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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BA하는 아나운서 Mar 29. 2019

우리에게 '카페놀이'가 필요한 이유

카페 덕후의 카페 사용 설명서

왠지 모르게 허전한 느낌부터 번지는 아침. 햇살은 반짝거리는데  눈부심을 반갑다고 느끼기도 전에 거실에서 뚝딱거리는 소리에 돌연 귓가 근육이 먼저 움직였다. , 그렇지 오늘 남편이 출장 가는 . 남편은 콘퍼런스 때문에 뉴올리언스 지역으로 나흘간 떠나 있어야 했다. 평소 같았으면 개구진 표정으로 나와서 "뭐해 뭐해"하고 우스꽝스러운 몸짓을 하며 장난부터 걸었겠지만, 왠지 모르게 오늘은 눈을   한참이 지나도 맘처럼 침대를 벗어나 장난 걸기가 조심스러웠다. 롱디 연애만 자그마치 3년이라서 며칠 떨어져 있는 상황이 대수롭지도 않은데, 왜지. 캐리어에 차곡차곡 옷을 개어 넣고 욕실용품을 또박또박 정리하고, 중요한 자료들을 만지작 거리는 손놀림이 사뭇 무겁게 느껴져 오늘만큼은 나도 모르게 덩달아 조용한 몸짓을 이어갔다.


깨어난  한참을 그렇게 멍하니 엎드려 30. 짐을  챙기고  남편은 내가 좋아하는 먹거리를 냉장고에 가득 쟁여놓았음을 다시 한번 인지시키고 먹을거리가 풍족해있음에 방긋 웃음 짓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다음 스텝으로 넘어갔다. 마지막 단계는 '고양이를 챙기는 집사의 자세' 대한 친절한 설명. (남편에게는 가장 중요한 미션  하나이므로 이해와 공감 완료) 이상, 남편이 출장 가는 날의 아침 풍경.


 남편 보고 싶을 거야.
 다녀와.


공항에서 보안검색대를 통과하는 남편의 뒷모습이 점이 되어 총총히 사라질 때까지 격렬히 손을 흔들었다. 진짜로 남편이 떠났다. 3  이곳에 도착해 '보스턴 새댁' 첫발을 디뎌냈던 그날, 3 초엽의 보스턴 로건 공항을 머릿속으로 자꾸만 떠올리며 마음속에서 아까부터 자꾸만 튀어올랐던  말을 입으로 살짝 중얼거려보았다. " 오늘부터 자유부인이다" 보스턴에서 혼자 보내는 첫날!


남편의 뒷모습이
 점이 되어 총총 사라질 때까지
격렬히 손을 흔들었다


나 오늘부터 자유부인이다!!!


남편을 배웅한 뒤, 따뜻한 라테 한 잔이 간절했던 순간. Boston Newbury St. 에 있는 Thinking Cup. 규모는 자그마하지만, 붐빌 땐 확실히 붐비는 여기.


오늘 하루  홀로 '카페놀이' 하기로 작정했다. 한국에서도 워낙에 카페에서 시간 보내는  좋아하는 .  세계 어느 곳에 떨어져도 사는  근처에 카페만 있다면 살아가는  전혀 문제없다고  말해왔던 . 핸드폰이나 태블릿, 쌀밥이나 라면은 없어도 뭐 살 수 있다. 커피  잔에 간단한 군것질거리 하나면 하루의 육체적 허기와 정신적 빈틈은 완벽하게 메워지는 듯했으니까. 간혹 이런 질문을 들으면 민망해질 정도였. "아나운서들은 커피   마시지?" 방송 진행을 위한 철저한 목소리 관리를 위해서라면 카페인은 진작에 줄였어야 바람직했을까. 고백하자면  면에서  프로페셔널하지 못했다. 아나운서로서의 사명감보다는 '개인'에게 주어진 잠깐의 커피타임을 고수하는   초고도 집중력을 발휘했으므로.


출근길  , 퇴근길  .  근처 별다방에 들러 드라이브 스루, 방송 하나 마치고 회사 카페에 들러 직원 반값 할인 커피를 사들고 사무실로 총총총. 지켜보는 눈이 적다면 잠깐 앉아서 회사  풍경을 내다보며 작은 한숨을 내뱉는 타이밍. 커피  잔에 함께 놓인 여유가 좋고  공간에 놓여 생각에 생각을 이어가는  모습에 비로소 숨통이 트이는 거니까. 이쯤 하면 카페는 대단한 치유의 공간임에 틀림없다. 한국에서 그런 마법이 통했다면, 이곳에서도 적절히 통용되는 마법이기를!


오늘 하루 나 홀로
카페놀이를 하기로 작정했다

폭신한 거품, 정성 들인 하트 문양에 그간의 허기짐도 쓸데없는 걱정거리들도 잠시 동안은 '안녕'. 오물거리기 좋은 '예뻐서 어떻게 먹어'류의 디저트도 때론 필수템.


포근한 거품이 얹힌 카푸치노에 마음이 금세 따뜻해졌다. 봄을 연상케 하는 따사로운 햇살에 종종 '봄인가' 착각이 들어도 보스턴 공기는 아직 싸늘해서 어깨가 잔뜩 움츠리고 있던 차였다. 잠깐 방심했다가는 몸도 마음도 감기 앓이를 시작할 것 같은 이방인의 정서 안에 서서히 온기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행복해지는 일은 이리도 단순한 법이다. 특히 낯선 지역에서 익숙하지 않은 일상을 천천히 살아내고 있는 자에게, 대단히 익숙했던 일을 복기하는 작업은 그야말로 위안이 된다.


카페에서의 소소한 몸짓들은 그래서 중요하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때론 오늘 하루 전체의 분초에 발랄한 활기를 보태는 거니까. 올망졸망 과일들을 한껏 담아낸 귀여운 자태의 타르트에 "예뻐서 어떻게 먹어" 감탄사를 연발하는 일, 라테아트가 혹여라도 흐트러질까 봐 조심조심 커피잔을 들고 아슬아슬 걸어오는 일, 우유 거품을 조심스레 머금고 살포시 입을 댄 채 최대한 얌전히 흡입해내는 일. 한국에서든, 이곳에서든 내 안에서 닮은 동작이 뿜어져 나오는 순간순간이 반갑고 정겹다.


이방인의 정서 안에
서서히
온기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카페 가는 길, 잠깐 올려다 본 하늘에 취하고, 그 취함에 발걸음 주춤대며 하늘빛을 머금는 입맛도 좋아서.


'나만의 커피타임'. 아나운서로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많은 청취자가 늘 마음 다해 원했던 네 글자는 커. 피. 타. 임. 이 아니었을까. "남편 출근시키고 커피 마시며 라디오 들어요.",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서 라테 한잔. 행복합니다." 하루에도 닮은꼴 사연을 무수히 접하면서 나 역시 적잖이 고개를 끄덕였던 순간들이 있었다. 마음이 상할 땐, 익숙한 나의 영역, 나만 알고 있는 아지트 같은 카페를 찾아 마음에 묵혀둔 이야기를 와르르 토해내듯 일기를 적었고 누군가와 속 깊이 친해지고 싶은 순간이 찾아오면 함께 공유하고 싶은 공간을 찾아 카페 수다를 공유했다. 혼자일 땐 혼자인 그대로, 지독히도 내향적인 내 성향이 지루해질 때쯤엔 취향을 공유하고 싶은 그 누군가와 함께, 이럴 때나 저럴 때나 따로 또 같이, 서서히 함께 물들어갈 수 있는 공간.


'취향'이라는 것은 쉽게 비껴가지 않는 법. 내가 좋아하는 소이 밀크로 우유의 질감을 달리하고 바닐라 시럽 한 펌프만 더해주면 금세 뒤틀린 틈새를 완벽하게 회복할 줄 아는 능력치를 지니고 있다. 덕분에 허전할 수 있는 오늘은 '비어있지' 않게 되었다. 잘된 일이다. 낯선 공간에서도 좋아하는 공간, 즐겨하던 놀이에 푹 젖어있을 수 있어서. 이쯤 하면 '카페'에서의 '카페놀이'는 어색함과 새로움을 아무렇지 않은 척 마주해야 하는 이방인에게는 더없이 특효약인 셈.


이럴 때나 저럴 때나
따로 또 같이
서서히 함께 물들 수 있는 공간


캠브리지 하버드 근처의 Blue bottle.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파랑파랑 한 카페놀이를 사랑하는 사람들



그렇게
우리 모두는
카페놀이를 사랑하고 있다


한참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던 남편이 보면 서운하려나. 그대의 존재가 부재함을 '카페놀이' 거뜬히 극복해내며 즐거이 글을 쓰고 있다는 것에. 아니다. 미안해하지 않아도 될지 모르겠다. 남편 역시 비행기 타기 전에 글로벌 커피 브랜드 스타벅스에서 소이라테  잔으로 마음을 힐링했을 게 분명하다.(지켜보고 있다) 함께 공유하는 카페의 영역에 자주 달콤했으나 따로 각자의 영역에 흩어져 마음을 다해 즐기는 카페놀이 역시  다른 고소함을 선물하리니.


그렇게 우리 모두는 '카페놀이' 사랑하고 있다. 오늘도 그래서  , 달콤하고 바삭한 디저트 너희들까지 새초롬히  . 나의, 남편의, 그리고 당신의  모든 카페놀이를 적극적으로 응원한다.


보스턴에서 인기 절정 Tatte. 많은 관광객들이 순례하듯 방문하는 여기. 특히 내 또래 여자들 취향저격 100%. 이 글을 모두 마치면 예쁜 디저트를 사러 들를 예정. 소확행!
자주 들르는 동네 카페 'Caffe Nero'.  아메리카노 한 잔에 달콤이 한 조각 냠냠거리기. 이 정도 아침식사면 그날 하루 절반은 성공한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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