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수현 Apr 15. 2019

'초록색 빨대'라는 덫

카페 덕후의 카페 사용 설명서

(* 이 글은 2019년 상반기 작성된 글로 코로나 시국 이후 각 카페의 일회용품 사용 정책이 다소 달라진 부분도 있음을 미리 밝혀둡니다.)


친해지고 싶지만 친해질 수 없었던 그 아이. 가끔 가까이하고 싶어서 집에 남아도는 옛 흔적들을 매만지려고 하다가도 왠지 주변의 시선들을 견디기 힘들어질 지도 모름 주의. 그래서 더 이상은 아무리 마음에 동해도 더 이상 너를 사랑해서는 안 되겠구나. 마음을 정리하게 만들뎌 그 녀석. 적어도 '한국'에서는 너란 존재, 그러했다. 찾으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간혹 때때로 몇 번은 그립고 보고 싶기도 했다. 보고 싶다는 내색조차 다소 조심스럽기는 했지만.


앗, 그런데 그랬던 네가 돌연 다시 찾아와서 내 곁에 바짝 다가왔다. 바로 미국 이곳에서. 2019년 3월, 보스턴에 도착해 지내기 시작한 뒤로부터 언제든지 어디에서나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그 아이의 흔적. 필요할 때면 속시원히 이름을 부를 수 있고, 네가 어디에 머무는지, 나와 얼마나 오랜 시간 자주 함께 해도 되는지, 진짜로 몇 번이라도 만나도 되는지, 확실하게 따져 물어도 눈치 보이 않는 상태를 만나고야 말았다. 바로 너란 녀석, 초록색 빨대.


초록색 빨대, 너무나 쉽게, 자연스럽게 만난 너희들


"어머, 나 이... 이거 막 써도 돼?"

때는 바야흐로 2019년 초, 초록색 빨대를 만나자마자 나도 모르게 남편에게 했던 말. 맘껏 쓰라고 진열대에 있는 것을 '써도 되냐'고 속삭이듯이 말하고 말다니. 그만큼, 한국에서는 '눈치를 보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초록색 빨대를 쓰고 싶다는 속마음을 들킬까봐. 처음 마주한 그 순간, 그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자체가 생경했으니까. 한국에서는 '플라스틱 빨대 있냐'고 묻기조차 민망해진 게 요즘 풍경 아니던가.


일부 프랜차이즈 커피 가맹점에서는 일회용 컵만 제재를 가할 뿐, 플라스틱 빨대 사용까지는 허락해주기도 하지만, 적어도 별다방에서는 아이스커피를 위한 종이 빨대만이 유일하게 사용 가능한 게 요즘 실정. 그 또한 무제한은 아니라서 커피를 만들고 있는 파트너에게 다시 한번 한껏 미안하다는 표정을 짓고서 "저 혹시 종이 빨대 하나 주실 수 있을까요?”라고 물은 뒤에야 희고 딱딱한, 비교적 환경친화적인 종이 빨대를 건네받곤 했다. 한국에서의 스타벅스 정책을 비판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 어쩜 여기 이들은 이토록 무덤덤할까. 초록색 빨대를 쓴다는 것에 대해서.


어렵지 않아서 화가 났고
어렵지 않기에 매일 걱정됐다


이쯤 하면 조금은 억울해진다. 한국에서 조금이나마 열심히 노력했던 모든 몸짓들은 티도 나지 않게 우유 거품 속에 침잠해가고 있는 건 아닐까. 한국에서 보았던, 함께 동참했던 예쁜 몸짓들이 1분 1초 쉼 없이 버려지는 이곳의 플라스틱 더미에 너무나 빠르게 묻혀가는 것만 같아서 마음이 쓰렸다. 나라마다 환경 문제에 대해 느끼는 체감온도야 당연히 다를 테지. 실천하고자 하는 방법이야 다양할 테니 굳이 '빨대' 사례 하나만 가지고 평가하려 드는 건 고작 한 달 남짓 살아본 이방인으로서 뭘 모르고 하는 소리일 수도 있. 겠. 으. 나. 예민함 가득 담긴 선입견이라고 넘겨짚기엔, 미국 이곳은 너무나 플라스틱 친화적인 세상.


언제 어디에서나 플라스틱이 너무 쉽다. 인간관계에서든, 시험문제에서든 '어려운' 것보다는 '쉬운' 편이 좀 더 낫다고 늘 생각했는데 이것만큼은 매우 다르다. 어렵지 않아서 화가 났고 어렵지 않기에 매일 걱정됐다. 전혀 어려움 없이 플라스틱과 쉽게 친해질 수 있는 세상, 너무 쉬워서 오히려 더 하루하루 거부감이 든다. 이렇게까지 플라스틱을 써도 진정 괜찮은 걸까. 진짜 이래도 될까.

여기 혹시 종이 빨대는 없나요. 플라스틱 빨대밖에 없다니요
여전히 조심스러운 일회용컵, 텀블러를 가지고 나오지 않은 걸 조용히 후회했던 하루. 한국에서는 그토록 예민하게 지켰는데 스스로가 미웠던 날


초록색이 미워지는 순간이
찾아오고야 말았다



너란 빨대, 조금 더 어려웠던 세상이 진심으로 그리워진다. 비록 나 역시 지극히 열렬한 환경운동가는 못되었음에도 한국에서는 나 포함, 많은 사람들이 무엇이 옳은 방향인지는 인지하고 있었으니까. 방향을 알고 있고 첫 단추를 꿰었다면 움직이는 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은 듯싶다. 꼭 300원 할인 때문만이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텀블러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플라스틱을 끊을 수는 없어도 줄일 수 있다고 믿고 작은 캠페인들에 기꺼이 동참하기 시작했으니까. (물론 코로나 시국 전 이야기다.)


 선한 방향으로 하루하루 발을 내딛던 시간들. 그래서 때때로 약간의 불편함 들은 오히려 반가웠다. 불편하지 않으면 내내 편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불편하지 않아서 하루하루  불편하다. 환경친화적인 색깔을 꼽으라면 많은 이들이 초록색, green 컬러를 먼저 떠올릴 텐데, 색이 담고 있는 이미지와 별개로 초록색이 너무 미워지는 순간이 찾아오고야 말았다. 적어도 미국판 별다방 안에 자리하고 있자면 말이다. 환경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초록색, 너란 존재 자체를 떠올리면    같았기에. 그런데 이곳은 아이러니하게도 초록색 천지. 머리로 믿고 조금씩 움직여왔는데 익힌 움직임을 다시 하나하나 지워가려니  또한 어색하다. 때때로 싫다.  속에 익숙해져 가는 나도, 더불어  속에서 아무렇지 않게 살아온 그들도 괜히 밉다.

언제그랬냐는 듯, 똑같이 무심해져가는 나도 때때로 너무 싫어서

나는 이렇게까지 노력하는데
왜 너는
아무것도 할 생각을 안 해


오랜 세월 친했던 친구와 수여 년 냉랭했던 시절이 있었다. 이런저런 에피소드와 서로의 변명들이 점철된 복잡하고도 조용한 싸움이었지만 한 마디로 압축해서 갈등의 알맹이는 이 지점. 친구 사이에서든 연인 사이에서든 종종 볼 수 있는 그림들. 나는 이만한 크기로 관계를 위해 노력했는데 왜 상대방, 당신은 이만한 크기로 노력하지 않느냐는 서운함과 약간의 억울함이 담긴 스토리.


한국과 닮았지만 또 많이 다른 여기


빨대를 바라보는 카페 공간 속, 한국과 미국 각각 다른 풍경을 쥐고 있는 것도 닮아있지 않을까. 한국 별다방과 커피 애호가들이 기울이는 노력이 소리 소문도 없이 단숨에 묻힐 것만 같아서 내내 속상한 기분. 쓴 커피가 유독 더 쓰고 독하게 느껴지는 날은 아마 이러한 기분까지도 샷 추가되듯 농도를 더해 휘휘 섞여버렸기 때문일 것 같다. 쓱 던져지는 플라스틱 컵이 너무 아깝고 널브러져 있는 빨대, 언제 어디서든 어렵지 않게 플라스틱을 향해 손을 뻗칠 수 있는 이곳의 흔한 풍경들이 때때로 무섭다는 감정까지 빚어낸다. "이러면 안 될 것 같은데"라고 혼잣말만 중얼거릴 뿐 그 어떤 행동을 적극적으로 하지 못하고 있는 나. 그저 조용히 그 공간에 녹아들고 있는 나 스스로에게도 종종 공포가 섞인다. 어떤 방법으로든 움직일 생각은 못하고 그저 이 풍경이 어색하고 불편하다고 '느낌표'만 찍고 있는 나도 실은 참 비겁한 건 마찬가지였다.


새로운 카페 프랜차이즈들이 한국 안에 들어서며 또 어떤 환경정책을 보여주고 있는가. 조금은 번거롭고 불편해도 옳은 방향을 향해 서기를


그래도 어쩐지 손을 대고 싶지 않아서 수북이 쌓여있는 빨대에 한숨만 던져둘 때가 많아졌다. 집어도 되는데 묘한 반감이 들어 주머니 속에서 손을 꺼내지 않고  안에 꾹꾹 눌러둔다. 플라스틱 컵이 아직은 너무도 당연한 미국 현지 이곳, 스타벅스에서 꿋꿋이 리유저블 컵을 들고 주문을 넣어보기도 하고 종이 빨대는 따로 있지는 않는지,  플라스틱 빨대만 있는지 심술을 눌러 담아  질문해보기도 한다. (, 물론 이곳도 텀블러를 사용할 경우 10센트를 할인해주는 정책은 있다. 그런데 대부분 개인컵에 먹는 경우가 적어서 고객이나 파트너나 어색하고 불편해하는  대다수인 . 심지어 정책을  몰라서 동료에게 묻고서야 답해주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파트너 개인역량의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하나 달라진다고 해서, 외로운 이방인  사람이 움직인다고 해서  넓은 미국 땅의 무수히 많은 원조 스타벅스의 판이 바뀔  없으나 그냥 이렇게라도 소심한 반항을 해봐야 지구 반대편 노력의 땀방울이 그나마 조금이라도 기억될  같아서. 소소하게 .


외로운 이방인 한 사람이
움직인다고 해서
판이 바뀔 리 없겠지만


이유 있고, 의미 있다고 믿는 행동들을 반복하는 가운데 늘 같은 풍경은 내 눈앞을 쉴 새 없이 스쳐가고 있다. 톨 사이즈를 주문하다가 그란데 사이즈를 먹으려고 주문을 바꿨더니, 너무나 인심 좋고 상냥한 파트너는 매직으로 주문을 적던 컵을 휙 던지고, 친절하게 새 컵에 주문을 적어준다. 주문을 바꾸지 말 걸 그랬나. 사용하지도 않은 새 컵에 살짝 매직이 닿았다는 이유로 곧바로 쓰레기통으로 향해야 했던 일회용 컵, 안 버리고 다음 손님을 위해 써도 되지 않나. 물기 하나 닿지 않은 깨끗한 컵이라 위생상의 문제도 없을 텐데. 3초도 안 되는 사이에 던져진 톨 사이즈 일회용 컵, 너의 덧없는 운명에 괜히 내가 너무 미안했던 순간. 말해 무엇하리. 너무 아깝다. 주문 사이즈를 바꾼 나를 도리어 탓하는 수밖에.


수업시간에 'Recycling'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누구나가 환경정책의 필요성에 대해 고민하고 플라스틱 과다사용을 비판하는데 결국 시선을 살짝 돌려보면 우리 모두의 책상 위엔 프랜차이즈 커피숍의 기다랗고 통통한, 가장 큰 사이즈의 커피 컵들이 나란히 놓여있다. 이거야말로 아이러니 중의 아이러니! 쉬는 시간 쓰레기통을 들여다보면 각종 일회용 쓰레기가 분리되지 않은 채 한 데 섞여 가득. 분리배출하지 않아도 되는 곳곳의 자유로운 몸짓들을 볼 때마다 내 안의 불편한 감정들은 도리어 엉키고 섞여서 어느 하나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은 채 폐처리장으로 향하는 느낌.

 

작은 불편함덕분에
너와 내가
 옳은 길을 향해 설 수 있다면


저희 매장에서는 머그컵으로 드셔야 해요
텀블러 사용을 권장하고요
빨대는 지난해 이후로 없어졌습니다


미국에서도 이런 풍경을 마주할 수 있는 날이 올까. 영어로 이 설명을 들을 수 있는 그날이 오기는 올까. 미국판 원조 스타벅스에서도 매장 파트너들에게 친절하게 이 정책에 대해 설명 듣는 그날이 찾아올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본다. 플라스틱 컵을 사용하지 못해서 종종 불편하고 번거롭다는 이야기를 친구와 남편에게 중얼거릴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한국이나 여기나 이제 똑같네." 좀 불편한 것 같다고 툴툴거리면서도 내심 기분 좋게 새 정책들을 마주할 순간이 찾아오기는 하겠지. 언젠가는.


언제 어디에서든지 플라스틱 빨대와 일회용 용기를 친절하게 건네주는 파트너가 아니어도 좋으니, 때로는 매정하리만큼 "우리 매장에서는 일회용 컵에 커피 못 마신다고, 빨대 따위는 없다"고 꽤나 엄격하게 제재를 해주는 파트너가 있다면 엄지척 해주고 싶을 것 같다.


일회용품 사용 규칙을 어기는 고객에게는 냉정하게도 커피 안 파는 풍경을 마주할 수 있다면, 잠깐은 서러워도 마음은 편한 길로 향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옳다고 믿는 방향에 선다면 그 길에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함께한다면 서서히 새 풍경에 마음 좋게 물들어 가겠지. 그래서 작은 불편함 덕분에 너와 내가 옳은 길로 향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드는 그런 날이 온다면 어제 오늘의 혼란스러움도 점차 잦아들어갈 수 있겠다. Plastic-friendly가 아닌 진짜 Eco-friendly의 공간에서 "한국이랑 여기랑 왜 이렇게 달라" 놀라움과 억울함이 섞인 비탄한 심정을 굳이 내보이지 않아도 된다면 좋겠다. 혹시 몇 년 뒤엔 이런 말, 가능할까. 그럴 수 있어야 할 텐데. 마땅히 그러해야 할 텐데.


한국이나 여기나 똑같아.
요즘 누가 초록색 빨대를 찾아쓰니?


플라스틱 프랜들리, 그 반대지점을 향해 가는 날이 다가오기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