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의미

by Journey


‘하늘은 견딜 수 있는 만큼의 시련을 준다.’


아이를 낳고 힘든 순간이 올 때마다 나를 버티게 해 준 말이다.

이 말을 믿으며 ‘나니까 버틴다.’ 라며 스스로 자신감을 북돋아 주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시련의 임계치를 초과해 쓰러졌다가 겨우 일어선 후에는

‘이 역경 또한 나에게 깨달음을 주기 위해 일어난 일’이라는 마음가짐으로 힘듦을 애써 정당화했다.


첫째 Y가 생후 8개월 무렵부터 만 2살까지 1년에 서너 번씩 입원하고

퇴원 후에도 추적관찰(Follow up) 진료를 위해 대학병원을 수시로 가야 하는 상황들은

‘한시의 여유로움도 못 견디는 나를 바쁘게 만들어, 육아휴직 중의 권태로움에서 벗어나게 해주나 보다.’라고,


둘째 S가 28주 0일 새벽 1.49kg으로 태어나 9주간 신생아중환자실(NICU)에 있었던 것도

‘첫째가 동생의 존재를 받아들일 시간을 주고,

엄마인 나에게도 두 아이를 함께 보살피기까지 심적 여유를 주기위한 하늘의 선택인가 보다.’라고 받아들였다.

인큐베이터에 있는 키 32cm의 아이를 볼 때마다 마음이 짠하고,

시간 맞춰 유축한 모유를 병원으로 날라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을지라도.


또한 내 아이들과 조카 L의 수술놀이를 계기로 받게 된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는

‘아이의 타고난 성향을 의학적으로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부모로서 더욱 겸손해지라는 교훈을 주었다.’고 믿었다.


앞서 언급한 부모님과의 갈등(05.어떤 순간을 다시 살게 된다면)조차

‘엄마에 대한 해묵은 감정을 쌓아두지 말고

허심탄회하게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준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여러 차례 진행한 문장완성 검사에서

'27. 내가 저지른 가장 큰 잘못은 부모님을 속상하게 한 것이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라고 써온 것처럼

부모님께 실망감을 드려 죄송하지만,

갈등과 대화의 과정이 없었고 지금까지 이유 모를 거리감을 느끼고 있다면

서로에 대한 오해와 감정의 골은 더 깊어지고 곪아서

언젠가 더 크게 터져버리고 말았을 것이라 생각하기에

속마음을 털어놓은 것은 참 잘한 일이라고 여기고 있다.


나는 희로애락(喜怒哀樂) 중 노(노여움)와 애(슬픔)에 더 민감한 일개의 인간이기에

매번 쉽게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짧게는 사나흘, 길게는 수개월의 시간이 걸리더라도

시련-반죽음-정당화를 통한 소생을 수 없이 반복해 왔다.

어떤 기간은 아침에 눈 뜨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다.

몸이 천근만근 무거워 침대와 한 몸이 되어 마냥 누워있고 싶었고,

아이들을 굶길 수 없어서 꾸역꾸역 밥 짓는 일을 해냈으며,

동료들의 눈치 보기 싫어서 회사 업무를 간신히 쳐냈다.


이대로 홀연히 어딘가로 떠나고 싶기도 했다.

떠날 수가 없으니 아프거나 사고가 나서 일주일만이라도 혼자 병실에 누워 지내고 싶었다.

무엇을 하든 “엄마랑~ (할 거야)”, “엄마가~ (해줘)”라며 일거수일투족 엄마만을 원하는 아이들,

서로 “내 얘기 먼저 들어봐.”라며 엄마를 놓고 다투는 아이들도 버거웠고,

어떤 일이든 “엄마한테 물어봐.”라며 결정권을 주는 남편의 배려도 화가 났다.

거기에 파트장 후임으로서 “파트장 후보군 교육을 다녀오라.”는 파트장의 지지는

가슴에 돌덩이를 하나 더 추가한 기분이었다.

결혼 전의 나였으면 상사의 신임이 직장생활에 동기부여가 되어

더 큰 꿈을 꾸고 달렸을 텐데 말이다.


일상의 모든 것, 삶의 무게,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나를 압도했다.

좋아하는 자기 계발서나 심리학 책을 읽을 힘도 나지 않았고

삶의 명언들을 봐도

다른 사람의 인생에 이래라저래라 간섭하고 강요하는 것 같아 그저 숨이 막혔다.

운동을 하고 햇볕을 쬐라는 조언도

극심한 번 아웃(Burn out)을 겪고 있는 나에게는 되알진 일이었다.


‘도대체 언제 이 깊고 어두운 터널을 완전히 빠져나갈 수 있을까?’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던 중 울다가 가속페달을 밟은 아찔한 경험은

‘약 밖에 답이 없다.’라는 결심을 하게 했다.

정신과 약에 대한 심리적 거부감으로 약복용을 미뤄왔는데

상담치료와 약물치료를 병행하기로 한 것이다.

다행히 약의 부작용은 없었고 조금씩 마음의 안정을 찾아갔다.


그렇다.

바람 불지 않는 인생은 없고,

시시때때로 부는 바람의 의미를 비장하지 않게,

겸손히 받아들이면 조금은 더 평안해지지 않을까?



Remember that there is nothing stable in human affairs ;
therefore avoid undue elation in prosperity, or undue depression in adversity.

인간사에는 안정된 것이 하나도 없음을 기억하라.
그러므로 성공에 들뜨거나 역경에 지나치게 의기소침하지 마라.

- 소크라테스 (Socrat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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