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쾃과 그래피티가 만든 문화공간
베를린의 도시재생의 커다른 한 축은 동베를린 지역이다. 통일이 되고 난 후 서베를린으로 옮겨와 버린 사람들의 행렬은 동베를린 지역 곳곳을 빈 공간으로 만들어 버렸다. 빵 공장이었던 곳이 노숙자들의 공간으로 변해버렸다거나 커다란 맥주 양조장이었던 곳이 예술가들이 점거하고 있는 공간으로 변해버렸다는 이야기는 특별한 이야기가 아닐 정도로 많다. 그만큼 동베를린 지역의 공간들이 많이 비어 있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통일이 되고 나서 동독 지역의 사람들이 더 살기 좋은 서독지역으로 이주하거나 더 좋은 물건인 서독 기업들의 물품을 구매하면서 구동독 기업들이 쇠락해 버리면서 문을 닫는 경우가 많아졌다. 통일 당시 동독 사람들에게 지급된 급여는 마르크화였기 때문에 동독지역의 사람들은 갑자기 두 배의 소득이 생긴 셈이다. 그만큼 화폐가치에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난한 도시인 베를린은 당장 비어 버린 공간을 개발할 여력이 없다 보니 빈 건물들은 노숙자나 마약중독자들이 차지하는 경우가 많아졌고, 가난한 문화예술인들의 작업실이나 거주공간이 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스쾃(Squat)이라 하여 일종의 점거 운동도 활발하게 이루어져 도시재생으로 유명해진 공간들은 예외없이 스쾃운동(squatting)으로 점거하고 있던 사람들 때문에 옛 건물이 남아있는 경우들이 많다. 하케셔막트역의 하케셔회페(Hackescher Höfe)라는 건물도 100년이 넘은 건물인데, 이 곳도 마찬가지여서 스쾃운동으로 점거하고 있던 사람들 때문에 개발이 이루어지지 못했으나, 지금은 로자룩셈부르그 거리(Rosa-Luxemburg-Straße)로까지 이어지며 서울의 가로수길 같은 공간으로 남았다. 이곳은 현지 디자이너들의 옷과 다양한 편집샵과 분위기 좋은 카페와 음식점들이 자리잡고 있어 젊은 사람들과 관광객들의 발길을 이어지게 만들고 있다. 스쾃운동의 성지같은 타할레스(Kunsthaus Tachele)와 더불어 이 공간에도 그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 골목길에 남아 있는 그래피티(Graffiti)들을 보러 오는 사람들로 언제나 발 디딜 틈이 없다. 개인적으로도 무척 좋아하는 공간이어서 자주 가는 편이기도 하다.
맥주 양조장이 문화예술공간으로 바뀐 경우인 쿨투어브라우어라이(Kulturbrauerei)는 꽤 넓은 공간에 극장과 전시공간, 음식점, 뮤지엄 등이 자리잡고 있고 몇몇 기업들도 입주해 있다. 태권도장이 눈에 띄기도 했다. 이 공간에서 6.8혁명 사진전이 있어서 볼 수 있었고, 구동독지역의 생활을 볼 수 있는 동독박물관은 과거 동독 시절의 모습을 보려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DDR이라고 이미 유명한 구동독박물관이 있음에도 이 곳도 사람들이 많았다.
라이프치히에는 방적공장이 색다른 문화공간으로 바뀌어 있는데, 영등포의 대선제분 공장을 도시재생으로 바꾸어 보려 하는 경우에 참고할만하다. 이런 공간들은 앞서 말한 것처럼 공간이 비어 있어서 가난하고 젊은 문화예술인 작가들이 그런 공간들을 아예 작업무대로 자신들의 공간으로 만들어 살아가다가 개발계획이 나와서 기업이나 지방정부와 대립하다가 일정한 타협이 이루어지면서 기존 공간이 유지된 채 새로운 집단이 만들어져서 운영할 수 있도록 하게 되고 새로운 문화예술공간으로 만들어지게 된다. 앞에서 말한 쿨투어브라우어라이는 지금은 비영리단체가 베를린시로 부터 임대받아 운영하고 있다. 협동조합이나 비영리단체들이 베를린 시로 부터 장기간 임대받아 운영하는 경우뿐 아니라 매입하는 경우도 있다. 여성들로만 이루어진 협동조합을 만들면서 모금한 돈으로 비어 있던 초콜릿공장을 매입하여 여성들을 위한 건물을 만들어 운영하는 곳도 있다.
과거에 동독지역의 빵 공장이었던 곳이 동네의 영화관, 전시관, 카페 등으로 변한 곳도 있었는데, 그 건물에 있는 슬로건이 인상적이었다. “빵이 예술이다”. 빵공장을 커다란 마트나 다른 편의시설, 높은 아파트로 짓지 않은 것은 마을 사람들의 요구이기도 했다고 한다. 공동체가 결국 도시를 다르게 만들어 가는 것이다.베를린, 특히 동베를린 지역에 이런 공간과 건물들이 많은 이유는 통일되기 전의 동베를린의 이런 공간이나 건물의 소유는 대개 국유이기 때문이다. 통일된 후 소유권이 베를린 시로 넘어 왔고 가난한 베를린 시는 이런 공간들을 개발할 여유가 없었다. 통일 직후의 베를린 시장이었던 클라우스 보베라이트(Klaus Wowereit)는 '베를린은 가난하다, 그러나 섹시하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도시의 빈 공간들이 늘어나면 도시의 풍경은 어두워진다. 그만큼 도시의 활력이 떨어져 있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느 도시나 성장과 쇠락의 경험이 있기 마련이고 그럴 때 어떻게 그런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도시의 활력을 찾게 되는 지는 도시마다 다르다. 베를린은 도시의 가난이 역설적으로 기존의 오래 된 도시 공간을 남기면서 멋진 문화 예술공간으로 변신하도록 만든 도시이기도 하다. 개발을 못한 채 남겨졌던 공간들을 점거하고 있던 문화예술인들이 창의적인 활동들을 결합하면서 그 공간을 찾는 사람들에게 매력을 느끼게 만들어 준 셈이다. 빈공간과 도시의 가난이 오히려 사람을 불러 들인 베를린의 모습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어디서나 낡고 쇠락해 버린 공간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 이유를 풀어나가다 보면 그 공간과 관계 맺은 사람들의 스토리를 갖게 된다. 그런 공간에 문화와 예술이 결합하면서 새로운 스토리가 만들어지고 공간은 과거와는 다른 공간이 되어가면서 도시가 다시 살아나는 모습을 공통적으로 보여준다.
설사 공공이 이를 기획하더라도 ‘사람들’의 참여와 결정없이 스토리가 만들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곳곳에서 확인한다. 미리 재정과 예산을 투입하기로 결정하면 안되는 셈이다. 그러므로 도시재생기금 등을 만들어 경직적으로 예산이 지출되기 보다 주민들의 요구와 필요에 따라 계획이 만들어 질 수 있게 해야 한다. 라스베가스의 다운타운프로젝트처럼 아예 상업적 펀드가 기획할 수도 있겠지만 드문 경우라 할 수 있다. 혁신적 아이디어를 가진 그룹들의 존재가 공간을 변화시키는 요소로 작동한다는 점을 이해한다면 만들어 주기 보다 만들려고 하는 사람들에 대한 지원이 더욱 필요하고 중요하다. 지금까지의 행정은 만들어 주는 공급마인드였다면 이제는 그를 도와주고 지원하는 방식으로의 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베를린의 공간들을 볼 때 마다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