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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아이가 '흙'을 만진다면?

[6화] 디지털 OFF, 모두를 위한 자연 놀이 레시피

by 마이 엘리뷰

미국 동부에 머물 때 있었던 일이다. 남편의 직장이 미국이다 보니 미국집과 한국 친정을 자주 오가며 육아라이프를 이어가게 된 1인. 미국 보금자리가 위치한 우리 동네에는 유독 미취학 연령 아이를 둔 엄마 아빠들이 꽤 많이 거주했다. 덕분에 아이 둘을 대동해서 산책이라도 나갈 때면 한국 신축 아파트 단지를 거닐 때만큼이나 유아차나 아이 자전거를 끌고 나온 부모들을 제법 자주 마주쳤다. 신혼부부가 다수 분양받는 대형 아파트 단지도 아니고 싱글하우스가 뜨문뜨문 위치한 주택가에서 아이랑 산책하는 가족을 이렇게나 자주 마주치는 일은 흔치 않은 일이겠거니 생각했다.


한국 내신파로 영어공부를 해온 내게 이웃과 수더분하게 이어가는 스몰톡은 늘 어려운 과제였다. 미국에서 석사 유학을 했어도 공부 영어와 생활 영어는 영어를 '학습'해온 내게 너무 다른 영역이었으니까. 육아에 찌들어 살고, 높은 물가에 근심걱정이 하늘을 치솟아도 늘 적당히 '굿'을 외치며 쿨한 간격을 유지하는 사이였다. 이방인 이웃이 구구절절이 사연 길게 덧대어 수다떨려 노력한들 무엇하리오. 미국 이웃과의 대화에서 나는 늘 '괜찮고 좋은 날들을 살아내는 긍정의 K 한국인'이었다. 그러는 편이 대화하기 편했으니까 안 좋아도 '굿'을 외치는 게 일반적. 그런 가운데, 인상을 찌푸리면 '오... 아이 돈 라이킷 (Oh, I don't like it)을 외친 순간이 있었으니, 바로 이 질문을 받았을 때였다.


아이가
흙 만지는 거 어때?

아이가
흙 만질 때 넌 어떤 엄마야?


고백하건대, 나는 아이가 흙 만지는 거 싫어하는 엄마였다. 그냥 쫌 별로인 게 아니라, 고개 절레절레 내저으면서 “오늘은 안 돼” 힘주어 이야기하고 아이를 뒷걸음질 치게 만드는 엄마였다. 몇 주 전 새로 산 운동화를 물에 젖은 흙에 문댈까 봐 그게 싫었고, 실컷 손에 흙 묻히고 놀았다가 혹여 입에라도 불현듯 손을 넣을까 봐 위생 핑계로, 각종 질병 핑계로 '안 좋은 거'라고 싫어했다. 대단지 아파트에도 요즘 유행처럼 놀이터 한두 곳쯤은 모래놀이터를 만들어두곤 하는데 아이가 슬금슬금 다가서려 할 때면, 다급하게 외쳤다. "안돼 안돼, 집에 가자! 이제 그만! 집에 갈 시간!"


모래놀이터 앞에서 나는 어떤 표정, 어떤 몸짓을 하는 엄마일까


미국이라고 해서 내 취향이 달라질 리 없다. 주택가이다 보니 마을길 걷다 보면 정돈되지 않은 아스팔트 길 틈에 흙이 정돈되지 않은 채 흩어지고 또 쌓이곤 하는데 애들이 보자마자 흙놀이 하겠다고 판을 깔까 봐 멀리멀리 그 길을 피해 돌아가곤 했다. 손에 흙 닿는 틈을 안 주려고 애쓰고 또 애썼다. 그러던 와중에 이웃이 '흙' 질문을 해오니 당황스러울 수밖에.


'아이가 흙 만지면 어떻게 반응하냐'는 하나의 질문은 그 안에 너무 많은 물음표를 품고 있었다. 아이가 흥미를 보이는 부분을 최대한 존중해 주는 엄마인지, '육아 MBTI'를 질문하는 듯도 했고, 아이가 자연과 맞닿는 순간에 어디까지 허락할 수 있는 엄마인지, '자연 감수성' 레벨을 캐묻는 것도 같았다. 매 순간 속으로 '흙? 가까이 가지 마!'를 외치고 있었으니, 그에 기대어보자면 엄마로서의 자연 친화력은 감출 것도 없이 난 빵점인 셈이었다. 늘 '굿', '댓츠 오케이' 류의 긍정답변을 이어오던 내가 유일하게 부정적 답변을 외친 기록적인 날이었다. 너무 아닌 건 아닌 거라 좋은 척할 수 없었던 날.




모든 게 문제없는 듯 쿨한 답변만 이어오던 K 이웃, 유일하게 '싫다'고 소스라치는 모습에 미국 이웃도 적잖이 당황했을 거다. "아아, 너 진짜 싫구나. 뭐 그럴 수 있지." 이쯤 하면 그 사람의 답변도 궁금해진다. "아, 나는 그냥 내버려 둬. 어차피 집에 가서 손 씻기면 되잖아. 옷은 빨래 돌리면 되고." 반박의 여지가 없게 너무도 명쾌한 답변. 더러워진 손은 씻으면 되고 흙투성이 된 옷은 빨아버리면 되니, 이런 사고로 인생 살면 걱정할 거 하나 없겠네. '이야, 너 진짜 쿨해서 좋겠다'고 속으로 괜히 심통이 났다. 물론 K 학습 영어로 무장한 나는 그저 해죽해죽 웃을 뿐이었지만.


‘속 넓고 쿨하고 너그러운 이웃’은 이어 덧붙였다. 한 10분 정도 내버려 두면 자기 아이도 결국 스스로 일어난다고. 옳거니! 맞는 말이다. 아이들은 하나에 제대로 꽂혀도 그걸 연달아 서너 시간씩 하지는 않는다. 어느 정도 지루해지기도 하고, 딴 방향으로 관심이 쏠리기도 하니까. 흙 만지다가 문득 집에 가서 페파피그 영상을 보고 싶기도 할 거고, 한참 민들레 홀씨 불어대다가도 입 근육이 얼얼해져서 계속하겠다고 떼쓰지는 못한다. 처음엔 내키지 않는 흙놀이도 평생 할 거 아니니, 뭐 시켜도 나쁘지 않더라. 네 생각보다 지겹도록 오래 하진 않을 거다... 이런 류의 설득 아닌 설득이었다. 소스라치면서 '아이 돈 라이킷'을 외친 내가 안쓰러웠던 걸까. 나의 속 넓고 쿨하고 너그러운 이웃은 그날따라 흙놀이가 아이에게 미치는 긍정적인 효과와 그 나름대로의 팁, 예상되는 걱정은 섣부른 우려에 불과할 것임을 토플 리스닝을 방불케 할 만큼 장황하게 풀었다. 오 마이! 예압, 땡큐. 아이 갓 잇!


주택가에 살면 이웃 산책 풍경도 의도치 않게 공유하기 마련인데, 아무래도 깔끔 떨며 산책하던 내 모습을 그 언젠가 보기라도 했던 걸까. 혹은 동양인이라고 해서 모두가 같은 성향일 리도 없는데, 깔끔 떠는 결벽이 있을 거라고 내심 편견을 갖고 있기라도 했던 걸까. 이쪽이든, 저쪽이든, 그날따라 길어졌던 이웃의 '흙' 물음표 덕분에 나도 처음으로 마음을 가다듬고 생각해 봤다. 나는 아이가 흙을 만질 때 어떤 엄마일 수 있을까. 지금처럼 흙 묻을까 봐 경계하는 엄마로만 살아가는 게 맞는 걸까. 남매의 옷과 손과 얼굴에 잔뜩 흙이 묻었을 때, 어떻게 반응해야 좋은 걸까. 자연 앞에서 '옳고 그름'이라는 건 없겠지만 무조건 흙 묻히는 광경을 손 내저으며 싫다고 한 내 모습이 모범답안은 아니라는 사실만큼은 분명해 보였다.


흙투성이가 되어도
진짜 쿨한 엄마가 될 수 있을까
흙을 너무 문대서
그 옷 다시 못 입는데도
어디까지 너그러울 수 있을까


나의 ‘속 넓고 쿨하고 너그러운 이웃’이 나의 자연 감수성을 바꾸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는 아름다운 결론을 이야기하려는 건 아니다. 나는 여전히 흙놀이에 박한 엄마 쪽에 더 가깝다. 아직도 애들이 모래놀이터 가고 싶다고 하면 눈썹이 파르르 떨리면서 애들이 오늘 무슨 옷을 입고 나왔는지 (혹시, 며칠 전 새로 산 애정하는 브랜드 옷은 아닐지) 스캔하기 바쁜 엄마니까.


다만 조금씩 노력해 보기 시작했다. 차 트렁크에는 집안 구석에 '팽'시켜놨던 모래놀이 도구를 한 가득 실어두었고, 먼저 "모래놀이터 갈래?" 제안을 던지기도 했다. (아니요, 그냥 키즈카페 갈래요! 하면 좋겠는데 이상하게 이 제안하면 백 퍼센트 그러겠다고 하는 자연감수성 최고 아이들 같으니라고.)



모래놀이 도구를 주섬주섬 챙겨 걸으면서도 발걸음이 가볍지 않고 최대한 흙투성이 가능성을 줄이고자 물티슈와 손세정티슈를 넉넉히 챙겨 나와 짐 한 보따리인 '아이 돈 라이킷'의 엄마.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애들은 흙 만지러 가는 길이 너무 경쾌하고 발랄하다. 하아, 오늘은 얼마나 흙에서 구르고 놀려나! 나는 어디까지 허락할 수 있는 엄마인 걸까. 흙투성이가 되어도 진짜 쿨한 엄마가 될 수 있을까. 흙을 너무 문대서 그 옷 다시 못 입는데도 너그러울 수 있을까.


흙 앞에서 의심과 회의의 물음표가 교차하는 동안 아들은 어느새 두 뺨에 흙을 묻히고 딸은 원피스 끝단을 이미 빗물에 젖은 진득한 흙으로 물들이고 있다. 5분도 안 지났는데 이런 난리통이라니! 한숨에 후회가 켜켜이 묻어 나오는 걸 보니, 나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나는 나의 속 넓고 쿨하고 너그러운 이웃을 따라갈 재주가 없겠다고 체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 일단 나왔으니 놀자는 만큼 놀고 가야지' 결심해본다. (실은 결심해보려고 노력한다.) 원하는 대학교에 가겠다고, 방송국에 입사하겠다고 결심하는 것만큼이나 이토록 커다란 다짐이 필요한 일이다. 아이들에게 흙을 허락한다는 것은!



가끔씩은 내버려두곤 해
그때만큼은
애들이 자유롭더라고

유튜브본다고 조르는 것보다
흙투성이되는 게
훨씬 무해하더라고


30분 후 흙투성이가 된 아이들을 끌고 가는 내 발걸음은 무거울진대, 아이들은 그 어떤 경계도 없이 깔깔깔 호호호 모드. 이것도 하다보면 적응이 되고 익숙해지고 단련이 되겠지. "아이들이 흙 만질 때 너는 어떻게 해?" 질문이 다시금 나를 향한다면, 그땐 당황하지 말고 무조건 도리질만 하지 않고 이렇게 얘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가끔씩은 내버려두곤 해. 그때만큼은 애들이 자유롭더라고. 유튜브본다고 조르는 것보다 흙투성이가 되는 게 훨씬 무해하더라고." 여전히 자연 감수성 빵점 같다고 자평한 엄마, 그럼에도 이렇게 자연앞으로 한 발 나아가기.


완벽하게 쿨할 수 없지만 때때로 자연을 만지도록 먼저 제안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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