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인간을 넘어 실존을 긍정하는 삶의 태도 길러내기

한덕현.『불안한 것이 당연합니다』.

by 노창희

나는 현대인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가장 강력한 감정의 형태가 ‘불안’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불안을 자주 느낀다고 자각하고 있는 이도 있고, 불안을 수시로 느끼지만 자신이 불안을 느끼고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이도 있다. “불안은 ‘모르는’ 것, 즉 무지(無知)에서 시작된다(8쪽).” 의외로 자기 자신에 대해 알고자 하는 사람은 드물다. 한덕현은 ‘주제 파악’을 못하는 것이 불안을 더욱 키운다고 얘기한다. “모르는 것을 안다고 스스로를 속이면 죄책감이 자신을 괴롭힌다. 그것이 불안이다(8쪽).” 불안을 자주 느낀다고 괴로워할 필요는 없다. “불안은 인간의 보편적인 심리 상태(21쪽)”이기 때문이다. “불안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라면 억지로 싸워 이기려들기보다 조금 편안히 달래가며 살아보면 어떨까. 고집불통인 어린아이를 다독이듯 말이다(29쪽).”


불안이 발생하는 이유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접근해 보자. 『불안한 것이 당연합니다』에서 다루고 있는 본질과 실존이라는 개념으로 설명이 가능할 듯하다. “아무런 형식이나 관계에 상관없이 살아 있는 그 자체인 내가 ‘실존’이고, 세상이 나에게 부여하는 역할과 가치를 가지고 살아가는 내가 ‘본질’이다(187쪽).” 본질은 자기 자신이 지향하는 형태일 수도 있지만 많은 경우 타인이나 사회적인 상황 때문에 강요되는 경우가 많다. 내가 가지고 싶은 직업을 갖지 못했다거나 내가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지 못했나 거나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성취하지 못했을 때 우리는 불안을 느낀다. 본질에 집착하게 되면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다. 세상만사가 내 뜻대로 될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실존의 가치는 본질의 가치에 앞서고 더 크다(193쪽).” 불안을 느낀다면 본질보다 실존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남이 강요하는 가치보다 나만의 가치를 찾는 것은 나의 실존에 의미를 부여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내 존재감이 커지면 사회적 ‘본질’의 억압을 변화시킬 수 있다. 따라서 실존은 당연히 본질의 가치에 앞선다(190쪽).”


한덕현은 최후의 인간이 되는 것을 극복해야 한다고 얘기한다. “니체는 ‘초인’의 반대 개념으로 현재 자신이 가진 소소한 즐거움과 안락함에 자족하는 ‘최후의 인간’을 제시한 반 있다(124쪽).” 최후의 인간은 자신만의 독자적인 삶의 가치를 찾는 데 실패한 인간이다. 지금 당장 안락한 삶을 살아가는데 최후의 인간형이 유리할지 모르겠지만 최후의 인간은 불행해지기 쉽고, 상시적인 불안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비교의 준거가 타인과 사회적 시선이 되기 때문이다. 내가 통제하기 어려운 외부 조건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면 불안은 더욱 커지게 된다.


한덕현은 불안과 함께 잘 살아가기 위해 니체의 초인 개념을 빌려 100세 시대에 맞는 새로운 초인 개념을 제안한다. “나를 잃게 되는 치열한 경쟁에서 떨어져 나와, 나만의 기쁨과 나만의 목표를 가지고 내 인생을 살아갈 준비를 하는 이를 진정한 ‘초인’이라 할 수 있겠다(264쪽).” 내 실존을 긍정하기 위해서는 나만의 가치가 필요하다. 특히, 은퇴 이후에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실존적 고민이 필요하다. “니체는 모든 것을 초월해 자신의 자유 의지를 즐기고자 하는 사람을 위버멘시, 즉 초인이라 했다. 나는 100세 시대에 1막의 노력과 경험을 집대성해 2막에 뛰어든 세대를, 니체가 이야기한 ‘위버멘시’라는 말을 응용해 ‘위버 50+0’이라 칭하고 싶다(286쪽).”


한덕현이 제안한 ‘위버 50+0’는 이제 40줄에 접어든 나와 같은 중년들이 곱씹어 생각해 볼 만한 개념이다. 불안을 피할 수 없다면, 불안과 함께 잘 살아가야 한다. 대한민국은 여전히 정신과 상담을 받는 것에 제약이 많은 나라다. 불안을 자주 느끼지만 병원에 가기 꺼려진다면『불안한 것이 당연합니다』를 읽기를 권한다. 나는 최후의 인간을 넘어서 실존을 긍정하는 삶의 태도를 길러내야 한다는 한덕현에게 충분히 설득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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