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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승창 Oct 26. 2022

기억과 기록이 인문학적 도시를 만들다

성찰하는 도시 베를린

이스트사이드갤러리의 작품, 형제의 키스




베를린 도시재생의 또 다른 공간의 축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전쟁과 체제에 대한 ‘기억’, 그리고 ‘분단’과 직접적으로 관계된 곳들이다. 브란덴부르크 문(Brandenburg Gate)이나 체크포인트 찰리(Checkpoint Charlie), 눈물의 궁전(Palace of Tears)처럼 분단을 그대로 보존하고 기념하는 공간들도 있지만 이런 곳은 도시재생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분단을 보존하기는 하지만 이를 다르게 만들어 공간 자체의 성격을 바꾸어 버린 곳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가장 베를린스러운 공간이라는 생각을 하는 곳이기도 하다. 슈프레강이 지나는 아름다운 가버나움 다리가 있는 곳에 위치한 이스트사이드갤러리(East Side Galler)가 그런 곳이다. 1.3km 길이의 베를린장벽이 고스란히 남아 있고, 그 장벽에는 분단과 평화를 주제로 한 회화들이 그려져 있다. 이보다 멋진 야외 갤러리가 있을까?

남과 북이 휴전선 내에 있는 감시초소(GP)들을 없애기로 합의하고 서로 11개씩 ‘폭파’해 버렸다는 이야기를 듣고 너무 아쉬웠다. 좀 더 조사하고 살펴보고 남겨 둔 채 서로 다른 공간으로 만들 계획을 세우는 것은 안되는 것이었을까? 그래도 한 개씩은 남겨두었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싶다.

  베를린도 처음부터 모든 것을 보존했던 것은 아니다. 통일직후 새로운 도시 베를린에 대한 열망이 공간의 다른 구성으로 드러난 곳은 포츠다머 플라츠(Potsdamer Platz)로 알려져 있다. 지금도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소니센터나 베를린영화제가 열리는 건물 등도 이 곳에 있다. 그러나 여기에 있던 베를린 장벽은 상징적으로 남아 있기는 하지만 흔적을 찾기는 쉽지 않다. 통일 이후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 베를린 장벽에 대한 의견이 모아졌다. 2006년 베를린 장벽에 대한 종합계획이 나온 다음에야 베르나우어거리의 베를린장벽과 박물관이 만들어졌다.

 이 종합계획에 따라 베를린 장벽의 보존과 관련한 재단이 만들어지는 데 이스트사이드갤러리도 이 재단의 관리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스트사이드갤러리는 장벽의 보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가운데 알리카바니 교수에 의해 제안된 벽화프로젝트에 수십개국 100명이 넘는 젊은 작가들이 참여하면서 만들어졌다. 동서냉전을 상징하는 장면을 포착하여 그린 제목도 '형제의 키스'인, 동독 공산당 서기장 게리호네커와 소련 공산당 서기장 브레즈네프의 키스 장면은 이 갤러리의 상징적 그림으로 여겨진다.







분단만 도시의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다. 베를린을 걷다 보면 거리 곳곳에서 부딪히게 되는 작은 동판들이 있다. 슈톨퍼슈타인(Stolperstein), 걸림돌이라 불리는 이 노란 동판은 독일 사람들의 아픈 기억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기록이다. 하케셔막트같은 관광지를 가나, 지내던 동네 거리를 걸으나, 심심찮게 눈에 들어오는 이 동판들이 있는 곳은 수용소로 끌려 간 유대인들이 살던 곳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누구 누구가 살았고, 언제 어디로 끌려갔는 지를 담담히 기록하고 있다. 우리의 소녀상처럼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시작한 이 기록운동은 지금은 유럽전역으로 퍼져 있다. 숨기지 않고 드러냄으로써 잊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는, 자기 성찰이 있는 도시는 인문학적이다.

슈톨퍼슈타인. 여기 살았던 유대인들이 언제 어디로 끌려갔는가를 기록, 기억하고 있다

  

잠시 지내던 곳의 기차역인 그루네발트(Grunewald)역도 자신들의 잘못을 드러 낸 기억의 현장이다. 여러 번 다니면서도 그 기차역에 슈톨퍼슈타인처럼 플랫폼 하나를 그대로 둔 채 어느 날에 몇 명의 사람이 이 역에서 수용소로 끌려 갔는 지 전부 기록하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베를린의 이런 현장 기록들이 그렇듯이 화려한 형용사나 비탄의 감정을 드러내는 형용사로 이루어진 설명이 별로 없다. 담백한 기록만이 있을 뿐이다.

  물론 그렇다고 기록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기억을 위한 상징적 공간이나 건축도 꾸미거나 만들어 놓고 있다. 유대인박물관 같은 기록을 남기는 상징적 공간과 브란덴부르크문 옆의 유럽의 학살당한 유대인을 위한 기념비가 2711개의 돌기둥으로 서 있기도 하다. 그렇게 상징을 통해 기억하려고 하는 문화적 예술적 노력에 더해 기록과 기억으로 자신들의 잘못을 성찰하는 모습과 지금도 이어지는 과정은 성찰하는 도시로서의 베를린을 다르게 보게 만든다. 오랜 역사와 풍부한 문화적 자산을 가진 우리의 도시들이 못지 않음을 생각하면 개발로만 달려 온 지난 과정을 성찰하는 도시에 대한 갈증이 절로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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