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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그립 Jan 18. 2024

나는 이제 착한 딸 안 할 거야 -1-

착한 딸 콤플렉스 벗어나기 

아주 사소한 일로 시작했다.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평소처럼 똑같이 엄마가 나에게 하소연하고, 불평했다. 

이번에는 내가 받아주지 않았다. 그게 시작이 돼서 엄마와 말싸움이 시작됐다. 화산을 용암을 내뿜듯이 내 속에 겹겹이 쌓여갔던 말들이 터져 나왔다.


나는 엄마의 힘든 삶을 자식에게 나눠서 져달라고 하는 것을 욕하고 엄마는 같이 짐을 져주지 못하는 나를 이기적이라 했다. 쌓인 말을 악을 써가며 서로에게 소리를 지르는 엄마와 나는 참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계속되는 언쟁에 옆에 있던 남동생이 나를 말렸다.

"누나, 애들이 본다."


그제야 엄마만 보였던 내 눈에 아이들이 들어왔다. 첫째는 놀라 자리에 멈춰서 있고, 둘째는 귀를 틀어막고 눈을 감고 이불을 덮어쓰고 있었다. 조카는 무섭다며 방문을 닫고 울고 있었다.


할 수만 있다면 모든 걸 다 꺼내고 싶었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 그러나 멈춰야 했다. 아이들에게 옷을 입히고 가방을 챙겼다. 그러는 중에도 엄마는 계속 내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아이들을 챙겨 나오는데, 남동생이 따라 나왔다.


"누나도 참 많이 쌓였는가보네."


그 말에 아무 대꾸하지 않았다. 그대로 차를 몰고 친정에서 나왔다.




차를 타고 집으로 오는 길에 아이들은 '너무 놀랐어.' '나는 시끄러워서 귀 막고 있었어.' '나도 나도' 하며 처음 보는 광경에 너도나도 이야기를 했다. 신기한 서커스라도 것처럼. 그래, 우리 꼴이 서커스 같았겠지.



사진: Unsplash의Raphael Renter | @raphi_rawr




몸싸움은 하지 않았는데도 온 몸이 맞은 것처럼 아팠다. 타이레놀을 먹고 침대에 누웠다. 아이들은 내 눈치를 보는 모양이었다. 둘째는 울고 있는 나를 한번 꼭 안아주고 베개를 가져다주었고 첫째는 "엄마, 쉬세요." 하면서 발뒤꿈치를 들어 방문을 닫고 나갔다. 남동생에게 자초지종을 들었는지 남편이 퇴근 후 무슨 일이냐며 방문을 열었다.


"우리 이사 가."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것뿐이었다. 그리고 잠이 들었다.






나는 엄마가 항상 불쌍했다. 지독한 아빠를 만나 편하게 살아도 될 만큼의 재산을 모았으면서도 매일 몸이 부서져라 일을 하는 엄마가 가여웠다. 가족에게 애정을 가장한 구속을 당연시하는 아빠 때문에 늘 마음이 고달픈 엄마가 애달팠다. 자식들 때문에 참고 살았다는 말이 나에겐 가시였다. 엄마의 고단한 삶을 벗어나지 못하는 건 자식들을 위한 희생이라는 말을 믿었다. 그게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나는 그저 내가 착한 딸이라고 생각했고, 그게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발적으로 엄마의 말을 무조건적으로 들어주고 수용해 주는 손발역할을 해왔다. 그러다 보니 엄마는 점점 내게 의지했다. 사소하게는 인터넷에서 물건 사는 것부터 크게는 사업에서 자잘한 일처리까지. 그러다 보니 엄마는 점점 할 수 있는 것이 줄어들었고 모든 일에 자신감이 사라졌다. 아직 50대인 엄마는 키오스크 이용법, 셀프 주유까지 전부 내게 맡겼다. 심지어는 주차난이 예상되면 2시간 거리에도 나를 불러 태워달라고 했다. 그러면 나는 아이 셋을 차에 싣고 엄마를 데리러 갔다. 하루 스케줄을 짜면 그대로 실행된 적은 손에 꼽았다. 늘 엄마가 갑자기 전화 와서 이것 좀 '잠깐'해달라고 하니까. 그러면 하루가 어그러지는데도 나는 엄마를 위해 달려갔다.그게 나와 엄마에게는 서로의 독이었음을 알게 된 것은 심리상담을 받으면서부터다. 


심리 상담을 받으며 이런 괴로운 점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자 상담 선생님은 내게 '엄마로부터 좀 떨어질 것'을 숙제로 냈다. 이런저런 방법을 말씀해 주셨지만, 그건 그 당시 내겐 너무 어려운 일들이었다. 그러나 더 이상 이렇게 계속 엄마를 가엾게 여겨 내 삶을 희생할 수는 없었다. 물에 빠진 엄마를 건저 내려고 나까지 물속에 있을 순 없었다. 



나는 이제 착한 딸을 그만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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