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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승창 Oct 25. 2022

오래된 공간에서 혁신을 꿈꾼다

 산업화시대의 에너지를 공급하던 공간이 재생에너지 스타트업 공간으로


지금은 에너지스타트업의 공간이 된 과거 베를린에 에너지를 공급하던 가스저장소가 있는 오이로프캠퍼스


 

  서울의 세운상가가 다시 재생보다는 개발을 택하는 쪽으로 향후 계획이 변경되었다고 한다. 세운상가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일하고 있는데, 이 계획에는 세운상가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생각은 없다. 낡고 오래된 건물 대신 쭉쭉 뻗은 현대식 스마트한 빌딩에 대한 생각은 있다. 이렇게 만들면 절로 멋진 사람들이 올 거라고 믿는 것으로 보인다.

반대로 낡고 오래된 공간을 ‘사람’들이 어떻게 만들고 사용하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공간이 될 수도 있다는 창의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꼭 어느 한 쪽이 옳다고 할 수 없는 선택에 관한 문제이기는 하지만 다른 선택이 다른 도시를 만드는 것은 분명하다. 베를린의 오래된 공간들은 이야기의 힘이 있다. 가서 보고 싶게 만드는.


 베를린은  오래된 공간을 보존하면서 새로운 공간들로 다시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베를린의 오래 된 극장이 새로운 문화상품을 만들어 공연하는 것을 본 색다른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바빌론 극장(Babylon Kino)이 그런 공간이다. 동베를린지역의 로자룩셈부르크역 근처에 있는 바빌론 극장은 1929년에 개관한 무성영화 전문 상영관이다.  필자가 보러 갔을 때는 1927년의 이후 SF영화의 원형이라고도 하는 메트로폴리스(Metropolis)가 상영되고 있었다. 이 영화는 처음 상영된 이후 많은 부분이 소실되었다가 2008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원본이 발견된다. 2011년에는 유네스코문화유산으로 등재될 정도로 영화사에서도 중요한 영화로 평가된다. 영화는 자본가와 노동자를 지상과 지하세계로 대비 극명한 사회문제를 드러내지만 결국은 화합으로 마무리되는 구조이기는 하나 100년후의 미래를 상상하는 가운데 보이는 로봇이나 컴퓨터, 화상전화 등 오늘날 모습을 유사하게 묘사하고 있어 놀랍기도 하다.

   그런데 오래된 극장에서 오래된 영화를 상영하니까 무언가 복고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 무성영화의 배경음악이 현대의 오케스트라이다. 극장을 찾는 사람들은 무성영화를 보러 오기도 하지만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들으러 오기도 하는 것이다. 지금은 전속 오케스트라도 있는 것으로 안다. 오래된 공간에서 오래된 영화를 현대의 오케스트라가 함께 하면서 전혀 다른 문화상품, 문화공간이 된 것이다.


 또 다른 경우는 2018년 가을 희망제작소 목민관클럽의 자치단체장들과 함께 찾은 오이로프(EUREF) 캠퍼스인데, 이 곳도 인상적이다.   오이로프 캠퍼스가 있는 이곳은 베를린의 스마트시티 전략의 테스트베드이기도 한 공간인데, 도시재생으로 만들어진 공간이기도 하다.

 이 공간은 원래 베를린시의 가스를 공급하던 시립가스회사가 운영하던 가스공장이자 가스저장소다. 가스공장은1946년 운영이 중단되지만 저장소는 1995년까지 운영되었다. 1871년 만들어진 가스 공장이었고 이 공간은 문화재로 등록되어 있었다. 빈 공간이던 이 곳을 리모델링하고 신축공간을 지으며 2007년 지금의 오이로프 캠퍼스로 만든 것은 민간업자이다. 2012년 베를린 공과대학교의 석사과정 강좌를 시작으로 스마트시티, 에너지 전환, 모빌리티 관련 기업들이 입주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관련 스타트업부터 대기업까지 90여개의 기관, 3,500여명의 사람이 일하고 있는 공간이다. 원통형의 가스저장소는 공연장이 되었고, 오래된 붉은 벽돌의 건물들에는 신재생에너지를 만드는 스타트업들이 입주해 있고, 대기업들은 고층의 신축빌딩에 입주해 있었다. 우리를 안내한  베를린시의 창업지원센터인 베를린파트너스의 사무국장이 베를린시의 스마트전략을 설명하는 와중에 한 말이 인상에 남는다. 그녀는 전통적 에너지를 공급하던 오래 된 이 공간에서 미래의 재생에너지를 만드는 스타트업들이 일하고 있는 모습에 자부심을 느끼는 모습을 가감없이 보여주었다. '우리는 이렇게 오래 된 공간에서 혁신을 꿈꾼다'고.


 물론 우리도 비슷한 경우가 있었다. 서울시에는 우리 산업화 시대의 에너지를 공급하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석유비축기지가 있었는데, 원형을 살리면서 문화공간으로 만들어 지금은 문화비축기지라 부른다. 서울시에서 일하고 있을 때 이 공간의 오픈을 앞두고 오래 전부터 그곳을 문화공간으로 만들어 달라고 요구했던 디자이너나 예술가, 문화운동가들이 공간에 머물러 있게 해달라는 것 때문에 조정을 해야 했던 기억이 있다. 문화비축기지의 외곽에 작은 가건물을 이용해 머무르는 것으로 타협했지만 생각해 보면 이들이 문화비축기지에서 자신들의 이야기와 생산물을 만들어 나가게 할 수 있었으면 더 많은 이야기들과 관계들이 만들어져 공간을 풍성하게 만들었겠다 싶다. 우리가 갖고 있는 관행과 제도가 아직 그 경계를 넘지 못하게 하고 있는 것이 아쉽다. 그럴 수록 오래된 공간에서 혁신을 꿈꾼다는 베를린 파트너스 사무국장의 말이 머리를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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