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참여의 확대는 민주주의의 확장과 심화
지난 2010년부터 2016년까지 영국 보수당의 총리였던 데이비드 캐머런은 2010년 ‘다음 세대의 정부’라는 연설을 통해, 디지털시대의 정부는 ‘투명성’과 함께 ‘시민참여’가 일상적인 정부가 될 것으로 예측했다. 그는 영국 정부가 더 많은 행정정보를 공개하고 시민들이 편리하게 정보에 접근할 수 있게 해 시민들이 행정에 참여할 수 있는 더 많은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을 역설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시대의 변화를 읽고 시민들이 직접 입법과 행정에 참여할 기회를 만들어 내기 위해 노력한다. 독일, 캐나다, 아일랜드, 미국의 여러 주정부 등도 특정한 주제에 대한 시민들의 공론을 모아내기 위해 시민의회 성격의 논의기구들을 운영한 경험을 갖고있다. 그중 아일랜드는 이런 형식으로 헌법개정까지 의논하기도 했다. 우리도 문재인 정부 초기 신고리 5,6호기 문제로 공론화위원회를 만들어 논의한 경험도 있고, 광화문 1번가 같은 제안창구나 현재의 청와대 청원제도 같은 의견 제안 창구도 운영하고 있다. 민간 차원에서는 ‘광주시민총회’나 대전의 ‘누구나 정상회담’, 전주의 ‘해피버스 프로젝트’ 등을 운영한 경험도 있다. 특히 전주의 해피버스 프로젝트는 전주의 버스노선을 재설계하는 과정에 전주시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프로젝트로 현재도 진행중이다. 500명의 전주시민이 버스노선 설계의 기본원칙을 만들고 전주시와 전주시의회가 이에 합의한 이후 실제 노선설계에 대한 의논을 진행중이다.
의견 제안이나 특정한 주제에 대한 논의를 통한 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것과 함께, 시민 스스로 정책을 제안하고 이를 실현할 예산까지 확보하는 직접 민주주의적인 제도인 ‘참여예산제도’가 있다. 이것은 1989년 브라질의 포르투알레그레시에서 시작되어 프랑스 파리, 영국 맨체스터, 스페인 마드리드, 캐나다 토론토, 미국 시카고 그리고 서울에 이르기까지 많은 도시에서 시행되고 있다. 예컨대 아이슬란드의 레이캬비크시는 ‘더나은 레이캬비크’, 스페인 마드리드는 ‘디사이드 마드리드’라는 이름의 홈페이지에서 시민들이 직접 정책을 제안하고, 그 제안에서 시민들의 공감이 늘어나면 관련 예산이 편성되고 집행되는 방식이다. 현재 이 제도는 주민자치를 재정분야에서 실현함으로써 참여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평가받고 있다.
최근에는 프랑스 파리의 참여예산제도가 주목받고 있다. 이달고 시장이 첫번째 임기를 시작하던 2014년 부터 시작된 파리의 참여예산은, 그 규모와 참여하는 시민들이 증가해 자기 마을과 도시를 직접 만들어 가려는 많은 시민들이 참여하고 있다. 지난 8월 27일 서울시 주최로 열린 2021 서울시민참여포럼에서 파리시의 참여예산국장(Head of Participatory Budgeting Department, City of Paris)인 콜린 베르토(Colin Berthaud)는 파리가 현재 예산의 5%를 시민참여예산제로 운영 중이고, 이는 시민 1인당 예산 배정규모로는 세계 최대 규모이며, 18개 자치구에 골고루 진행한다고 했다. 2016년에는 학교에서 참여예산제를 도입해 학생 주도의 참여예산을 실현한다고도 했다. 예산의 30% 정도는 노동자 밀집지역에 사용하게 하는데, 대표적인 성공프로젝트 중 하나로 2016년 시민 1만4000명이 투표에 참여해 생태환경조성법에 따라 도로를 둘러싼 숲을 조성한 그린펜스 사례와 펩렙도서관 사례가 있다고 소개했다.
서울시도 다른 선진국의 도시와 마찬가지로 그간 시민들이 스스로 정책을 제안하고 참여예산으로 이를 뒷받침하는 자치의 영역을 확대해 왔다. 2012년 500억원 규모로 시작하여 올해 700억원 규모로 성장하였다. 지난 10년 동안 5281개의 사업, 5082억원이 집행되었다. 현재 666명이 참여하는 18개 분야별 민간예산협의회가 구성되어 운영 중인 상태다. 이것은 자신이 사는 동네에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동네에 사는 사람들이 가장 잘 안다는 신뢰와 그에 대한 확신이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단체장의 정치적 의지가 중요한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아쉽게도 지난 해 부터 서울시는 관련 예산을 삭감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지난 해는 서울시의회의 다수당이 야당인 덕분에 대폭 삭감은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올해는 여당인 국민의 힘이 다수당이라 현재 서울시의 방침이 관철될 가능성이 커졌다. 예산집행의 방식이 부분적으로나마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여 자신들이 제안한 정책에 대해 참여자들이 투표로 우선순위를 정해 예산을 편성하고 집행하던 것에서 기존의 정책집행 방식으로 되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에따라 그만큼 공무원들의 권한이 커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참여예산이라는 형식과 제도는 시민들 스스로 자신들의 삶의 공간을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주민자치의 실제적 확대에 기여하는 것인데, 이는 앞으로 정부가 일하는 방식을 필연적으로 변화시키게 될 것이라는 점을 말해주는 제도다.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시민참여 확대 없이 앞으로의 정부가 통치하는 것은 어렵다”고 이야기하며 “정부의 권한을 민간에게 분산하는 것이 미래의 정부가 공동체를 운영하는 방식이 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