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llie 수현 Oct 13. 2021

보스턴 김밥은 7.95달러

부캐는 미국 엄마 (19화)

고백한다. 태어나서 김밥을 단 한 번도 싸 본 적이 없다. 김밥이 내 취향 아니라서가 결코 아니다. 사연 얽힌 트라우마가 있는 게 아니라면 대부분의 한국인들, 소풍날 ‘김밥’ 도시락에 얽힌 추억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테니까. 우리 동네 김밥집 아주머니의 손길이었든, 울 엄마의 손길로 둘둘 말린 형체로 다가왔든 말이다. 내게 김밥은 늘 엄마의 영역이었다. 그렇게 누가 정해놓은 것도 아닌데 ‘김밥을 만드는 주체’는 늘 엄마였고 엄마여야만 했다. 주체가 달라지면 그 김밥은 왠지 내 김밥 같지 않았고 맛도 그닥이었다. 한 번쯤은 도전해볼 법도 한데 자그마치 35년간 시도조차 해본 적이 없다. 그렇게 김밥 기술이 없는 채로 미국에 왔다.


타국에서 더 그리운 김. 밥. 생. 각


당연히 고국을 떠났으니 내 나라 음식이 그립다. 김밥도 그중 하나. 희한한 건 한국에 잠시 방문했을 때는 딱히 찾지 않던 음식들마저 타국 땅만 밟았다 하면 공항에서부터 먹고 싶어 진다는 거다. 그토록 많은 배달업체와 분식집이 시내 곳곳 즐비했는데 왜 나는 한국에서 김밥집을 찾지 않는 우를 범했을까. 왜 저탄고지 한다면서 김밥을 멀리했던 걸까. 미국 한인마트 한편에도 김밥 완제품을 판매하지만 스치듯 봐도 꽤나 오래된 듯 마르고 딱딱한 모양새다.


당연히 한국형 분식집도 있지만 타국의 한식당이 가성비 좋을 리 없다. 참치 김밥 한 줄 6.95달러, 불고기 김밥 7.95달러. 오늘의 환율 (1달러=1,192.50원)을 적용했을 때 전자는 8,287원, 후자는 9,480원 되시겠다. 세금과 팁까지 포함하면 김밥 한 줄에 만 원이 족히 넘는다. 비싸지만 맛있는 게 함정이다. 그나마 임신했을 때는 아까운 줄 모르고 마음껏 사 먹었다. 내가 먹고 싶은 게 아니라 아기가 먹고 싶은 거였으니까. 18개월 아기를 키우는 요즘은 한 푼이라도 아끼고픈 마음에 감히 지르지 못한다. 김밥도 마음먹고 ‘질러야’하는 나라에 살고 있다.


보스턴 한 분식집의 메뉴판. 팬데믹 이후로 가보지 못했다. 그새 물가가 조금 더 오른 건 아닐까. 김밥 가격만큼은 더 솟구치지 말아줘.


딱 4딸라만 했으면 좋겠어
보스턴 김밥


종종 ‘김밥’을 먹고 싶다. 김밥이 최애 음식이 아닌데도 그리운 메뉴인 건 어쩔 수가 없다. 고등학교 시절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잠깐 먹고 오던 ‘김O네’ 김밥이 생각나고 백화점 한편에 종종 팝업스토어로 들어와서 구미를 당기던 ‘리O밥’도 보고 싶다. 학교 현장학습 날 내 도시락에 고이 챙겨가던 김밥은 말해 무엇하리. 한국 돈 환산 금액으로 5천 원 정도만 해도 아니 7천 원 정도만 해도 조금 더 마음 편히 사 먹을 텐데 보스턴 김밥의 가격은 너무도 사악하다. (맛있어서 더 미운 김밥.)


보스턴 S 분식집의 영롱한 참치김밥 두 줄. 세금과 팁 포함 2만 원어치.


아기가 조금 더 자라서 학교에 다닐 나이가 된다면 (미국에서든, 한국에서든) 김밥은 ‘사’ 줄 수가 없을 듯싶다. 정성 다해 ‘싸’ 줘야 하는 수밖에. 성장기 아이의 식성을 고려해 단 두 줄만 ‘살’ 수는 없을 테고 소풍 분위기 가족 다 함께 즐기려면 적어도 1인당 두 줄은 손에 넣어야 하지 않을까. 늘 고마운 이웃, 옆집 앞집 가족들에게도 이 맛 보여주고 싶으니까 아예 하루쯤은 김밥데이 정해두고 큰맘 먹고 넉넉히 열 줄쯤은 ‘싸’야 할 것 같다. 열 줄을 사면 어림잡더라도 10만 원이 넘을 테니 노노. 단체 야유회를 가는 것도 아닌데 10만 원어치 김밥은 너무하다. 조만간 싸는 법을 부지런히 연습해야지.


‘배달의 민족’에서 찾아본 2021 한국 김밥 물가. 꽤나 비싼 프리미엄 김밥도 있지만 대개 한 줄에 4천 원 내외로 김밥욕구 충전 가능



우리말이야,
미국에서 김밥 장사해볼까


상황이 이러하니 우스갯소리로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가 있다. “우리, 미국에서 김밥 장사해볼까.” 웃자고 하는 얘기지만 생각보다 수요도 꾸준할 테고 보스턴 물가 고려하면 높은 가격 책정에도 불구하고 구매층이 있을 테니 나쁘지 않은 사업 템이다. 실제로 한국음식점 몰려있는 거리가 아닌 곳에서도 ‘김밥’을 만들어 파시는 재미동포분들 숫자가 심심치 않게 늘었다. 소셜미디어가 그 홍보 역할을 자처하니 따로 가게 홍보에 열 올리지 않아도 거뜬하다. 김밥 두 줄 8달러, 참치김밥 두 줄 9달러라고 하니, 분식집 물가보다야 훨씬 나은 셈이다. 주문해 먹어본 적은 없지만 평이 나쁘지 않아서 시도해볼 만하지 싶다. 물론, 여전히 한국의 김밥 물가와 비교하자면 ‘저렴하지 않아서’ 눈물 나지만.


이럴 줄 알았다면 한국에서 김밥 한 줄 더 먹고 올 걸 그랬지


미국맘의 삶은 그렇다. 한국에 없는 것들을 하나씩 감당해 내야 하는 삶. 육아맘들에게 주 1, 2회 필수라는 ‘문센’이 없고, 어린이집 한 블록 건너 ‘스카’가 없다. 육아하면서 건조해진 감수성을 채워줄 ‘스타벅스 다이어리’ 이벤트도 없고, 철 지난 육아템 처분할 마음 편한 우리 플랫폼 ‘당근’이 아쉽다. (대체제인 중고거래 미국식 플랫폼이 있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육아하면서 새로운 아이템을 찾아내고 몰랐던 공간을 찾아내는 재미가 있을 줄만 알았더랬다. 타국 육아는 한국 육아와 반대다. 한국에 ‘있어서’ 즐길 법한 육아 라이프를 한국을 ‘떠나서’ 맛보지 못하는 삶. 매일 같이 부재한 것들을 깨달아가고 ‘없어서 아쉽다’는 마음을 자주 떠올린다. ‘미국에도 이게 있었다면 참 좋았을 텐데’, ‘왜 한국에는 있는데 미국에는 없는 거야?’ 투덜투덜. 한국에는 4천 원짜리 김밥도 제법 많던데 왜 보스턴에서는 만 원이나 들여야 하는 거야.


그저그런 뻔한 과자와 떡도 정말이지 너무 비싼 보스턴
그래도 먹고 싶으면 먹어야지. 떡 4팩 약 30달러. 어림잡아 4만 원어치.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육아


하나의 문이 닫히면 다른 한쪽 문이 열린다는 얘기가 있다. 마찬가지로 ‘무언가가 없다’는 이야기는 ‘대신 게 다른 게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할 테지.


굳이 영어 유치원에 부랴부랴 입학상담 가지 않아도 우리 집 문만 열면 영어로 우리 아들과 소통해주는 옆집 아저씨 칼과 내 또래 엄마 안젤라가 ‘있다’. 유모차를 태워 아기와 산책 나갈 때마다 예쁘다고 쓰다듬어주시는 동네 할머님들의 손길이 ‘있고’ 영어 키즈카페를 수소문하지 않아도 어린이 박물관에 가면 아이를 위한 최적의 영어 노출 놀이 환경이 ‘있다’. 아이를 위해 차후 미국 한 달 살기를 돈 천만 원 들여 계획하지 않아도 일요일마다 들락날락하며 놀 수 있는 하버드 캠퍼스가 집 근처에 ‘있고’, 찰스 강변의 바람을 맛보다가 해 질 녘 유유자적 거닐며 패밀리 타임 가질 수 있는 MIT 캠퍼스도 멀지 않은 곳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육아에 감사한 이유.




유독 그런 날들이 있다. 미국맘이라서, 미국 육아를 해서 채우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고 속상해하는 하루. 한국에는 흔히 ‘있는데’, 미국에는 당연히 ‘없어서’ 불편하고 아쉬운 것들. 무언가의 부재로 인해 미국 육아가 버겁게 느껴지는 날엔 방금 열거한 ‘있는 것’들에 최대한 마음을 들여보기로 한다. 보스턴에 7.95달러 김밥이 최선이라고 해도 이곳에 한국에서 흔한 4천 원 김밥이 있지 않다고 해도 충분히 괜찮은 날이기를 희망해 본다. 오늘 하루, 미국맘의 오후 풍경도 평화롭기를.




한 줄에 10조각이었으니까, 한 조각은 약 8센트. 천천히 녹여먹자
김밥 가격 사악한데 떡볶이는 말해 무엇하리.
실제 며칠 전 먹은 김밥 2줄과 라볶이의 가격표 짠. 팁 포함 48달러. 원화로 환산하면 5만7천원쯤 되는거야? 그런거야?
이전 18화 펌킨과 애플이면 다 되는 미국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