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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 싱글하우스가 필요한 이유

[18화] 아름답고 푸른 신경다양성 세계

by 마이 엘리뷰

한국에서 아이를 낳고 키운다면 자그마치 열이면 여덟의 부모들은 비슷한 잔소리를 하고 있지 않을까. "뛰지 마. 소리 지르지 마. 물건 던지지 마." 물론 나도 같은 의미를 좀 더 부드럽게 바꿀 수 있음을 안다. "사뿐사뿐 걸어볼까? 우리 조금만 작게 속삭여볼까? 이거 예쁘게 갖다 줄 수 있어요?"


한 가구 천장 위에 다른 가구 바닥이 촘촘히 연결된 겹겹이 세상. 한국에서 아파트에 살다 보면 층간소음에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내 아이가 빽 하고 소리 지를 때마다 가슴이 쫄깃하고 소파에서 점핑해 바닥으로 착지하는 걸 보고 있노라면 아랫집 어르신 불편하다고 뛰어올라오시면 어쩌나, 나 역시 아이에게 빽 하고 소리 지른다. "엄마가 이거 하지 말랬지! 이러면 돼? 안 돼?" 툭하면 "하지 말랬지"부터 내뱉는 엄마. 공간은 엄마의 예민함 강도마저 바꾸는구나! 종종 생각했다.



미국에서 싱글하우스에 살고 있다. '우와아' 입이 떡 벌어질 만큼 대저택 스케일은 아니지만 아담한 뒷마당과 초록초록한 초원뷰 뒷마당을 품은 자그마한 2층집이다. 미국에도 아파트가 있고 공동 주택 형태의 타운하우스가 있지만 각각의 단독주택은 '싱글하우스'라고 부른다. 신혼시절에는 남편의 직장 근처 아파트에 살았었는데 월세가 천정부지로 치솟다 보니 자그마하더라도 우리만의 '집'이 있는 편이 낫겠다고 판단했던 것. 이런저런 경제적 형편을 고려해 나름의 계산기를 굴린 선택이었음에도 처음에 나는 싱글하우스가 참 싫었다. 한국에서 아파트 생활만 해왔던 내게 싱글하우스라는 일련의 주택생활은 까다로운 도전이었고 굳이 안 해도 되는 모험 아닌가, 매번 고개를 갸웃거렸던 선택지였다. 불편했고 때때로 무서웠고 관리는 까다로웠다. 매력이 거의 없어 보였다.



여보, 무당벌레 또 나왔어
여보, 이거 봐!
이거 거미 아니야?


아파트 러버인 나에겐 실로 충격적인 일상이 몇몇 있었더랬다. "거미가 줄을 타고 내려옵니다"는 노래가사인 줄만 알았지, 진짜 줄을 타고 내려오더라. 잠을 자다가 위에서 통통 거리는 소리가 들려올 땐 우리 집에 쥐가 있는 것 같다고 소름 끼치게 울 뻔했다. 집에 대한 짜증과 불만이 늘다 보니 자연스레 남편과도 다툴 일이 많았다. 애써 고르고 고른 싱글하우스를 드림하우스라고 예뻐해 주기는커녕, "이거 불편해. 저거 짜증 나" 싫은 소리만 릴레이로 읊으니 남편도 지쳤겠구나 싶다. 당시 18개월 무렵이던 첫째가 2층으로 향하는 계단에서 철퍼턱 넘어지는 것도 '싱글하우스 탓' (아파트에 살면 집안 계단에서 넘어질 일 없을 테니까). 옆집 잔디 깎는 소리에 아이가 자지러지게 울 때도 '싱글하우스 탓'을 했다.



그랬던 내가 변했다. 주택이 지독하게도 싫었던 애미. 아니 오버 쪼금 더 보태서 싱글하우스 제발 포기하고 월세가 비싸봐야 얼마나 비싸겠냐며 (근데 헙...하게 많이 비싸긴 하다) 내 집 말고 월세로라도 아파트 살았으면 좋겠다고 노래를 부르던 애미가 바뀌기 시작했다. 자그마한 주택도 나름 괜찮다고 느끼게 된 데는 아이들이 한 해 두 해 공짜로 먹은 '나이'에 있었다. 갓 돌 넘어 걸음마 이제 막 시작했던 아들이 만 5세가 되었고, 이 집에 처음 들어올 때 뱃속에 자리하고 있었던 딸이 말괄량이 만 3세가 된 거다. 새벽녘에고, 야밤에고 "놀이터 나가자고 나가자고" 졸라대는 어린이로 자라나 버린 시점. 영아 때는 불편하기만 했던 싱글하우스 구석구석이 자유의 전당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놀이터 나가자고 성화일 때 뒷마당 통하는 문 활짝 열어두기만 하면 되는 것.



이뿐만이랴. 가끔 느닷없이 출현해 주는 무당벌레와 거미마저 때론 긍정적인 시선 충만히 발휘해서 '교육적이기'까지 했다. 여전히 벌레 잡을 때면 소스라치지만, 그럼에도 애들은 놀라는 엄마 모습마저 좋댄다. 한국 어린이집에서 매달 꼬박꼬박 만천 원 정도를 내가며 '지구친구' 특성화교재를 구독했는데, 딴 게 지구친구인가. 우리 집에 공생하는 자그마한 벌레들은 그야말로 살아 숨 쉬는 지구친구 아니던가. (벌레 몇 마리에 너무 오버했나!)


호텔에 오션뷰, 가든뷰 붙는 건 자주 봤는데 우리집 뒤뜰은 초원뷰고, 앞뜰은 심지어 다람쥐뷰. (3초 안에 그냥 쓱 봐도 다람쥐 5마리는 볼 수 있을 거다). 토끼는 물론이고 가끔 앞마당에 찾아온 사슴도 봤다. 남편은 너무 뜻밖에도 여우를 본 적도 있다고 했다. 이쯤하면 지구친구 교재의 현장판이요, 동물원의 하우스 판이다.

우리집 다람쥐 뷰. 오늘은 어떤 동물친구가 찾아오려나?


가뜩이나 외부활동이 제약적일 수밖에 없는 신경다양성 아이에게 싱글하우스는 맞춤형 키카가 된다. 자동차 장난감에 상상 이상 몰입하다 보면 때론 방안에만 있기를 고집하기 쉬운 아이. 전반적인 근긴장도가 낮아서 세심히 신경 쓰지 않으면 실내 벽이나 바닥에만 늘어져 있으려 할까 봐, 의도적으로 '바깥 공간'으로 나가자고 유도해야한다. 이럴진대, 집 앞마당, 뒷마당이 펼쳐져있으면 외출에 대한 부담감도 '훅' 줄어든다.

상승과 하강에 대한 감각 때문에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잠깐이라도 텐트럼 터질까 봐 긴장하지 않아도 되고 다른 동 친구들과 같이 놀아야 하는 공동 놀이터에서 또래들과 갈등 생길까 봐 전전긍긍하면서 따라다니지 않아도 되니까. 부모의 삶의 질도 소박하게나마 업업! 몇 마리 벌레 잡기에 몰두하는 일상쯤은 충분히 양보할 만한 이슈가 되어버린다. (무당벌레 다 덤벼!) 아이가 자라나면서 소박하고 낡은 주택에서도 건질 수 있는 장점이 훅 늘었다. 그렇게 한 때의 싱글하우스 헤이터는 결국 날마다 이런저런 장점 꼽기에 돌입하게 된다.


마당에 두고 쓰기 좋을 장난감 마련하는 재미가 쏠쏠. 신축 아파트 단지의 화려하고 감각적인 놀이터는 아니지만 문 열면 우리만의 무대


뛰지 마. 뛰지 말랬지
소리 지르지 마
얘들아, 제발 던지지 좀 마


가장 결정적인 장점은 단연 '뛰어도 된다'는 데 있지 않을까! 그토록 '뛰지 말라'라고, "여기서 뛰면 돼? 안돼?" 이 짜증 섞인 잔소리 한 마디가 내 삶의 좌우명이라도 되는 것처럼 아파트살이에서 매일 내뱉고 살지 않았던가. 한국 친정집에서 머물 때면 손주들의 콩콩콩 발걸음 소리나 돌발 점프에 혹여 부모님 이웃과 갈등이라도 생길까 내내 가슴을 졸였다. 실로 층간소음이랄 게 없는 주택에 살면 아이들이 놀다가 흥분해도 너그럽고 유연한 부모가 된다.



매순간 뛰어도 된다는 건 아니지만 "그래, 뭐 가끔 뛸 수도 있지" 미소가 스미는 것. 아이들이 좋아하는 '아파트' 노래를 틀어두고 핸드폰 조명을 미러볼 삼아 같이 댄스파티를 벌일 수도 있는 저녁도 흥미진진하다. (물론 옆에 사는 이웃 주택에 방해가 되지 않는 적절한 수위조절 선에서) 더더욱이 신경다양성 첫째 아이가 각성이 너무 높아져 소리를 크게 지르거나 점핑 레벨이 평균선을 넘어가도 아이의 그 행동 '무조건 당장 못하게 하느라' 악을 쓰지 않아도 되니 '소리 지르는' 악역을 도맡지 않아도 된다. 한 마디로 뭐든 못하게 제지하느라 혼이 빠지지 않아서 살 만해졌다.



'제지하는 데 꽂힌' 부모가 사라지니 애들도 표정이 한결 밝아진 건 느낌적인 느낌. 이것도 하지 마, 저것도 하지 마. 한국 아파트에 머물 때면 아이들에게 건네는 대화의 절반이 "DON'T DO THAT"이었던 것 같은데 자연스레 "이거 해보자. 저거 해보자" 제안거리도 다채로워졌다. 한국에서 친정엄마가 놀러 오셨을 때 문득 동네 문방구에서 줄넘기 두 개를 사 오셨는데 영하권의 보스턴 봄날에 '줄린이' 남매는 식탁 옆 거실 바닥에서 줄넘기 뜀박질을 열정을 다해 배웠더랬다. (아파트에선 상상도 못 할 일 아닌가!) 놀랍고도 기이해서 잘 뛰지도 못하는 아이들 사진을 백여 장이나 찍어댔다.


바깥엔 봄비가 주룩주룩인데 자전거와 킥보드 타고 싶다고 난리인 아이들은 뒷마당으로 통하는 포치 (Porch, 집 내부와 뒤뜰을 연결하는 지붕이 있는 공간)에서 2시간을 내내 놀았다. 마치 갈빗집에서 고기 먹고 나와 자판기 커피 마시며 수다 떠는 공간 같다고 말했던 이 신박한 공간은 때론 내 테라스 카페가 되고 초원뷰를 바라보며 요가하는 운동실이 되기도 하니 정말이지 다용도다.



이쯤 하면 다시 '벌레쯤은 감안하겠다'라고 끄덕거릴 만하다. 물론 여전히 '우리집에 쥐가 출현한다면?' 따위의 질문은 상상하기 싫은 물음표라는 건 변함없지만, 아파트와 달라서 불편한 부분들은 이젠 눈감아 줄 수 있겠다고 조용히 되뇐다.


다소 연식이 있는 주택이라 고치고 싶은 구조물도 있고, 신축아파트만큼 깨끗하지 못하다며 '아쉬움'에 입술 삐쭉 내밀어 보지만 남매가 자유로이 뛰노는 것만큼 웃음이 늘어나니 그 '까르르' 에너지로 불만을 살짝덮어둔다. 애들한테 냅다 잔소리 덜 하는 게 어디야! 신경다양성 아이가 늘상 자연을 마주하는 구조도 맘에 든다. 발달장애 가족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일부러 캠핑도 많이 가고 숲체험 빈도도 늘린다는데 자연을 품은 주택 공간은 그 자체만으로도 치료실 다니는 것보다 더 좋은 힐링이겠구나 생각한다. 불만투성이였던 애미는 이렇게 싱글하우스에 스며들고 있었다.


우리 오늘 돗자리 깔고 놀까?
아까 만든 샌드위치 싸가지고
잔디밭에서 먹을까?


5월 초엽까지도 때때로 추운 보스턴 근교, 유독 햇볕이 따사롭다 싶은 날엔 한국에서부터 이고지고 온 예쁘장한 피크닉 매트를 꼭 만지작거린다. "얘들아, 우리 오늘 앞마당 나가서 돗자리 깔고 놀까?" 돗자리든, 피크닉매트든 상관없다는 듯, 그저 '나간다'는 엄마의 말에 꽂혀서 싱글벙글 콩콩 뛰어대는 나의 두 아가들. 다른 사람들에게 '폐가 될까봐' 늘 눈치보며 엄격한 규칙을 내세워야만 했던 엄마의 일상에도 한숨내쉴 수 있는 여유가 드디어 생긴 듯해 반갑다.


햇살 예쁘면 문 열고 나가서 뛰놀면 되고, 비가 주룩주룩이라 해도 섭섭해말고 우리들만의 작은 지붕아래서 자전거타면 작은 원을 그릴 수 있는 일상. 그 소소한 재미를 그리느라 미국땅 자그마한 주택에 사는 맛도 나름 괜찮아지고 있다. 아이들과 함께라면 싱글하우스도 제법 맘에 든다.


신경다양성 아이도 맘껏 뛰놀 수 있는 야외 무대 덕분에 감사




* 브런치북 [아름답고 푸른 신경다양성 세계]는 1편과 2편, 총 33화로 구성돼 있습니다. 미국행 이전, 신경다양성 이야기의 시작이 궁금하시다면 1편으로 놀러와주세요. [아름답고 푸른 신경다양성 세계]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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