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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팅 어플로 결혼하다 2

성급해 보이는 결혼

by 이손끝

“그 사람 사기꾼 같아, 조심해.”


연애 한 달 차, 고향 친구가 서울에 올라와 달뜬 내 러브 스토리를 듣고 나서 한 말이다.


나는 이혼에 실패하기로 했다. 소개팅 어플로 결혼.jpg 소개팅 앱에서의 첫 대화


소개팅 앱으로 만난 남자는 한 차례 이혼을 했다. 마흔두 살에 차도 집도 돈도 없이 1년 남짓 세계일주를 다녀온 지 얼마 안돼 나를 만났다. 게다가 심리상담사란다. 희한하게 '마음', '심리', '치료' 같은 단어들은 지나치게 무결하고 무해한 느낌이라, 현실에서 듣게 되면 의심부터 가게 마련인가 보다.

심지어 고작 연애 한 달 차인 내가 “그 사람이랑 결혼할 것 같아”라며 급발진을 하니 친구로서는 어안이 벙벙일 수밖에.


“아니 네가 도대체 뭐가 문제여서 그런 사람을 만나?”


비단 15년 지기 친구만 그렇게 말했던 건 아니다. 내 주위 사람들의 반응이 좋았다고는 할 수 없다. 모두들 아무리 내가 '진짜로' 사랑에 빠졌다고 말해도 금세 지나가는 일쯤으로 여기거나, 그 사기꾼 같은 놈과 진심으로 결혼을 할까 봐 걱정하는 눈치였다.

사랑이 어쩌다 이렇게 믿지 못할 가벼운 말이 되었을까.


“내 남편이 그러는데 술 안 하고 친구 없고 취미가 많으면 결혼해서 더 피곤하대.”


“어플로 사람을 만났다고? 결혼한다고?”


“애는 진짜 없대? 확인한 거 맞아?”


“너 그 사람이랑 결혼한다고? 저번에도 결혼한다 하고 헤어졌…”




당시 나는 사내들에 대한 근거 없는 편견을 갖고 있었다. 세상에 두 종류의 남자가 있는데, 착하고 재미없는 남자와 재밌지만 나쁜 남자가 전부라는 생각이었다. 세계가 그렇게 납작하게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건 나중에 알았지만. 사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착한 사람도 나쁜 사람도 아닌 인간의 복잡함과 울퉁불퉁함을 잘 헤아릴 줄 아는 남자라는 것 역시 뒤늦게 깨달았지만.

-- 김애란, <비행운> 중 단편 '너의 여름은 어떠니'에서 발췌


내가 한 달 만에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것처럼 빠져버린 그는 김애란 소설 속 한 문장을 떠올리게 했다. 그는 인간의 복잡함과 울퉁불퉁함을 정말로 잘 헤아릴 줄 아는 남자였다.


그는 다정했고 가볍지 않았다. 신중히 생각하며 말했고, 사람 위에 사람이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며 그런 신념을 실천하는 사람이었다. 앞과 뒤가 같았고 자신이 누구인지 분명하게 알기에 험담이나 가십거리 없이 동이 틀 때까지 이야기를 이어나갈 수 있는 사람. 나의 울퉁불퉁함을 자신의 울퉁불퉁함에 견주어 괜찮지 않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던 사람.

이런 점들은 눈에 잘 띄지 않는 것이었고 나는 운이 좋았다. 눈을 하나 잃은 덕분에 마음의 소리를 잘 듣게 된 모양이었을까.


나는 강한 확신으로 그 사람과 만난 지 몇 개월 지나지 않고 엄마에게 남자를 소개했다. 그리고 엄마가 남자에게 한 말은 나의 확신에 힘을 실어주었다.


"엄마, 사실 남자친구가 한번 결혼을 했었어. 20대에"

"어머 그러면 안 되는데..."


소개를 하기 전 엄마에게 가장 중요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했다. 엄마는 그러면 안 된다고 하면서도 얼굴을 한번 보자고 말했다. 만난 지 8개월 정도 될 무렵, 광화문의 어느 식당에서 엄마와 남자친구가 만났다.

엄마는 그 사람을 본체만체 음식만 먹었다. 지난번처럼 결혼식에 오니 안 오니 할까 봐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한참 후 후식으로 나온 배 한 조각을 들면서 엄마는,


"나는 이제 내 딸의 눈을 믿어보려고요.
딸이 선택한 사람이라면 좋은 사람일 거라 믿어요."


그 당시 엄마는 그의 상황들을 거의 대부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저 말을 할 수 있다니. 여러모로 엄마도 대단한 사람인 것이다.

물론 소개팅 어플로 만난 것은 몰랐다. 그렇게 만난 것을 알면 식당에서 젓가락이 내팽개쳐지는 게 아니라 다른 게 날아갔을 수도. 몰라서 좋을 일도 있다.


아무튼 그렇게 그 사기꾼 같은 '좋은' 남자와 소개팅 앱에서 첫 대화 후 1년 만에 혼인신고를 했다. 코로나가 극성일 때여서 결혼식은 생략하기로 했다. 심지어 상견례는 결혼한 지 2년 뒤 아이의 돌잔치와 같이 치렀다.


결혼 전 적당한 연애를 몇 번인가 했다. 적당히 좋아하고 적당히 계산하고 적당히 즐기는.


하지만 돌아보면 사랑에는 적당히가 없는 것 같다.

우리는 진공청소기처럼 서로를 빨아들이다 못해 집어삼킬듯한 사랑을 했다.

서로에게 주지 못해 안달이 났고 모든 걸 내보여도 괜찮은 타자(他者)가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흥분했으며, 서로에게 오래도록 그런 존재가 되기로 맹세했다. 모르긴 몰라도 이런 사람과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살다가 안 맞으면? 그건 그때 생각하기로.


그렇게 나는 (다른 사람이 보기에) 성급해 보이는 결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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