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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나는 이혼에 실패하기로 했다

by 이손끝

나는 이혼에 여러 번 빚을 졌다.


첫 번째 빚.

아빠는 여러 방면으로 몹쓸 인간이었다. 그 넨장맞을 놈이랑 결혼한 엄마는 결혼 1년 차에 그의 실체를 알게 됐고, 3년 차에는 이혼을 결심했다. 그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어찌 된 영문인지, 이혼은 유예됐고 엄마가 망설이는 사이 내가 태어났다.


두 번째 빚.

남편이 나를 만나기 몇 년 전에 이혼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나는 이 사람이 아니었대도 결혼 자체를 못했을 것 같다. 지금이라도 전부인에게 엎드려 절하고 싶다.


나는 유예된 이혼 덕에 태어났고, 한 번의 이혼 덕에 결혼을 할 수 있었다.

그러니 내가 이혼에 관해 한두 마디쯤은 할 자격은 있다고 생각한다.


주변에는 유독 이혼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서사가 많았고, 오히려 지속하고 싶은 마음이 없더라도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이웃집 윗집 아랫집 할 것 없이.

도박, 술, 바람, 돈, 섹스리스, 고부갈등, 폭력 등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몸에 맞지 않은 옷들을 옷장에 쌓아두는 것처럼, 들춰내려다 먼지 풀풀 날릴까 가만히 놔둔 문제들에 둘러 쌓여서.


그래서 결혼하기 전에는 이혼을 쉽게 말했다.


"아니 그 정도면 차라리 이혼을 하는 게 낫지 않아?"


"왜 자식들 때문에 참고 살아? 자식들한테는 그게 더 안 좋아.“

"술만 아니면 좋은 사람이라고? 그게 문제야.... “

"남편이 그냥 ATM이고 동거인이면 왜 같이 살아?"


등등.


하지만 막상 결혼을 하고 보니 웬걸, 그 쉬워 보이는 이혼은 내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 됐다.

'결혼은 참으로 복잡하게 행복하고 복잡하게 불행해서'* 결혼 생활이 힘들다고 쉽게 이혼을 선택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렇게 쉬운 선택이었다면, 엄마가 이혼하기까지 17년이 걸리지도 않았을뿐더러 남편이 결혼 생활 8년 중 5년을 이혼의 과정으로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혼 6년 차인 우리 또한 그러하다.

남편과 나는 서로에게 미쳐있었고, 서로가 없이는 죽을 것 같아서 같이 살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도 6년 간 도무지 해결이 되지 않는 한 두 가지 문제들은 잔잔한 수면 위로 불쑥 올라와 절썩절썩 큰 파도가 됐다. 그도 잡아먹고 나도 잡아먹힐 것 같은 순간에 남편은 "이혼도 방법일 수 있다"라고 말했다.


"넌 아주 이혼을 쉽게 말한다?"


"쉽게 말하는 거 아니야. 서로가 도저히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그게 너무 괴롭다면 그만하는 게 좋겠다고 말하는 거야."


이 남자는 첫 결혼과 이혼이 너무 힘들었기에, 이후의 삶이 오히려 더 좋았다고 한다. 이혼의 순기능을 직접적으로 학습한 터였다.

'배운 게 도둑질 아니고 이혼이야? 아주 잘도 써먹으려고 하네?' 하면서, 홧김에 "야 나도 지긋지긋하거든. 나도 이혼하고 싶거든!" 외치고 싶어졌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나는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도 않았고 준비할 마음도 없다는 것을.


갑자기 이혼당하고 고독하게 살다가 고독사나 다름없는 죽음을 맞이한 아빠의 얼굴이 떠올랐다.

남편의 주둥이를 틀어버리든지 그가 이혼을 말한 이유에 대해 속속들이 알던지 해야 했다.


그러다 얼마 전 도서관에서 <나답게 산다는 것>을 주제로 박은미 철학박사가 진행한 인문학 강의를 듣게 됐다.


"우리 집에는 또 한 명의 철학박사가 있어요. 그러니 우리가 싸울 때 얼마나 말로 피 터지겠습니까. 상대방에게 잘못이 있다고 생각해서 싸움이 나는 것인데, 그럴 때 저는 필사적으로 생각해요. '그렇다면 나는 정말로 잘못이 없는 걸까. 난 뭘 잘못했을까. 정말 정말 잘못한 게 없을까' 이렇게 이미 기울어진 무게추를 어떻게든 수평으로 맞추기 위한 노력을 하죠. 이게 제가 번번이 이혼에 실패하는 이유입니다."


이혼에 실패한다.

이혼에 실패한다.

이 말이 나를 졸졸 쫓아다녔고, 끝내는 집까지 쫓아왔다.


이혼에 실패하려면,


다른 사람에게만 잘못을 돌리면 안 되는 거였다. 나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 나는 어떤 잘못을 했는지 묻고 또 물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뱃속의 아이를 잃었는데도 전화 한 통 없던 엄마 이야기도 꺼내야 하고, 된장쌈장환장이었던 부모 사이 때문에 대환장이었던 내 어릴 적 양육환경도 돌이켜 봐야 한다. 내 부모 사이보다 나을게 하나 없어 보이는 시부모님은 도대체 왜 이혼을 하지 않는지도 살펴봐야겠지. 무엇보다 그들의 스트레스를 온몸으로 흡수하며 자란 그 집 아들을 정말로 이해하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에 이 글을 쓴다.


그러자면 내가 한쪽 눈을 잃은 사연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고, 결혼하고 왜 15kg가 쪘는지도 들여다봐야 한다. 매일 빨래를 하는 남편에게 왜 욕을 지껄이고 싶은지, 왜 몇 년에 한 번씩은 미친년이 되어 소리를 악악 지르는지도 말해야 한다.

남편은 왜 삼겹살을 1인분만 먹는지, 왜 사람이 말하는데 자꾸 멍을 때리는지, 도대체 그 머릿속은 왜 지구를 넘어 우주에서 헤매는지도. 왜 세상 모든 사람들이 불쌍해 보이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맞다, 빌어먹을지 눈앞에 있는 차키는 왜 매번 내게 물어보는지도!


그러니 나는 매일 이혼에 실패할 마음으로, 각오로, "이혼하자"라는 말을 꺼내게 만드는 아주아주 사소한 이유까지도 전부 꺼내 글로 남길 것이다. 창피해도 보여줄 것이다. 어차피 내 얼굴은 내가 못 본다. 토해 낸 글들을 거울삼아 내가 나에게 따져 물어볼 것이다.


누군가는 먼저 이혼의 순환고리를 끊어야 하니 내가 먼저 노력해서 끊어 볼 것이다.




*평범한 결혼생활, 임경선, 토스트,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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