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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씨를 선물하는 남자

[7화] 디지털 OFF, 모두를 위한 자연 놀이 레시피

by 마이 엘리뷰

갑분 연애 이야기로 시작해 본다. 알고 지낸 세월이 남다른 초중 동창 남편과의 연애사를 짧고 굵게 훑어보자면, 꽃이 제 몫을 톡톡히 했었다. 연애 극 초기, 두 번째 데이트 때 꽃다발을 들고 성수동 어딘가에 서서 기다리던 남편의 멋쩍어하던 자태가 잊히질 않는다. 근데 실은 회사 사무실로 도착하는 '꽃 배달'이 열이면 아홉에 속했다. 당시 미국에서 박사 유학을 하던 구 남자 친구와는 장거리 연애, 일명 '롱디' 중이었다. 대면하지 않는 상태에서 마음을 돌려 표현하지 않는 선명한 방법 중 하나는 꽃이었다. 모호한 중의적 문자를 마음 재어가며 주고받는 건 황금 주말마다 비대면 연애를 이어가던 썸 당사자들에게 고구마 백 개 수준의 답답한 호흡이었다. 빨강 장미나 노랑 프리지어는 '나는 너한테 확실히 마음이 있다'는 류의 선명한 화법이랄까. 꽃은 트리플 T 남편이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쓰던, 심플하면서도 로맨틱한 무기였다.


사이가 소원해질 만하면 꽃바구니나 꽃다발 같은 게 도착했다. 생방송 하나를 마치고 오면 책상 위에 가지런히 꽃다발이 놓여있곤 했는데 남편이 직접 편지를 써서 전달할 수 없으니 꽃집 아저씨가 굵은 사인펜으로 궁서체의 메시지를 직접 적어 전달해 주곤 하셨다. 요즘 같아선 디자인 앱에 타이핑하고 출력해서 감성 일러스트 곁들여 꽂아주실 만도 한데, 나 어린 시절 학교 앞 문방구에서나 발견할 만한 반짝이 숑숑 박힌 카드에 꾹꾹 눌러쓴 아저씨 필체. 싹트던 썸이 오그라들어 자취를 감출 만도 하지 않나.


근데 뭐가 단단히 씌었지. 촌스러워도 나름 싫지 않은 사랑고백이었나 보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던데, 슬슬 멀어질 만하면 자꾸자꾸 꽃이 오니 그의 존재가 희미해질 만하면 방송국에 도착하던 꽃 색감이 알록달록하게 우리 관계를 깨우곤 했다. 청담동 고급 플라워 숍의 하이엔드 퀄리티 꽃다발이 아니라도 사랑에 빠지기는 충분했다.


세상은 슬프게도 동화 같지 않다. 그래서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했고, 꽃다발은 끊이질 않았... 다면 좋겠는데, 비대면 연애가 끝나자 꽃다발 떠 안기던 고백도 얼추 끝이 났다. 물론 신혼 시절까지야 결혼 후 처음 맞는 밸런타인데이나 결혼기념일 따위에 꽃다발을 용케 받아내곤 했다. "나 꽃다발 받고 싶다"고 몇 주전부터 수차례 얘기해야 했던 건 안 비밀.


하지만 미국 물가가 고공행진 하는 가운데 신혼 부부가 특별한 기념일이 아니고서 꽃을 주고받기란 쉬운 일이 아님을 안다. 인생은 인스타그램 피드 같지 않기에, 매번 사진 찍힐 만한 감동의 연출샷을 자아내기란 어렵다. 제법 그럴 듯한 꽃다발 저렴이 버전이 5만 원쯤 한다고 잡아도 스타벅스 커피 10잔이 계산되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아삭한 꿀 사과 한 박스 살 수 있겠다는 각이 나오는데 감히 꽃다발을 산다고? 마트에서 파는 10달러짜리 꽃다발도 살까 말까 망설이다가 내려놓게 되던 일상의 날들. 같은 가격이면 좋은 질의 계란 한 판이나 더 사는 게 낫겠다며 살아가는 마음이 되어버렸다. 이만하면 예쁜 거 좋아하는 나도 어쩔 수 없닌 살림꾼이 되어버렸나 싶다. 셀프 기특하다가도 약간은 씁쓸한 마음.




세상살이에는 변수가 많다지만 꽃을 대하는 남편의 몸짓 또한 참 변화 가득했다. 이렇게 꽃을 잊어가는 마음으로 남은 생을 살아겠구나, '결혼이란 이런 것'이라고 제법 일찍 결론 냈었는데 판이 바뀌는 데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꽃을 꽂을 정신이 어딨어! 전쟁 같은 육아만으로도 뇌구조 키워드가 가득 차서 일상을 꺼이꺼이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살아간다고 생각했던 날들 속에서 남편이 차차 꽃의 존재를 꺼내 올리기 시작한 순간이 있었다. 다름 아닌 아파트 형 거주지에서 '주택'으로 집을 옮긴 시절부터였다.


미국에서 칭하는 '싱글 하우스'는 쉽게 풀어 말하자면 마당이 있는 단독 주택이다. 그렇다고 엄청나게 큰 전원주택을 상상하시라는 건 아님 주의. 우리 집은 단출하고 소박한 평형의 2.5층인데 대신 앞마당 뒷마당만큼은 넉넉하게 펼쳐져있다. 남편도 나도 잠실 한가운데 같은 구축 아파트에서 자라난 자칭 '아파트 키즈'다. 둘다 처음이다 보니, 주택 살이를 눈앞에 두고 예측 불가능한 요소가 참 많았다. 사계절 옷매무새 달리하는 꽃과 나무가 그중 하나였다.


우리의 고생길 (정원가꾸기 초보의 막막함) 혹은 낭만길 (그럼에도 예쁜 꽃나무에 대한 반가움)을 열어주려고 한 하늘의 계시였을까. 우리가 몸담게 된 집은 곳곳에 전 주인의 꽃나무 애정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심지어 여름날 무궁화가 피는 집이었으니까. 집을 계약하던 6월에는 보지 못했던 꽃을 한여름에 마당 한가운데서 보기도 했다가, 꽃이 다 져버린 뒤 낙엽만 뒹구는 마당풍경이 너무 못나서 꽃나무에 잠시 속아 이 집을 계약했다며 분해하기도 했다. 씩씩 대며 겨울날을 나다가 봄에 처음 보는 꽃나무에 또 반하기도 했다. 마당풍경에 들뜨고 실망하고, 그런 날들이 돌고 돌았다.


뭐가 자꾸 없어졌다가도 다시 피어나는 통에, 아무리 자연에 무심한 사람이라 해도 꽃에 슬슬 관심이 생길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꽃 이름을 다 꿸 수는 없지만 딱히 노력하지 않아도 빗물 머금고 햇살 받으며 알아서 예쁜 자태를 드러내주는 아이들이 일단 신기했다.


돌이켜보건대 한국에서는 다발이나 바구니 선물을 받아야나 "꽃이 예쁘다"라고 들여다봤지, 걷다가 길에 핀 꽃을 들여다보고 멈춰 서고 또 감탄한 적은 별로 없던 것 같다. 풀 속에 기어코 고개를 내민 꽃들에 감탄하고 사진 찍는 내 몸짓은 어쩌면 인생 처음이 아니었을까. 남자친구가 선물한 꽃다발이 고급지고 예뻐서 반 자랑삼아 인증하려던 사진 촬영과 적잖이 결이 달랐다. "오오, 여기 꽃 피었어. 이것 좀 봐봐. 이거 진짜 예쁘다."


동양인 부부의 어색함을
풀어주고 싶으셨던 마음이었을까
여긴 꽃으로
마음을 여는 동네였다


꽃을 아는 이웃을 곁에 둔 다는 것도 처음 아는 기분이었다. 이사 3일 차쯤이었나. 동네 분위기를 관찰한답시고 이방인 특유의 경계 가득한 표정으로 사뿐사뿐 산책을 하는데 돌연 수국 한 아름을 선물 받았다. 남편이 새집에 대한 환영 선물로다가 플라워숍에 가서 꽃다발을 사 왔다는 진부한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수국 한 다발도 아니고 양손 가득 안아도 넘칠 만큼 선물한 주인공은 건너 건너 건너 사는 이웃 할머니였다. 어리바리 주춤주춤 산책하는 동양인 부부의 어색함을 풀어주고 싶으셨던 마음이었을까. 마당에서 수국을 키우는 할머니 집에서 이웃들에서 풍성하게 선물을 해도 좋을 만큼 엄청난 양의 수국 파티가 열린 날이었다. 키가 껑충 큰 남편이 수국을 안았는데 낑낑대는 모습에 아이랑 한참을 웃다가 우리 동네에 대한 긴장감도 덩달아 풀렸다. 여긴 꽃으로 마음을 여는 동네였다.

역시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옛 어른들 말씀 하나 틀린 게 없다. 맡게 된 보직도 사람의 성향과 스타일을 바꾸지만 매일을 살아가는 일상의 공간도 한 사람의 잊힌 로맨스를 꺼내올리는 파워가 있다. 이사 온 첫 주에 수국더미를 한가득 안았던 남편이 어느 날부터인가 종종 마트에서 앙증맞은 꽃씨 봉지를 사 오기 시작했다. 꽃이라는 주제는 같지만, 비대면 연애시절에나 마음을 열려고 보내오던 꽃다발의 그 남자와는 다른 맛이다. 누군가가 피워낸 꽃을 주문하려 핸드폰 검색창을 뒤지는 마음과 아직 아무것도 피워낸 적이 없는 손톱보다 작은 알갱이에 '예쁜 걸 피워낼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걸고 씨앗을 고르는 마음은 분명 다른 법이다.


가끔 인스타그램 피드를 들여다보다 보면 누군가의 남자 친구이나 남편이 유명 플라워숍에 주문해 둔 꽃다발을 똬악 안겨줬다는 감동을 구경할 때가 있다. 나 또한 부럽다. '와, 여기 진짜 고급지다. 화려하다. 역시 브랜드 이름값만큼 꽃이 괜찮네' 생각해두곤 한다. 하지만 나 역시 마당 있는 집 감성에 제법 길들여져서일지 예전만큼 저 꽃다발 예쁘다고 호들갑 떨지는 않는다. 물욕에 덤덤해지려고 노력한 것도 아니고 미적 취향이 몇 년 사이 확 바뀐 것도 아닌데 신기하기도 하지.


다만 마음 한 구석이 좀 달라졌다. 모바일로 10만 원 넘는 꽃다발을 주문하는 손짓보다 10달러만큼의 꽃씨를 여러 개 골라 고심한 흔적에 조금 더 마음이 기운다. 모바일 페이로 비싼 꽃값을 결제하고 그만큼이나 고급진 포장지를 칭칭 동여맨 꽃다발, 그걸 양손에 수줍게 받아든 그 누군가의 새하얀 손길은 왠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 같아서 뻔하고 재미가 없다.


마당 한쪽에서 꽃을 심을 장소를 고르고 그 자리에 꽃삽으로 흙을 휘적휘적 뒤엎을 줄 아는 투박하면서도 터프한 손길이 진심 쫌 더 매력적이지 않나. 본인도 딱히 해본 적이 없으면서 씨앗을 묻어두고 "저거 언제쯤 올라올까" 가끔씩 중얼거리는 기대섞인 말들이 피어날 꽃만큼이나 예쁘고 단정하다고 생각했다. 기다리는 마음을 같이 공유하고 싶어서 장보다가 굳이 씨앗을 만지작거리다 '툭'하고 담아 오는 마음이 기특한 건 이루 말할 것도 없고.


꽃다발은 예측가능하고
꽃씨는 변화무쌍해서
더 기대되는 마음

모바일 기기 화면을
스와이프 해서 찾아낸 게 아니라
왠지 더 무해할 것 같은 예쁨


호텔이나 백화점에 입점한 고급 꽃집에서 마주하는 꽃은 예측가능하다. 살구빛 작약과 연핑크의 라넌큘러스와 포인트 두기 딱 좋은 비비드 한 미니 로즈가 주문한 사람의 워딩 그대로 보기 좋게 자리 잡고 있을 테니까. 이름값만큼이나 예쁠 게 분명하고 누구한테 선물해도 단연 성공적일 거다. 소셜미디어에 찍어 올리면 조회수 팍팍 올리면서 "예쁘다. 좋겠다"는 리액션을 뽑아낼 거다.


반면, 꽃씨는 변화무쌍하다. 남편은 분명 봉지에 보이는 오렌지빛 사진을 보고 씨앗을 샀댔는데 정작 움트기 시작한 꽃봉오리에는 붉은빛이 하나 없던 적이 있었다. 아, 뭐라도 솟아나면 다행이지, 때론 "뭘 심기는 한 거야?" 싶게 몇 달이 지나도록 아무것도 올라오질 않아서 결국 "다람쥐가 파먹은 것 같다"고 퉁친 적도 있었다. 꽃씨에는 예측가능한 기쁨이 없다. 꽃을 기대하며 구매했는데 꽃을 보지 못한 적도 있고, 봤다 하더래도 시들시들 맥을 못 추는 자태만 보다가 체념한 적도 잦다. 확고한 해피엔딩이 없어서 회의 가득한 구매다. "아, 또 사 왔어. 저번에도 실패했잖아"

그럼에도 남편과 삶의 연차를 같이 쌓아갈수록 점점 꽃씨를 사는 마음에 더 끌린다. 모바일 기기 화면을 켜서 부지런히 스와이프 해가며 찾아낸 게 아니라 왠지 더 '무해'할 것 같은 예쁨이 있다. 미국 마트에서 두눈으로 찬찬히 살펴서 서너개의 봉지를 고심끝에 골라오는 아날로그 감성이 이렇게 매력적일 일인가. 꽃다발처럼 예측가능하지 않아서 실망스러울 것 같지만, 꽃씨는 변화무쌍한 ‘변수’를 기다려보는 맛이 있다. 작은 씨앗이 빚어낼 알 수 없는 '미'를 바라보면서 마치 "우리 인생이랑 다를 게 없다"고 분위기 잡고 말해보기도 하고.


마당에 핀 거 봤어?
그거 원래 있던 거 아냐?
아냐, 지난달에 내가 심은 거야
이따가 제대로 좀 잘 봐봐



새벽같이 출근한 남편이 아이들 일어날 무렵에 친 메시지. 키가 껑충하게 큰 남편이 허리를 굽히고 다리를 접어 앉아서 구태여 찍었을, 작은 꽃 사진도 함께 보내왔다. 남편도 꽃씨 구매력이 쌓여서인지, 이젠 뭔가 사 오면 아무것도 못 틔워내는 변수를 맞닥뜨리진 않는다. 또 꽃씨꾸러미 사 왔다고 잔소리 듣는 게 싫었는지 꽁기꽁기 잘도 쟁여놨다가 씨앗에 얼추 성과물이 보이면 그 어느 때보다 자랑스럽게 떵떵 '꽃 좀 보아라' 하고 큰소리치는 스킬도 생겼으니 말 다했지 뭐.


"아, 이제 쫌 그만 심으라"고 볼멘소리는 해대지만, 유명한 플라워숍을 검색해서 모바일 오더 넣는 몸짓보다는 건강한 몸짓이 좋았음을 힘주어 고백한다. '좋아요 100개'받을 만한 100달러짜리 꽃다발 자태보다 꽃을 피울 줄 아는, 기다릴 줄 아는, 꽃을 못 틔워도 그 변수를 받아들일 수 있는 그 마음의 남자가 점점 마음에 든다. "그 자리에 원래 있던 거 아니냐"며 그게 뭐 별거냐고 반응할수록 적잖이 억울해하는 마음이 귀여운 건 안 비밀로 하겠다.


꽃다발을 건네던 남자, 꽃씨를 심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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