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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현 Apr 30. 2020

코로나 백만 시국, 미국맘의 시작

좌충우돌 미국맘 성장기

Skyrocketing. 고공행진이란 단어는 진짜 이럴 때 쓰는 게 아닐까 싶다. 잠잠해질 줄 모르고 하늘을 찌를 듯 치솟기만 하는 수치. 미국의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가 그제 오후 기준, (미국 동부 4월 28일) 백만 명을 넘어섰단다. 3월 초엽, 대학원의 모든 수업을 온라인으로 전환하겠다는 학교 당국의 공지를 받고 난 지 약 두 달 정도를 지나오고 있는 시점. 그 사이, 나는 만삭의 임산부에서 '매일매일 귀여워서 어쩔 줄 모르겠는' 신생아의 엄마가 되었다. 아기가 탄생했고 그에 발맞춰 '엄마'도 탄생했다.


코로나 확진자 백만 명을 넘어선 시국, 너와의 만남을 위해선 유모차 말고도 준비할 게 참 많아서.


이 세상 많은 엄마들이 각기 다른 제 개성과 정체성을 가지고 있겠지. 나 역시 그냥 엄마는 아니다. 전례 없는 바이러스 대유행, 팬데믹_pandemic 세상 속에서 모국 아닌 '타국'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미국의 초보 엄마’라는 정체성 하나. 마치 매일매일 서바이벌 게임하는 듯한 일상을 살고 있는 ‘매사추세츠의 자가격리 권고조치 속 ‘집콕맘’이라는 정체성 둘. 이 요란한 시국에 (미국 대학들의 가을학기 개강이 정상적일지는 모르겠으나,) 내년 5월 졸업을 앞두고 있는 미국 석사 유학생_스터딩 맘이라는 정체성 셋. 코로나 백만 시국 속, 미국맘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지난 1월 초엽만 해도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일상. 결국엔 이런 보도.


코로나 백만 시국, 미국맘 되다.
"출산하고 나면
어차피 집에서 쉬고만 있을 테니까!"


일단 출산을 하고 나면 임신 중일 때보다는 '덜' 불안할 거라고 생각했다. 산후조리 핑계로 어차피 ‘집콕’ 해야만 할 텐데, 코로나 무서워서 못 나가는 거나, 출산 이후 기력 보충과 휴식을 위해 집콕하는 거나, 결과적으로 별반 차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오히려 자가격리 권고조치 때문에 남편도 집에서 재택근무해온 지 어언 2개월. 틈틈이 남편 찬스 받기도 좋으니, 육아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환경?이라고 위안 삼아보려 애썼다.


매사추세츠 주가 아니라, 매스카추세츠주?

결과적으로, 출산 전이나 그 후나 매 순간 불안한 건 마찬가지. 아무리 외출을 최소화한다고한들, 신생아 정기검진을 위해 꼬박꼬박 소아과로 향해야 하는 일정이 생겨났고, (태어난 지 딱 사흘 된 아기 데리고 이 바이러스 시국에 소아과에 가야 한다니!!!) 아무리 미국에도 배달 서비스가 조금씩 생겨났다지만 남편의 마트 출석체크도 주 2회 이상. 출산 직후라서 일지, 그때그때 조달해야 하는 물품도 줄지를 않고, 즉흥적으로 먹고 싶은 것도 자꾸만 생겨나니 이거야 원... 외출 전후 철저히 소독제를 뿌려가며 혹시 모를 바이러스의 잔여물을 ‘칙칙’ 없애보려 한다지만 이래저래 생겨나는 불안과 걱정은 ‘탈탈’ 털어 지질 않는다. 상황 많이 좋아진 한국에서 엄마가 되었다면 이토록 긴장하진 않았을 텐데... 이 시국에 미국맘되기 참 어렵네.


이 앙증맞은 너의 발과 마주하기. 그 소중한 첫 시작을 위한 준비단계

미국맘 되기 1.

아들의 영어 이름을 짓다
이방인으로서 다른 나라 언어로 소중한 누군가의 이름을 고심 끝에 짓는다는 것. 아들, 너는 뭐라고 불렸으면 좋겠니?

이러나저러나, 어쨌든 미국맘. 출산을 한 달 남짓남겨두고 가장 고민했던 것 중 하나는 아들의 이름 짓기였다. 어떤 ‘시작’에는 늘 그 첫출발을 위한 명명 작업이 동반된다. 계획표에는 미션을 큼지막하게 이름 붙여 적어둬야 제맛이고, 시작하는 내 연애의 짝꿍의 이름에 나만의 애칭 덧붙여 핸드폰에 고이 저장해놓듯이! 아기를 맞이하는 첫 미션 역시 ‘이름 짓기’. 하지만 그냥 이름 아니고 영어 이름이다. 너무 낯설다. 감잡기가 쉽지 않다. 타국에서 태어난 자, 여전히 낯선 이 나라에서 살아가기에 적합하고 유연하되 그 어떤 강단 있는 에너지가 잠재되어있는 이름.


일찍이 산부인과로부터 매사추세츠 출생신고서를 사전에 받았는데, First name... 이 빈칸 채우기가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2020년 인기 있는 아기 영어 이름, 검색하기를 수십 번. 남편의 네이티브 지인들에게도 자문해보기를 수차례. 내가 좋아하는 영화 속 남자 주인공 이름이 뭐였더라? 대학원 친구들 중에 멋져 보이는 이름은 없던가?


친구들에게 뭐라고 불릴 때 너가 가장 너다울 수 있을까?


하지만 영어학원에서 잠깐 쓰고 말 닉네임 정하는 게 아니잖아. 몇 가지 엄격한 기준을 세워뒀다. 한국 토박이인 엄마도 일관성 있게 발음할 수 있는 까다롭지 않은 영어 발음일 것. R이나 L, P나 F 발음은 평생 완벽할 수 없을 것 같으니 가뿐히 패스. 조부모님에게도 그리 낯설지 않게 다가갈 수 있는 간단하면서도 익숙한 영어 철자를 지니고 있을 것. 한국어로 적었을 때 세음절을 넘기지 않았으면 좋겠음. 흔하고 촌스러운 느낌도 싫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너무 유행 타는 트렌디한 명명은 아닐 것. 한국어로 전환해 적었을 때 놀림받을만한 요소가 전무할 것. 그 까다로운 과정심사 속에 태어난 이름 하나. J로 시작하는 부드럽고 귀여운 어감. 상냥하고 경쾌해 보이는 발음. 우리 아들이 본인 이름 참 좋아했으면 좋겠다.


미국맘 되기 2.

디럭스 유모차 안 사길 참 다행
디럭스 유모차 샀으면 어쩔 뻔?
어디 나가지도 못하는데!


작년 말까지만 해도 s브랜드와 b브랜드의 큼지막한 디럭스 유모차가 참 탐이 많이 났더랬다. 신생아 시기 때부터 길어야 돌 직전까지 탈 수 있다는 이 유모차. 태어난 지 얼마되지 않은 신생아를 태우고도 안정감 있는 운전이 가능해서 아기 데리고 동네 한 바퀴 돌기, 마트나 백화점 구경 가기 딱이다 싶어 욕심났다. 하지만 큼지막하고 무게감 있는 차체 때문에 남편 도움 없이는 혼자 관리하기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고 기대만큼 활용을 많이 하지 못할 것 같아서 고심 끝에 득템 포기. 근데 코로나가 이렇게 심각해질 줄 알았나. 주정부마다 집에 콕 들어가 있으라는데, 샀더라도 차곡 차곡 먼지만 쌓였을 디럭스 유모차, 이거 안 사길 참 잘했네. 자칫 미국맘 시작부터 억울할 뻔했다.

작년의 보스턴 커먼 공원 사진을 꺼내드니, 평소 집콕녀인 미국맘도 새삼 산책이 그리워진다. 올해 언제라도 아기 데리고 사뿐사뿐 거니는 몸짓이 가능하기는 할까. 영화 <내니 다이어리>에서 뉴욕 센트럴파크로 모여들던 유모차 부대의 풍경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뭐 그곳뿐인가. 아기와의 산책은 보스턴 이곳도 제맛인데, 2021년에나 가능할는지. 그때까지는 아직 고이 모셔두기만 한 절충형 유모차가 빛을 발할 수 있겠지? 기약할 수 없는 유모차 첫 주행.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마음만이라도 너와 바람결 따라 거니는 상상. 티셔츠에 바람 일렁거리며 스며드는 그 느낌 꿈꿔보기. 그 본격적인 시작을 기다리기.


미국맘 되기 3.

엄마 영어의 시작. 내 영어가 멈춘 것만 같아

주삿바늘을 꽂는 것 같은 순간들이 있다. 필수인 건 알겠는데 썩 내키지 않는 거다. 심지어 불쾌하고 불편하기 그지없다. 때때로 눈물도 몇 방울 찔끔. 심할 땐 그 잠깐에 스트레스 지수가 최고조에 이르러 마른침을 삼키고 눈에 있는 힘껏 힘을 줘 가며 이마에 온갖 미운 주름을 만드는 잠깐의 시간들. 미국에 살면서 종종 겪는 영어 트러블이 이와 닮았다. 특히 엄마 필수 영어.


미국 석사 유학생 2년 차. 오히려 전공영어, 학교 영어는 적응 잘 한 덕택인지 한결 할 만하다 싶다. (영어가 완벽할 리 없는 한국 토박이 35살 유학생은 이렇게 oo영어, xx 영어라고 이름 붙여보곤 한다. 진짜 잘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분류가 필요없을 것을!) 전공 수업에서의 영어토론이나 프레젠테이션에도 제법 재미를 붙였다. 아마 관심분야에 대해서 자꾸 읽고 듣고 말하고 싶은 게 많아지다 보니 자주 쓰는 키워드나 문장들이 익숙해진 덕분일 거다. 자연스레 전공 이슈에 대한 내 생각도 틈틈이 정리되고 있을 테고.


하지만, 엄마 영어는 또 다른 신세계? 나름 나 미국 2년 차에, 석사 유학생인데,,, 딱히 어려운 것 하나 없을 줄로만 알았다? 일단 그 시작에 대한 만족도는 별 5개에 별 1 되시겠다. 울퉁불퉁 우여곡절의 끝판왕. 마음에 영 차질 않는 언어구사력. 내 영어능력이 초기화됐니? 아기 상태를 정확히 표현하고 우려되는 몇 가지 신생아 질환들을 세세히 따져 묻기가 여전히 어색하고 어렵다. 신생아 황달은 뭐라고 한다고 했더라? 태열이 있을 것 같아 보이는데 그냥 아기피부에 outbreak이 걱정된다고 하면 되나? rashes를 태열표현에 써도되나? 또 다른 전문용어가 있나? 변 상태도 더 자세히 묘사하고 싶은데 고작해야 색깔과 sticky의 여부 정도 (이건 한국어로도 어려울 것 같긴 하다?) 토하는 것과 살짝 뱉어내는 건 엄연히 다른 건데 이거 그냥 spit up이라고 통칭? throw up이라고 할까, vomit이라고 할까. 아기 poop마저 poop이라 말하는 게 어색해서 처음엔 에둘러 go number2 라고 표현하기도.

모국어로도 익숙하지 않은 것들을 타국의 언어로 배워간다는 것. 고단하고도 지루한 여정이 될 테지만.


원어민이 아니니 여전히 일상적인 용어들의 섬세한 뉘앙스 인지가 서툴다. 학교 영어나 Gre 시험준비보다 일상회화의 센스가 더 어렵기만 하더라. 알다가도 잘 모르겠다. 미국살이 꽤 길어지면 대충 이야기해도 상대방이 찰떡 같이 알아듣는 순간들 역시 꽤 있겠으나, 신생아와 함께하는 시간들 대부분에 관해서는 ‘대충. 어느 정도. 적당히’가 통하질 않는다. 컨디션이 안 좋을 땐 그나마의 영어 구사력도 꼬이고 또 꼬여서 “어머, 제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죠”싶은 순간들이 왕왕 찾아왔으니... 임신 출산 용어만큼이나 아기 용어들도 따로 익히고 연습해야 할 것 같네. 익숙해지면 이 또한 단련될까? 일단 그 시작은 험난하였다더라.


새로운 이름표. 그 위에 사뿐히 덧대진 새로운 사명감, 책임감.

엄마라는 이름표. 한국 아닌 타지에서 미국 맘으로 살아간다는 것. 아니 근데 그냥 미국 맘도 아니고, 코로나 확진자 자그마치 백만 명 넘었다는 이 나라에서 매 순간 잔뜩 긴장하며 22일 차 신생아와 함께한다는 것. 그러니까 다시 말해, ‘코로나 백만 시국 속, 미국맘’이 되었다는 것. 생각보다 훨씬 더 요란하고 어려운 미션들의 시작. 꼬리에 꼬리를 무는 불안과 걱정들의 릴레이.

그 만만치 않은, 예사롭지 않은 도전의 시작. 시작이 반이라고들 하는데, 그 완성에 달하는 지점이 어딘가에 있기야 있겠지? 나머지 절반이 충만하게 채워지는 순간이 언젠가 찾아오기야 할 테지? 그 완성되어가는 느낌에 뿌듯, 흐뭇해하는 타이밍이 손에 착 감기는 날이 오기른 하겠지.

처음에는 영 맞지 않던 신발이 점점 자리를 잡아가듯이 말이야. 크거나 작아서 내 옷, 내 신발이 아닌 것만 같은 것들이 점점 ‘내 거’가 되어가듯이 새로 단 내 이름표에도 익숙해져 가길 기다려 본다. 좌충우돌 미국맘의 시작 이야기. 자, 그리고 그 본격적인 성장의 시작!


나의 시작을 스스로 격려하며 다시 집어든 책1권. 가수 이소은의 아버지가 집필한 에세이. <나는천천히 아빠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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