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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주 Oct 15. 2020

단편소설  : 만족하는 삶 (4)

잃어버린 꿈에 대하여

“수정아. 선생님이 오늘 아침에 우리 반 애들이 낸 장래 희망 서를 봤는데 너는 그 동화  일러스트……. 뭐였더라. 아무튼 그게 되고 싶다고 썼던데 확실하니?”     

“네. 동화 일러스트레이터요. 동화 내용에 맞게 그림 그리는.”     

“아, 그래그래. 동화 일러스트레이터. 그림 그리는 직업인 것 같더라. 아무튼 다른 아이도 아니고 네가 그런 직업을 써냈다는 게 의외라서 말이야. 조금 걱정도 돼서 불러 봤다. 고2면 그렇게 어린 나이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어느 정도 현실적인 것들도 생각할 수 있는 나이라고 생각하거든 선생님은. 더군다나 넌 성적도 좋은 편이라 다른 애들보다 더 잘 생각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고. 선생님은 또 네가 잘못 써낸 줄 알았지.”     

“잘못 쓴 건 아니에요.”     

 “음. 그래 뭐. 아무튼 동화 그림 작가는 좀 현실적이지 못한 감이 있어서 말이야. 세상은 만만치가 않아. 네가 아직 학생이라서 사회가 어떤 곳인지 잘 모르니까 그럴 수도 있을 것 같긴 한데…….  뭐 물론 그것도 나쁘진 않겠지. 하지만 네 성적이면 좀 아깝지 않니? 지금 성적만 잘 유지하면 A대학에 국제통상학과나 경영학과 정도는 노릴 수도 있는데. 고내에서 그림 그려서 받은 상 하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렇게 많이 받은 것도 아니고 또 네가 교외에서 그림 그려서 받은 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안 그래?”     

“……. 네.”     

 “너 이 녀석. 공부도 꽤 잘하는 녀석이 말이야. 성적 나쁜 애들처럼 수능치고 나서 헐레벌떡 아무 대학에 아무 과나 정할래? 미리 정해야 네가 이제껏 공부한 게 아깝지가 않지. 그리고 부모님이랑 상의는 해봤어? 부모님이 쓴 희망 직업란에는 공무원이라고 써있는 걸로 보아하니 제대로 상의 해 본 것 같지는 않은데. 나중에 수능 성적 잘 받아 놓고도 부모님이랑 얘기 안 맞아서 대학원서 쓰는데 쓸데없이 애먹지 말고 지금이라도 부모님이랑 잘 의논해 봐.”     


 고등학교 2학년 때.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어른에게 나의 꿈을 밝히게 되었다. 그 당시 내게 있어 어른이란 함부로 꿈에 대해서 말을 하지 않아야 할 대상 제 1호나 다름없었다. 그들은 무조건 적으로 사회적 잣대를 들이대며 나의 꿈을 깎아 내리러 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 당시의 나는 오랫동안 외롭게 꿈을 품어온 탓인지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사회적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 한 번쯤은 털어내 보고 싶었고 조금은 기대어 보고도 싶었다. 약간의 무시는 당연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무시를 조금만 견디어내면 어른으로서 삶의 연륜이 묻어난 피드백을 내게 해주지는 않을까 라는 기대가 있었기에 그 정도는 각오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 내게는 그 기회가 장래희망서 란에 꿈을 적어 제출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받은 성적과 부모님의 의견을 반영해서 직업을 적었던 전과는 달리 그때만큼은 나의 꿈을 솔직하게 써서 제출했다. 하지만 내가 기대했던 피드백은 전혀 돌아오지 않았다. 예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되지 않기만을 바라고 또 바랐던 터였다. 부모님과 잘 의논해 보라는 말에 아무런 대답 없이 가만히 앉아 있는 나에게 담임선생님은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했다.     


 “이렇게 잔소리 마냥 주절주절 늘어놓는 것도 담임선생님으로서 네가 좀 더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걱정이 돼서 그러는 거야. 성적도 괜찮고 네가 다른 애들보다 더 좋은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가능성도 있으니까 이런 얘기도 하는 거지. 너도 네 인생이 잘 되기를 바라지 않니? 선생님이라고 다를까. 학생 잘 되기를 바라는 게 선생님 마음이고 학생 잘되는 게 선생님 보람이야 이 녀석아.”     


 상담이 끝난 후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야자를 하고 야자가 마치자마자 곧장 집으로 향했다. 그날따라 머리가 무거웠고 마음도 무거웠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바로 침대 위에 곧장 누워 쉬고 싶었다. 하지만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걱정 어린 표정을 지은 어머니가 내 앞에 서 계셨다. 그리고는 잠깐만 얘기 좀 하자며 내 손목을 잡아 이끄셨다.     


"네 담임선생님께서 오늘 저녁에 집으로 전화를 하셨어. 네 진로 문제 때문에 말이야. 이상한 걸 써서 냈다는데 그게 무슨 말이니? 작년까지만 해도 공무원이라고 했잖아. 아빠와 엄마랑 상의 한 번 안하고 써내다니. 담임선생님이 걱정하시더라."     

"이상한 거 아니야. 엄마. 엄마도 알잖아. 나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고 싶어한 거."     

“아니, 얘가. 너 아직도 그러고 있니? 네가 초등학생이야? 너 내년이면 고3이고 곧 수능봐서 대학갈 나이야. 현실을 생각할 줄 알아야지.”     

“알아. 알아서 중학교 때 예고 가고 싶어도 엄마 아빠한테 학비 부담될까 봐 말 한 마디 안 꺼냈어. 그래서 엄마 아빠말대로 인문계로 갔잖아. 고등학교 가서 좋은 대학 가는 게 제일 중요하다는 거 너무 잘 알아서 공부도 열심히 했어. 그리고 지금 내 성적에 어느 대학 지망해도 괜찮은지 어떤 직업이 어울릴 지는 나도 알아, 안다구!”     

“그럼 왜 그래. 쓸데없는 걸로 엄마 속 썩일래? 그림 그리는 건 어릴 때 취미 삼아서나 하는 거야. 여자애라면 어릴 때 그림 그려서 상 하나 정도는 다 받아. 그리고 너. 그런 직업 가지고 돈이나 제대로 벌 수 있을 것 같아?”     

“하면 되지 못할 게 뭐 있어.”     

“아니, 얘가? 네가 세상 물정이 어떤지 제대로 알기는 해? 너 공부한 건 아깝지도 않니? 어휴……. 고등학교 와서는 완전히 그림에 관심 없는 줄 알았더니…….”     

“없어진 게 아니라 없었던 척 했던 것뿐이야. 다 눈치 채고 있었어. 초등학교 때 까지만 해도 그림 그려서 상 받아오면 칭찬해주던 엄마가 중학교 때 이후로는 거들떠도 안 보던 거. 계속해서 그런 상 받으면 내가 나중에 그림 그리면서 살 꺼라고 말할까 봐 그게 두려워서 그랬던 거 아냐. 내 말이 틀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엄마는 내 뺨을 때리셨다. 그리고 한참을 가만히 서 계셨다.    

 

“밤중에 시끄럽게 무슨 짓이야. 허튼 소리 하지 말고 방에나 들어 가. 앞으로 또 이렇게 쓸데없는 일로 언성 높이게 하지 마. 너 분명히 1학년 때 약속했어. 공무원 되겠다고.”     


 나는 엄마의 말이 끝나자마자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 침대 위로 털썩 누웠다. 그리고 두꺼운 이불을 당겨 머리맡까지 올려다 덮었다.

 그날 밤, 나는 어두운 이불 속에서 한참을 서럽게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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