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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주 Oct 14. 2020

단편소설  : 만족하는 삶 (3)

잃어버린 꿈에 대하여

 개찰구에 카드를 찍고 나오자마자 전시된 그림을 찾으려 서둘러 고개를 들었다. 지하철을 타고 오는 동안 내심 전시가 끝났으면 어떡하나 라는 걱정을 했던 터라 내 시선은 아침에 보았던 낯선 존재를 찾기에 급했다. 다행히 시선을 여러 번 둘러볼 필요는 없었다. 전시는 마치 이제껏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 마냥 아침과 다를 바 없이 그 자리에서 계속 진행되고 있었다. 개찰구에서 나오기 전까지 걱정과 조바심을 내고 있었던 마음에 비로소 안도감이 찾아왔다. 혹시나 퇴근 시간으로 인해 사람들이 많아져서 전시를 제대로 보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했지만 번화가에서 꽤 떨어져 있는 역이라 그런지 러시아워에도 사람들이 그리 붐비고 있지 않았다. 지하철에 있는 사람의 수라고 해 보았자 고작 7명 남짓했다. 그나마 있는 사람들마저도 얼른 역에서 빠져나갈 생각만이 가득한지 한 걸음도 지체하지 않고 판넬의 행렬을 지나쳐 곧장 계단으로 올라가기에 바빴다. 그런 상황에서 내게 전시 구경에 걸림돌이 될 만한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 이젠 아무런 걱정 없이 온종일 내 머리 속에 호기심을 자아냈던 그림 속의 정체를 알아낼 일만 남은 것이다. 나는 판넬 쪽으로 몇 발자국 걸음을 옮긴 후 내 발치에서 가장 가까이에 있는 그림부터 하나씩 둘러보기 시작했다. 


 삭막한 잿빛만이 가득한 지하철 벽면 앞에 세워져 있는 판넬 속 그림의 배경은 솜털 보송보송한 병아리 마냥 연한 노랑 빛의 파스텔로 부드럽게 채워져 있었다. 그 배경 속에는 한  어린 소년이 있었다. 소년은 가만히 쪼그리고 앉아 자신의 발 아래로 줄지어 지나가는 조그마한 개미들의 행렬을 마치 태어나서 처음 보았다는 듯이 호기심에 가득 찬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은 아이들이 읽는 동화 속에 나오는 그림처럼 아기자기하고 단순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소박한 묘사 덕분인지 소년이 더욱 천진난만하게 느껴졌다. 귀여운 소년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아. 그제 서야 나는 이 전시전이 동화 그림 전시 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동화 그림이라. 오랜만에 보는 것 같다. 언제부터 이런 그림을 안 보게 되었더라. 동화 볼 나이가 지나서도 동화 그림에 대해 관심을 가지곤 했었는데. 그러고 보니 고등학교 시절에만 해도 동화 일러스트레이터가 되는 것이 꿈이었었다. 그림 그리는 것을 원래 좋아하긴 했었지만 어릴 때부터 동화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고 싶어 했던 것은 아니었는데. 언제부터였지. 중학교 2학년 때였나. 우연히 인터넷을 하다 블로그에 올려져 있는 외국 동화 그림들을 보고 나도 이런 따뜻한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그 이후로 계속 동화 그림들을 검색해서 모으다가 자연스럽게 동화 일러스트레이터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어른이 되어서 이런 직업을 가진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지. 한동안 잊고 있었다. 왠지 오랜만에 길에서 우연히 친한 친구를 마주친 것 같은 기분에 반가운 느낌이 들었다. 옛 추억을 간직한 친구를 만나 그동안 잊고 있었던 과거를 회상하듯 판넬 위에 걸린 그림을 보며 그동안 잊고 지내왔던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받은 상은 초등학교 시절 그림을 그려서 받은 상이었다. 그 때 부모님은 진심으로 축하해주시며 내 머리를 쓰담아 주셨다. 부모님의 칭찬은 마치 나의 그림에 대한 재능을 인정해 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때문인지 처음 그림을 그려 상을 받은 이후에는 그림을 그리는 자세가 좀 더 진지해졌던 것 같다. 상에 대한 욕심도 생겼고 그림을 더 잘 그리고 싶다는 욕심도 생겨났다. 처음 상을 받은 이후 교내에서 그림 대회로 받아 온 상은 전부 금상이었다. 중학교에 진학해서는 초등학교 때처럼 매번 금상을 타지는 못했지만 그림 대회가 열릴 때마다 무슨 상이든 받아오곤 했었다.     


 그러고 보니 그 때의 나는 어린 나이에 비해 그림을 그리는 것만큼은 굉장히 열정적이었던 것 같다. 내 인생에서 그만큼 무언가에 빠져 열정적이었던 적이 있었던가? 가장 최근의 기억을 떠올려 봐도 없는 것 같다. 무언가에 한창 몰두 했던 어린 시절이 무색하게도 지금의 나는 어느새 그 어느 것에도 무관심한 사람이 되어 버린 듯했다. 나이를 먹은 만큼 과거의 나와 거리가 멀어지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새삼스럽게도 지금의 나와 어린 시절의 나와의 거리가 너무나도 멀어졌음이 느껴졌다. 아니, 단순히 거리가 멀어 졌다기보다는 지금의 나는 어렸을 때 내가 바라보았던 방향과는 너무나도 다른 쪽에 서 있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무엇 때문에 내 삶의 방향은 틀어져 버린 걸까? 사실 모르는 것은 아니다. 나의 꿈을 바꾸게 된 계기는 그저 내 마음 속 저 아래에 묻어두고 있는 것뿐이었다. 이젠 무뎌질 법도 하건만 어째서인지 그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더욱 선명해지고 그럴수록 나는 견딜 수 없이 울적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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