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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그립 Dec 13. 2023

손 많이 안 가는 아이

  사회적 민감성이 높지 않은 나지만 유독 엄마의 기분과 감정이 잘 느껴졌다. 엄마가 기분이 안 좋으면 나도 안 좋았고 엄마가 슬프면 나도 슬펐다. 그렇기에 엄마를 슬프게 만들지 않는 것이 나의 중요 과제였을지도 모른다. 엄마에게 걱정을 끼치거나 더 이상 힘들게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동생 때문에 힘들고 아빠 때문에도 충분히 힘든 사람이었으므로.




  초등학교 5학년쯤이었던 것 같다. 일기예보에 없던 비가 갑자기 폭우처럼 쏟아져 내렸다. 하교 시간이 가까워지자 교문 앞에는 색색의 우산들이 펼쳐졌다. 우산을 펼쳐 들고 엄마들은 교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한 손에는 자신의 아이에게 줄 우산 하나씩을 들고서. 반 친구들은 종례 시간에 집중하지 못했다. 고개를 쭉 빼고 각자 엄마를 찾아 이리저리 눈을 굴렸다. 학교에 한 번도 찾아오지 않은 엄마지만, 오늘만큼은 오지 않으셨을까 생각하며 나도 열심히 우산 행렬을 눈으로 좇았다. 





  종례를 마치고 반장의 ‘차려, 경례!’ 소리에 맞춰 우르르 교실 문밖을 나섰다. 나는 어쩐지 빠르게 나가고 싶지 않았다. 꾸물꾸물 책가방에서 책을 넣었다 뺐다 하며 시간을 끌었다. 반 친구들이 모두 빠져나간 후에 느릿느릿 걸음을 옮겼다. 다들 실내화 가방을 머리에 받치고 각자 엄마에게로 뛰어갔다. 한참을 학교 현관문 신발 갈아 신는 곳 앞에 서 있었다. 다른 아이들이 모두 나간 후 남은 것은 나와 인근 보육원에서 학교에 다니는 반 친구 하나뿐이었다. 우리 둘은 약속이나 한 듯이 서로를 쳐다보지 않았다. 




     비는 그칠 것 같지 않았다. 하는 수없이 터덜터덜 교문 밖을 나섰다. 몇몇 아이들이 아직 나오지 않았는지 엄마 서너 명이 아직 교문 밖에 서 있었다. 최대한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땅만 보며 걸었다. 한 아줌마가 말했다. 


“얘! 빨리 뛰어가! 비 다 맞는다!” 


비를 쫄딱 맞으며 천천히 걷는 내 모습을 뚫어져라 보는 시선들이 뒤통수에 꽂혔다아랑곳하지 않고 보통의 걸음걸이로 걸었다. 비 정도야. 다들 오는 엄마가 안 온 것 정도야. 이 정도야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고 싶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어야 했다.



 그렇게 비를 맞으며 집에 도착한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곧이어 엄마가 돌아왔다. 흠뻑 젖은 나를 보고 흠칫 놀라는 엄마와 눈이 마주쳤다. 

"우산 안 들고 갔었어? 물 떨어지니까 빨리 옷 벗고 욕실로 들어가!" 

마음속에서는 수만 가지의 생각이 똘똘 뭉쳐졌다. 머릿속에서는 엄마를 향해 소리를 질러댔다. 가슴속에서 불이 일었다. 그와 정반대로 내 입은 굳게 다물어져 어떤 말도 나오질 않았다.



엄마는 지금도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하신다. 우리 딸은 어릴 때 손이 하나도 가지 않는 아이였다고. 혼자서도 스스로 잘하는 아이였다고. 그럴 때마다 생각한다. 정말 나는 손이 안 가는 아이였을까.





 나는 어느새 아이 셋 엄마가 되었다. 둘째는 요구도 많고 떼도 많이 쓰고 큰 소리로 운다.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준다는 속담처럼 그런 둘째를 더 챙겨주게 된다. 그러다 보면 문득 첫째와 셋째에게 눈길이 간다. 딱히 내 손길이 없어도 혼자 꼬무락 뭔가 하고들 있다. 나는 그 아이들의 곁눈질이 보인다. 장난감을 만지면서도 슬쩍슬쩍 둘째를 안고 있는 나를 보는 아이들. 그럴 때면 첫째와 셋째도 부른다. 장난감을 곧바로 내팽개치고 달려와 안기는 아이들을 쓰다듬어 주고 볼에 뽀뽀도 사정없이 날려본다.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한껏 벌려 헤~ 하고 웃었다. 



 이따금 비를 홀딱 맞으며 걸어간 그날이 떠오른다. 간절히 누군가의 손길을 그리워했던 그때. 옛 생각이 떠오르면 어김없이 마음속에 작은 아이가 불쑥 고개를 내민다. 그럴 때 우리 아이들에게서 어린 시절 내 모습을 찾는다. 아이들을 돌보면서 내 마음속 작은 아이도 같이 쓰다듬는다. 오지 않았던 엄마 대신 어린 나에게 대신 우산을 씌워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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