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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주 Oct 15. 2020

단편소설  : 만족하는 삶 (5)

잃어버린 꿈에 대하여

 그 일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20대가 되면 동화 일러스트 작가가 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내가 그린 그림이 삽화로 실린 첫 동화책은 나의 미래에 자식들에게 집안의 가보로 물려줄 생각까지 했을 정도로 나는 동화 일러스트레이터에 대한 꿈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26살의 나는 보건소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고 미래의 나의 아이에게 물려주려고 했던 동화책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지금의 나의 직업에 만족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극심한 취업난에 자살마저 흉흉하게 일어나는 이 시대에 직업을 갖고 있다는 것 자체가 만족할 만했고 무엇보다도 일찍 퇴근하고 주 5일 근무에 고정적인 수입, 그리고 정년퇴임 전까지는 해고될 위험도 없는 공무원이란 직업을 갖고 있다는 다는 것 또한 만족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행정학과 까지 진학해서 열심히 준비한 후에 합격한 탓에 안정성이 보장된 이 직업이 그저 만만하게만 보이지도 않았다. 고로 나는 나의 직업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고 만족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 그림을 그린 화가가 묘하게 부러워지는 것은 왜일까. 누군지는 알 수 없지만 화가라고 불릴 수 있다는 것이 부러웠고 이렇게 따뜻한 그림을 그려낼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부러웠다. 제대로 그림을 그려본 적이 언제였는지 이젠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줄지어 이어진 개미들의 행렬을 지켜보는 소년의 그림을 지나 다른 그림들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할머니가 쪄주신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구마를 먹다 혀를 데였는지 한쪽 눈을 찡긋한 사내아이, 오빠가 사탕을 뺏어먹자 서러움에 눈물을 펑펑 쏟아내는 어린 여동생, 그리고 한 눈에 봐도 알법한 콩쥐팥쥐나 백설 공주와 같은 유명한 동화의 한 장면을 그린 그림도 있었다. 커다란 괘종시계를 들고는 놀란 눈을 하며 허겁지겁 뛰어가는 하얀 토끼가 그려져 있는 그림은 왠지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의 한 장면인 듯했다. 토끼는 새하얗고 동그란 테의 안경을 쓰고 있었으며 살집 있는 몸에 양복을 입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노라니 왠지 아침에 어깨를 부딪쳤던 중년의 남자가 떠올라 나도 모르게 쿡하고 웃음이 나왔다. 아기자기하고 소소한 그림 속의 장면들은 왠지 익숙하게만 느껴졌다. 그 익숙함 때문인지 그림에 친밀감을 느끼기까지 했다. 이런 게 바로 동화 그림의 매력이 아닐까? 어린 시절 동화 그림에 매력을 느꼈던 것은 단순히 그 그림이 자아내는 따스한 분위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전시되어 있는 그림 모두가 밝은 분위기는 아니었다. 전시된 그림들 중 절로 거부감이 느껴질 정도로 어두운 분위기가 느껴지는 그림이 하나 있었다.


 나는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속 토끼가 그려진 그림을 지나 다음 그림이 걸려있는 판넬 쪽으로 한 걸음 옮겼다. 그 그림에는 어떤 한 여자의 모습을 제외하고는 아무 것도 그려져 있지 않았다. 바탕은 오로지 먹색으로만 채워져 있었는데 전시된 그림 뒤편의 칙칙한 잿빛의 지하철 벽면보다도 더욱 어두운 색이었다. 환하고 알록달록한 파스텔로 칠해진 다른 그림들과는 이질적인 분위기였다. 


 어두운 먹색을 배경으로는 어떤 한 여자가 서 있었다. 너무나도 무난한 색의 너무나도 평범한 옷을 입은 여자는 바닥에 서 있는 것인지 아니면 공중에 매달려 약간 떠있는 것인지 제대로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서 있는 포즈가 어색했다. 포즈에서는 어째 불안함 마저 느껴지기도 했다. 


 자세히 보니 여자의 팔과 다리 그리고 몸통은 얇은 검은색 실에 묶여져 있었다. 어두운 바탕색에 가리어 이제껏 눈에 띄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무 것도 그려져 있지 않다고 생각했던 배경에는 여자를 묶고 있는 실만큼이나 얇은 선으로 무언가가 그려져 있었다. 그것은 책상과 의자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학교 교실 같기도 했고 회사 사무실 같기도 했다. 어떤 특정 공간이라고 딱 집어 말할 특색이 없을 정도로 일상적인 공간인 듯했다. 


 그 배경을 뒤로 하여 여자를 묶은 실은 여자의 몸 밖으로 길게 이어져 위로 향해져 있었다. 실은 맨 위에서 나뭇가지로 보이는 것에 한데 묶여져있었는데 그것은 왠지 누군가가 그녀를 조종하기 위해서 일부러 만들어 놓은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아마 누군가에게 조종당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마치 꼭두각시 인형처럼 느껴졌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그녀의 몸을 묶은 줄을 쥐고서 티내지 않게 이리저리 잡아당기고 있는 듯했다. 그는 과연 누굴까? 나뭇가지를 쥐고 있는 하얀 손을 제외하고는 그림에는 그에 대한 어떤 단서도 그려져 있지 않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제 의지대로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있음에 괴로움이 역력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너무나도 피곤해 보였다. 보는 사람의 기운이 축 처질정도로 쳐져있는 눈 꼬리 아래에 자리한 눈동자에는 어떤 의지조차도 찾아 볼 수 없을 만큼 텅 비어있었다. 텅 빈 눈동자 속에는 그저 괴로움만이 가득하게 느껴졌고 빼쭉하게 뻗은 콧날 아래로 이어진 입모양은 그녀의 눈 꼬리처럼 기운 없이 축 처져 있었다.     


 그 그림을 보노라니 왠지 모르게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앞서 전시 된 그림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그림이 그려내고 있는 암울한 분위기 때문인 것 같았다. 사실 무엇보다도 저 그림 속 광경이 그저 낯설게만 느껴지지는 않았기에 꺼림칙했다. 낯선 가운데에서 느껴지는 익숙함은 왠지 거울 속에 비추어진 나의 모습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과도 같았다.


 문득 그 그림이 무언가와 겹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어두컴컴함. 누군가의 조종. 답답함. 괴로움. 그리고 무기력함……. 익숙한 풍경과 느낌들이 머릿속에서 하나둘씩 떠올랐다. 아. 그것은 내가 밤마다 꾸는 악몽의 풍경이었다. 그렇다. 그림은 밤마다 나를 괴롭히던 그 악몽의 잔상들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었다. 그렇다면 저 그림 속 지친 표정의 여자는?      

 나는 다시 한 번 그 그림을 들여다보았다. 그림 속의 여자는 너무나도 지쳐있었다. 자신을 묶은 실에서 풀려나고 싶어 했다. 그녀는 보이지 않는 조종자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했다. 그리고 무언가를 찾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녀의 눈동자가 텅 비어 있는 이유는 나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텅 빈 눈동자 속에 담기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었다. 그 것은 바로……!     

 나는 그림 속 여자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곧 서글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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