 이게 0이야? 6이야?”

“......” (본인이 쓴 숫자를 뚫어져라 쳐다봐도 뭐라고 썼는지 모르는 Y)

“글씨를 또박또박 정성껏 써야지. 제대로 계산해 놓고 잘못 옮겨 적으면, 문제를 못 푼 거랑 뭐가 달라?다 해놓고 틀리면 얼마나 안타까워?”

“엄마가 다른 친구들 글씨를 못 봐서 그래. 나는 잘 쓰는 편이야.”

“다시 써봐.”

“아니~! 왜 지워? 나 안 해!” (방으로 들어가 버린 Y)



실랑이의 고리를 끊고자,

소위 공부정서를 지키고자 입학시험을 보고 학원 등록을 했다.

필요할 때에만 복용하는 페니드를 복용하고 학원에 가서인지 학습태도에 대한 안 좋은 피드백은 없었다.


다만,

“어머니, 정기평가 결과 상담전화 드렸어요.

Y가 이해력도 좋고 항상 반에서 가장 빨리 문제를 다 풀곤 하는데, 실수가 너무 많아요.

저학년 때에는 틀린 것을 바로 고치면 ‘알고 있는데 실수했구나.’라고 할 수 있지만

고학년부터는 그러면 안 되거든요.”

“네. 맞아요. 예전부터 학교에서도 같은 이야기를 들어왔어요. (사실은...... 아니야. 굳이 말할 필요 없지. Y에게 선입견만 생길 테니까.)

고쳐질 수 있는 부분인가요? 어떻게 하면 될까요?”

“스스로 ‘이 문제는 꼭 맞아야 해.’라는 의식이 있어야 문제도 꼼꼼히 읽고 그럴 거예요.”


부주의에 따른 문제 잘못 읽기,

문제 건너뛰고 안 풀기,

연산 실수 등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개선되어야만 하는 문제로 여전히 남아있어 지속적인 관찰과 함께 전문의와 상담을 하고 있다.


'치원, 학교, 학원 선생님,

기관에 아이의 특성을 말씀드릴까? 말까?'

고민에 파묻혀 있을 때에는 시야가 좁아져서 잘 몰랐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 한 발자국 떨어져서 보니 판단할 수 있게 되었다.

의사, 심리상담사와 같은 소아 ADHD 전문가들이 쓴 책에서는 모두가 ‘아이 본인과 함께 가정, 학교, 의료진이 치료의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반응할 사람인지가 중요한 문제이고 예측하기가 어려워 교과서대로 하기 어렵다.


약물치료도 득실(得失)을 따져 접근하듯

ADHD진단 사실을 오픈함으로써 얻는 것과 잃을 수도 있는 것을 계산해봐야 하는 현실.

‘얘기하지 않길 잘했다.’고 안도하면서도

‘얘기해도 편견 없이 아이의 가능성, 강점을 발견하고 이끌어주는 선생님을 만나고 싶다.’라는 양면의 감정, 아쉬움이 든다.


一言旣出 駟馬難追 일언기출 사마난추

한 번 내뱉은 말은
네 필의 말이 끄는 빠른 수레를 타고 쫓아가도 붙잡을 수 없으므로,
말은 항상 신중하게 해야 한다.

- 명심보감 <존신(存信)> 편 중 –


‘말할까? 말까?’, ‘언제, 어떻게 말할까?’의 가장 중요한 대상은 바로 아이다.

Y는 주변의 모든 현상에 궁금함이 많은 아이이기에 자신에게 어떤 일이 있는 것인지도 궁금해할 날이 빨리 올 줄 알았다.

그런데 ‘마음 크는 병원’에 다닌 지 어느덧 3년 이상 되었고 매일 약을 복용한 것도 2년이 넘었지만

병원에 왜 다니는지, 약은 왜 먹는지, 묻지 않는 것이 의아했다.


그러던 어느 봄 아침, 초등 4학년이 된 아이가 물었다.

“엄마, 근데 나 이 파란색약(스트라테라)이랑 노란색 약(페니드)은 왜 먹는 거야?”

“응. 뇌 영양제야. 사람마다 키 크는 속도, 안구 크는 속도가 다르듯이 뇌가 성장하는 속도도 다른데, Y는 뇌 성장속도가 조금 느려서 영양제를 먹으면 좋대. 키 성장주사 맞는 친구들 있지? X도 성장주사 맞고 있잖아. 성장주사가 키 성장을 도와주는 것처럼 뇌 성장을 도와주는 영양제야.”.

“그럼 언제까지 먹어야 하는 거야?”

“선생님이 그만 먹어도 된다고 하실 때까지.”

아이는 잘 이해한 것인지, 까르르 웃고 등굣길에 나섰다.


아이에게 언제,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어렴풋이 생각해 왔지만 아이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했고, ‘잘 이야기한 것인지?’ Y가 등교한 이후에도 그 상황을 한참 생각했다.


한 때는 ‘Y에게는 굳이 이야기 안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아이 스스로 ADHD 증상을 느끼고 있는데, 그것의 이유를 모른다면 얼마나 답답할지? (내가 나의 정체성 혼란과 우울감의 원인을 찾고 싶어 오랜 시간, 여기저기 헤맨 것처럼 말이다.)

증상의 원인과 명확한 이름을 아는 것은 자신을 아는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이 바뀌었다.

아이가 클수록 아이 눈높이에 맞게 점점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아상(self-image)에 부정적인 영향이 미치지 않도록, ADHD가 아이의 언행에 방패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 '기관에 말할까? 말까'에 대한 내용은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임을 말씀 드립니다. 우리나라도 ADHD가 하나의 기질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시대가 오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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