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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크로치 Jun 12. 2023

이대로 사는 게 맞나 싶은, 오늘

불안과 분리된다



나는 회사 근처에 채 5평도 되지 않는 방에 거주하고 있다. 책상, 침대, 옷장이 차지한 자리를 제하고 나면 사람 하나도 제대로 누울 수 없는 공간만 남기 때문에 집에서 홈트는 꿈꿀 수 없다. 이 근방에서 급하게 구할 수 있는 5개의 방 중에서 그나마 가장 깨끗하고 햇볕이 잘 드는 구조이기 때문에 택한 것이었는데 좁은 건 어쩔 수가 없다. 좁다는 가장 큰 단점 외에, 단열이 잘 되고 관리비 많이 나오지 않는 것 등은 장점이라고 볼 수 있지만 여러 장점들을 하나의 단점이 거대하게 지배하는 방 안에 가만히 누워있다 보면 여러 생각이 든다.


대체로 많이 드는 생각은 이것이다: '내가 이렇게 누워있는 게 맞는 건가? 조금이라도 더 책상에 앉아서 뭐라도 공부해야 인생이 아깝지 않을 텐데, 몸은 정말 노곤하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서라도 공부를 해야 하는 게 맞는 건가?'-그러다가 결국 그냥 잔 적이 태반이다. 그래도 나의 질문은 끊임이 없고 그 끝은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건가?'이다.



이상적인

인생이란?



죽고 사는 데에는 옳고 그름이 절대적이지 않다. 애초에 옳고 그름의 기준 자체가 상대적이기 때문에 상대적인 기준을 활용하여 삶과 죽음의 결과를 절대적으로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자문하는 '이렇게 사는 게 맞나?'란 질문의 취지는, 정확히 말하자면, '나 스스로는 내가 원하고 생각한 대로 살고 있는가?"의 질문에 더 가깝다. 내가 생각하는 모습대로 사는 것이 나에게는 옳은 길이라고 가정하고 있기 때문에 당위성까지 부여하면서 자문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나의 현재에 만족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자꾸 던지는 질문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만족할 수 있을법한 (현 나이대의) 내 모습을 상상해 보면 아래와 같다.


1) 박사과정 중이거나 정규직으로 근무한다
 : 정규직이라면 은행에서 전세대출을 받기가 용이해지므로 평수가 넓은 오피스텔이나 아파트로 이사할 수 있다

2) 매일을 허투루 보내지 않고 알차게 산다
 : 진정한 어른은 시간관리에 철저하고 해야 할 일을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존재이다

3) 인간관계, 존재성찰, 경제적 문제 등 여러모로 고민을 덜한다
 : 이미 오랜 기간 겪어온 문제들이므로 수월하게 해결하고 생각을 덜할 수 있지 않나 싶다


생각이 여기까지 왔으면, 다른 사람들과 비교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는 뜻이 된다. 내 친구들은 나와는 달리 공무원, 회사원 등의 타이틀을 달고 착실하게 월급을 받으며 살고 있다. 물론 정규직이다. 이직을 꿈꾸는 친구들도 있지만, 여하튼 정규직이다. 주변에 부자인 친구들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미디어에서 노출되는 금수저들의 삶을 보면 '편하긴 편하겠다'라고 생각이 들기도 하다. 이런 생각들이 모여서 깔끔하고 적당히 넓은 안식처 하나쯤은 누리고 싶다는 욕망으로 이어졌던 것일까.


역으로 생각해 보면, 지금 내가 원하는 대로 살고 있지 않는 것도 아니다. 정도의 차이가 존재할 뿐, 나는 내가 원하는 길을 택해왔고 그 결과가 바로 지금인 건 차마 부인할 수가 없다. 당장 내가 가질 수 없는 100억 원의 돈을 갈구하고 아쉬운 마음을 담지한 상태에서, 석사과정을 마치고 현재 회사로의 취업을 준비했고 계약직이지만 어쨌든 원하는 것을 얻은 셈이니. 이제 앞으로 내가 더 원하는 것들을 이루어나가기 위해서 노력해 나가면 되는 것이겠지?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들 중에서 경제적인 부분들은 당장 이루어낼 수 없겠지만, 하루를 어떻게 사느냐에 대해서는 지금의 내가 충분히 컨트롤할 수 있는 문제이다. 근본적으로 만성피로와 무기력증을 해결하고, 행동에 동기를 부여한다면 될 것이다.



의. 시선을.

너무. 의식해.



흔히들 이런 말 자주 들어봤을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나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것을. 이 말을 두고서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는 사람들의 시선을 과하게 의식하는 이가 있었다. 그리고 본인이 아닌 타인조차도 자기 기준에 낯부끄러운 행동을 했다면, 자신이 극도로 참을 수 없이 부끄러워했다. 이 사람은 외모가 연예인만큼은 아니어도 훈훈하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괜찮은 편이었는데, 추측하기로는 어릴 적부터 그 같은 외모 탓에 타인의 시선을 남들보다는 상대적으로 더 많이 느꼈을 터이니 세상 사람들이 자신에게 관심을 '분명' 두고 있다는 암시에 놓여있었던 것 같았다.


상대적으로 타인의 관심을 더 자주 받았지만, 그 시선이 꼭 그 사람에 대한 이성적인 관심을 기반으로 보여진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 사람은 세상 모든 이성을 자신과 잠재적으로 인간관계를 꾸려나갈 수 있는 존재로 가정한 듯 행동했다. 오랜 기간 동안 그는 연애상대가 자신의 기준에 어긋나는 사소한 실수를 하면 단칼에 쳐내버렸고, 사람들이 보기에 괜찮은 직업과 알아주는 회사에서 근무하고 싶었기에 본인을 받아주는 회사에서는 근무해보지도 않고서 여러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가 백수로서 긴긴 시간들을 보냈다. 지금은 어떻게 지내는지 잘 모르겠다.


이 사람은 과거 내 친구였다. 그녀는 만약 내가 자기 기준에서 제대로 꾸미고 나온 것이 아니면 투명인간인 듯 무시해 버렸고 말조차 걸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내쪽에서도 연락을 하지 않게 되었다. 꾸미지 않는다는 이유로, 외모가 뛰어나지 않다는 이유로 어째서 내가 그녀보다 열등해지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기에. 그런 그녀가 어떻게 지내는지 이제는 궁금하지도 않다. 그런 그녀를 미워하기보다는, 지금은 본질을 바라보고 남들 시선에서 자유로워지는 사람이 되어 마음에 드는 직장을 구해 잘 지내고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런 그녀가 갑자기 생각이 났던 이유는, 방금 전 카페에 들어와 앉았더니 내 뒤에 앉은 사람들이 내뱉는 타인에 대한 평가와 큰 웃음에 내가 경직이 되어 긴장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들이 나에 대해 말을 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나는 주위를 과하게 의식하고 있었다. 지금 앉아있는 카페가 규모가 작아서 더욱 그랬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더 근본적으로 어릴 때부터의 나의 경험과 심리적 반응이 긴장감에 대한 주요한 요인이다.


최근 회사에서 같은 사무실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편하지는 않다 보니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신경을 쓰는 것에 익숙해져 버렸을지도 모른다. 내가 모르는 사람들이 뭐라고 떠들든, 나에 대해 말하는 것도 아닌데 신경을 쓸 필요는 하등 없다. 이를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만약 나에 대해 안 좋게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걱정을 하는 것은 그동안 살면서 경험했던 '뒷담화'를 암시하는 부정적인 시그널에서 내가 자유롭지 못하다는 뜻이 된다.


회사에서 필요한 말만 하고 지내고 있기는 하지만서도 같은 공간 속에서 그들의 속닥거리는 모습이 보이면, 가장 우선적으로 '나에 대해 말하는 건 아니겠지?'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나는 그들과 최대한 말을 섞지 않고 업무적으로도 얽히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므로 가장 큰 걱정은 진실을 왜곡해서 제3자에게 과장하거나 왜곡하여 퍼뜨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누구에게 어떻게 전달이 되었는지 내가 모른다면,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사실이 아닌 나의 모습이 제3자에게 전해진다면 나는 어떻게 진실을 바로 잡을 수 있단 말인가. 기회조차 차단되어 버리는 일이 발생해 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그런 걱정. 나는 여기에서도 자유롭지 못했다. 머리로는 '신경 쓰지 말아야지.'라고 늘 생각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 감을 잡지 못한 것 같다.


내가 진실로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면, 앞으로의 나의 삶은 여러 방면에서 제약을 받게 될 거다. 진정으로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없다. 그뿐일까. 무언가를 즐기면서도 할 수 없게 된다.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다는 의미는, 누군가에게는 정말로 하나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일 수도 있다. 자기가 원한다면, 피에로 분장을 하고 마트에 장을 보러 다녀도 될 것이고 무지개처럼 일곱 가지 색으로 머리를 물들일 수도 있다. 가끔 생각한다, 알록달록한 색으로 염색을 한 사람들을 보면서 사람들 속에서 튀지 않기 위해서 염색을 하지 않는 이들보다 자기 자신을 표출하는 게 자연스럽고 솔직한 것 같다고. 그만큼 평범함 위에 올라탄 그들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들을 감당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자들이 아닐까?


외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무례하지 않는 선에서 스스럼없이 표출하는 사람들도 자유롭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억지스럽다거나 무작정 대책 없는 의견이 아니라, 남들이 서로 눈치를 보고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있을 때 내뱉지 않은 아이디어들을 대뜸 꺼내놓는 이들이야말로 비난과 비판에 단련된 용자들이 아닐까 한다. 외적이든, 내적이든 나는 그런 사람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알 수 없는 아쉬움과 후회와 개탄스러움이 온 마음을 가득 채웠다.  


결국 나의 이상적인 인생이란 것도 나만의 기준을 오롯이 반영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 남들이 보기에 그럴듯한, 하자 없고 문제없는 일상을 지내며 특별한 관심을 사지 않으면서 구설수에 오르지 않기 위한 삶을 이상으로 설정한 것이 아닐까?  



'내'가 추구하는 가치로 채운 일상



여기까지의 생각에 이른 후, 나는 나의 이상적인 인생의 모습을 바꾸기로 했다.


1) 더 나이를 먹기 전에 박사과정에 진학하고 싶지만, 서두를 이유는 없으므로 여건이 될 때 마음의 결심을 하고 진학을 하기로 한다. 지금 받는 월급의 금액 또한, 마음에 들지는 않으나 지금의 내가 낭비하는 삶을 지속하고 있지 않고 배가 고플 때에 무언가라도 사 먹을 수 있는 풍족함을 선사해주고 있으니 부족한 금액은 아니다. 향후 박사를 졸업한 후에, 정규직 취업이나 투고, 발표 등에 대한 대가로 지금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으니 시기상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이 나이 먹고서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묻는 사람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2)  계획적인 매일매일을 살아가기란 나에게 쉽지 않다는 점을 인정하기로 했다. 나는 무언가를 목표로 할 때에는 체계적인 계획을 세우고 하루에 주어진 할당량을 채우는 것을 선호하지만, 사전에 계획이 없는 날에는 당일에 즉흥적으로 활동하는 것 또한 선호한다. 기본적으로 다양한 관점을 경험해보아야 한다는 생각이 기저에 깔려있기 때문에 계획적 혹은 즉흥적인 활동 중 하나를 더 과도하게 선호하지는 않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어느 날은 계획이 감옥의 창살같이 느껴질 때도 있고, 또 어느 날은 셀프방임이 과하다고 생각되는 날도 있기에 매일의 일상이 동일하지는 않다. 하루하루가 다른 시간들 속에서 지루함을 마주하지 않으려고도 하는 것 같다. 그런 나에게 매일을 알차게 살으라는 것은 '고시생'처럼 풀타임으로 공부하는 수준을 의미하므로, 스스로에게 압박을 덜어내려고 한다.


3) 분명 앞으로 내가 겪어보지 못한 일들을 마주하게 될 것이므로, 그 상황들을 어떻게 잘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과 불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모든 일에서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 약간의 여유를 가지고 바라보면 답이 그리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는 깨달음을 얻은 적이 많았다. 내 힘이 닿는 대로 최선을 다해 주어진 상황을 타개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으므로 당장 눈앞에 놓이지 않은 걱정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 지를 바로 떠올릴 수 있고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게 만드는 의지와 추진력(경제적 요소, 환경적 여건 조성 등)을 갖추고 있다면, 재미있는 인생을 꾸릴 날이 머지않았다.


미래가 재미있을 것이라 생각되니 현재의 삶도 그렇게 지치지 않았다 - 물론 잠이 부족해서 피곤한 것과는 별개이나, 일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충분한 수면임에는 틀림이 없다. 명목 없이 학교에서 하라는 대로 입시공부만 주야장천 해야 했던 중/고등학교 때로 돌아가보면, 충분히 자야 하는 청소년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직장인인 지금보다 더 일찍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고 자정이 넘어가도록 공부에만 시간을 쏟았다. 당연히 수면은 부족해 마지않았다. 지금까지도 아침 7시 20분에 집을 나서기 위해 잠에서 채 깨지 않은 상태에서 눈을 감고 화장실에 들어가 세수를 하던, 세수를 해도 가시지 않던 피로가 엄청난 육체적, 정신적 고통으로 느껴지던 그날들의 기억이 힘겨울 정도로 생생하다. 마음가짐을 바꾸고 여유롭게 지내기 위해서는 적어도 매일매일 적당히 잠을 자야만 한다.


잠도 잘 자고 마음을 편히 먹다 보면, '내가 잘 살고 있나?'라는 고민이 문득 드는 순간이 찾아오지 않을 것만 같다. 여유의 사이사이에서 스스로의 만족을 불어넣으며 살 수 있을 테니. 가끔은 잘 사는지에 대한 고민이 불필요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저 내가 설계한 일상을 무던히 지내면 될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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