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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 수현 Oct 14. 2021

하버드가 30분 거리라서

부캐는 미국 엄마 (20화)

“우와 사람이 왜 이렇게 많아?”

코로나가 완전히 끝난 줄 알았다. 지난 일요일, 집에서 나가자고 발 동동 안달이 난 아기를 데리고 하버드 캠퍼스에 갔을 때 얘기다. 팬데믹 선언 이후 보스턴 각 학교들이 원격수업으로의 전환을 공지했던 작년의 풍경은 온 데 간 데 없었다. 아기랑 한적한 캠퍼스 산책을 누리려던 계획은 실패? 하버드 주변 곳곳의 맛집과 유명 카페는 만석인 데다가 ‘위험할 것 같다’는 얕은 비명을 외쳐야 할 것 같이 붐볐다. 팬데믹이 완전히 끝나기도 전에 다시 아이비리그 관광이 시작된 걸까. 상상과 다른 풍경에 조금 놀랐지만, 최대한 사람이 없는 구역을 골라 캠퍼스에서 잘 놀고 왔다. 우리 집에서 약 30분 거리, 하버드에서 말이다.


Greater Boston, 매사추세츠의 보스턴 권역에 살다 보면 참 자주 마주한다. 하버드와 MIT에 소속되어 일상을 살아가는 멋진 사람들. (꺅, 진짜 너무 멋있잖아!) 친구의 남편은 하버드에 다니고 있었고, 친한 언니의 남편은 MIT에 합격해 온 가족이 미 동부로 이사를 왔다. 석사 유학시절 타고 다녔던 전철 T에선 후줄근한 와인색 후드마저 빛나도록 예뻤던 하버드 여대생을 같은 칸에서 자주 만났고 매일 같은 시간대 커뮤터 레일을 타서 반가웠던 할아버지, 알고 보니 MIT 교수님이라고 하셨다. 한국에선 하버드와 MIT 재학생, 동문 만나기가 그... 렇게 쉽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고개를 이쪽으로 돌리면 하버드 저쪽으로 돌리면 MIT. 이 정도면 먼 옛날 드라마 한 편이 현실로 다가온 것만 같다. 김태희, 김래원 주연의 러브스토리 인 하버드. (나 너무 옛날 사람?)


집에서 하버드까지 약 30분이라니, 이토록 가까울 수가!


그 동네 애들은 쭉쭉 자라서
동네 가장 가까운 대학교만
가도 좋겠네


미국 출국을 한 달여 앞두고 아나운서연합회 송별 자리에서 한 선배님께서 하신 말씀. “아니, 근거리에 하버드 있으니, 뭐 어릴 때부터 동네 학교 하버드 보고 자라는 거 아니야. 어우, 좋겠다.” 미국에서의 새 삶에 긴장 풀고 즐거이 지내라고 보태주신 재미난 응원 메시지인 줄 잘 알고 있다. 이 지역에 산다고 이 지역 명문대에 그대로 입학하는 게 아니라는 것도 당연히 안다. 그래도 보스턴에 이사오며 반가운 사실 중 하나였던 건 분명하다. 하버드와 MIT가 자리하는 케임브리지가 근거리에 있다는 것. 나도 남편도 두 학교 소속은 아니지만, 공간이 오래도록 품은 에너지를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다는 건 분명 의미가 크다. 왜 고3 때 한 번씩 가고 싶은 대학 캠퍼스를 견학하며 합격 기운 받고 오지 않았던가.  



아기가 있으니 더더욱 그렇다. 18개월 아기를 아이비리그 보내겠다고 이른 치맛바람 결심하는 건 정말 아니라는 걸 밝혀둔다. (넌 건강하게만 자라면 돼. 진짜야.) 그래도!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멋진 형아 누나들 살아가는 일상을 틈틈이 접할 수 있는 기회는 고맙다. “꼭 공부 잘해서 너도 하버드에 가야지.”라는 의도가 아니라, 그 치열하면서도 자유로운 열정들을 눈으로 보고 읽어내길 하는 바람이다. 연구자가 되든, 가수가 되든, 연극배우가 되든, 어느 자리에 서서 무엇을 하든 필요한 가치 아닐까. 이 삶 멋지게 한 판 놀며 즐기며 살아내려면.



하버드 동상 발 만지기. 내 손이 그의 발을 쓰담쓰담하면 하버드에 합격한다는 전설. (내가 합격하는 건지, 후대가 합격하는 건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 유명한 리추얼은 치르지 않고 돌아왔다. 우리가 원하는 건 합격이 아니라 멋진 영혼들이 앉아 치열하게 토론을 나누는 잔디밭의 기운, 그러다 지치면 투고 박스 런치를 살금살금 먹다가 드러누워버리는 자유였으니까. 하하, 생각해보니 아기는 안 만졌지만 2년 전 우리 부부는 만졌네. 전설에 쿨하지 못한 어른들이여!



집 가까이에 명성 자자한 학교가 있어 고마운 마음. 그 안에 간절히 꿈을 꾸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 열정에 노출될 가능성이 열려있어서, 어린 시절부터 형아 누나들의 뜨거운 눈빛을 담을 기회가 잦아서 그러하다. 내 자녀가 미래 똑같은 자리 합격하길 바라서가 아니다. 그런 무언의 압력과 강박은 강력히 거부하련다. 그저 그 청춘들의 기운을 (나이, 명명되는 세대 관계없이) 담고 자랐으면 좋겠다. 어디서든 그 예쁜 열정을 발휘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는 아이가 된다면 좋겠다.



Louisa May Alcott’s Orchard House
루이자 메이 올컷 하우스
7분
Walden Pond
월든 폰드
10분


미국에서 얼마 전 이사하면서 가까운 하버드만큼이나 또 하나 반가웠던 사실들. 미국 문학기행 코스를 짜서 지인들을 초대해도 될 만큼 문학 거장들의 숨결이 가까운 Concord가 집과 가깝다는 사실. 어릴 적부터 보고 또 보며 한 장 한 장 아껴읽던 <작은 아씨들> 작가의 생가, (일명 The house of little women) 집에서 이토록 가깝다니! 이사하던 날은 그 소담하고 고즈넉한 매력의 Orchard House를 마음껏 느껴야겠다고 다짐했던 날이기도 했다. ‘집 근처 스타벅스를 들르듯 자주 가야지.’ 왠지 다녀오는 날은 브런치 글도 잘 써질 것만 같아서.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월든>. 그 월든 폰드도 지척이었다. 아기에게 그 고요한 물가를 처음 보여줬던 날, 뭔가 느껴진다는 듯 1살 평생 가장 침착하고 경건한 표정을 보여줬던 아기는 (...라고 한다면 엄마의 착각이겠지만) 마치 어린이 시인이자 에세이스트 같아 보였달까. 아이가 그런 기운을 받고 살아갈 수 있는 공간들이 참 선물 같다. 고맙다.


가깝다고 해서 모든 게 통하는 건 아니지만 가까워서 정들고 익숙해서 영감 받는 풍경들... 그 속에서 오늘의 미국 육아도 흘러가고 있다.


(좌) 월든 폰드에서의 아기 (우) 작은 아씨들의 집


이사하는 우리집이 참 반가웠던 이유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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