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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디지털 OFF, 네이처 ON

[15화] 디지털 OFF, 모두를 위한 자연 놀이 레시피

by 마이 엘리뷰

아뿔싸. 어쩌다 보니 핸드폰을 두고 나왔다. 오늘 하루 디지털 기기 좀 내려두고 지내보겠다고 결심한 것도 아니었는데 아이 등원길에 어린이집 가방 챙기고, 모자 챙기고, 야무지게 커피 마실 텀블러까지 쥐고 부랴부랴 나오다 보니 결국 폰을 안 챙기고 나왔다. 배터리 한가득 불어넣고 나올 심산에 방안 구석에 충전기를 꽂아뒀는데 오늘 하루 얌전히 충전만 하고 있게 생겼군. 자꾸 똑똑 두드려서 화면을 깨워내는 주인이 없으니 핸드폰 너마저도 '찐' 힐링할 수 있어 좋겠다. 다시 집에 올라가서 가져올 시간은 없고, 선택의 여지없이 무폰 상태가 되었다. 아, 오늘 하루 괜찮겠나!


출발은 불안했는데 불편한 건 없었다. 다행히 지갑은 또 챙겨 나와서 한쪽 손에 굳이 챙겨 든 텀블러에 단골 카페의 커피를 채워 넣을 수 있었고, 급한 업무 알림은 랩탑 열어 챙기면 되니 '내 손 안의 핸드폰' 아니어도 해결 못할 일은 없었다. 어린이집 선생님이 보내는 알림장이야 이따 이른 저녁에 봐도 될 일이고, 아침마다 얌체 같이 뜨는 육아템 핫딜 알림은 못 받겠으나, 육아 소비를 줄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참에 무폰 상태가 차라리 반가웠다. 하루를 보내다가 무료해질 때쯤 습관적으로 열어 이런저런 숏폼 챙겨보던 핸드폰인데 그 뻔한 루틴을 오늘 하루 안 할 수 있으니 그 자체만으로도 '디톡스'였다.




'하루만 핸드폰을 두고 나가기로 했다'고 결심을 해야 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무수히 많은 순간에 방해받고 있음을 알면서도 쉽사리 떨쳐내지 못하는 날들. 이미 디지털 기기를 만지작 거리고 그 안의 콘텐츠에 나도 모르는 새 빠져드는 중독적인 순간들. 디지털이 당연한 세상임에도 자발적으로, 간헐적으로, 적극적으로 그 세상 밖에 나오는 의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디지털 OFF 한 자리에 채워 넣을 대체재는 결국 자연이 아닐까 꿈꿔보았고.


자연과 맞닿는 풍경, 그 공간에 다가서는 자유로운 몸짓은 아이들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고 믿는다. 이 글을 쓰면서 '자연 놀이'라는 말이 어린이만을 위한 것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기를 간절히 희망했다. 아날로그 세상에 태어나 디지털 기기의 진화를 차례차례 맛보는 길을 걸어온 80년대 밀레니얼 세대는 또다시 디지털 기기로 중무장하며 중년을 앞두고 있다. 디지털 기기에 너무나 익숙한 아이들을 보며 깜짝 놀라다가도 영화 제목처럼 '어쩔수가없다'고 고래를 절레절레 젓고 마는 그런 잔혹한 세상. 디지털 기기 없이는 이도저도 아무것도 안 될 것 같은 중독된 세상.


과하면 체한다. 의도적이었든, 실수였든, 간헐적으로나마 핸드폰을 두고 나온 날엔 잠깐의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나는 어쩌자고 그 작은 물건에 '훅' 빠져들어있는 걸까. 단단히 사로잡혀 있는 걸까. 핸드폰이 되었든, 랩탑이 되었든, 그 어떤 전자기기의 스크린에 지쳐버린 날엔 예외 없이 '꺼 버릴 수 있는' 카리스마가 절실하겠다고 느끼는 요즘이다. 꺼버리는 탓에 생겨버린 빈 공간을 '싱크홀'처럼 놔둘 게 아니라, 건강한 에너지로 채우고 싶다면 그게 바로 나무, 숲, 하늘, 구름, 풀잎 같은 것들 아니겠냐며 싱그럽게 웃고 싶다. 디지털 OFF, 네이처 ON. 도노 라이프 (DONO LIFE), 모두를 위한 자연 놀이를 꿈꾸며 살아가고 있다.


IMG_1958.jpeg 디지털 OFF, 네이처 ON. 모두를 위한 자연 놀이 레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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