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도 나이키는 있다. -3화-
설문대 할망의 설화, 제주도에 사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아는 그 이야기. 내가 제주도에 처음와서 들은 설문대 할망의 설화는 한라산에 관련된 것이다. 한라산을 본 설문대 할망은 한라산 꼭대기가 뾰족한게 마음에 들지 않아 끝을 `꼭` 잘라 집어 던졌다. 그리고 한라산에 백록담이 생기고 던져버린 꼭대기는 서귀포에 박혀 산방산이 되었다고 한다. 이 설화를 듣고 “뭔 말도 안 되는 소리야”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산방산 밑둘레가 한라산 정상 지름과 얼추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한라산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그 관심은 한라산에 대한 공부로 이어졌다. 인터넷 검색과 책을 통한 지식을 쌓기 시작했고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제주도에 산은 한라산이 유일하다`
아까 설화에서 한라산의 꼭대기가 산방산이 되었다는데 산방산은 산이 아닌가? 라는 의문점이 들 수 있겠다. 산방산 이외에도 영주산, 청산(성산일출봉) 등 많은 산의 명칭이 존재한다. 근데 유일하다고? 많은 전문가들의 의견을 토대로 하자면 제주도에 산은 한라산뿐이며 모두 오름이라고 말한다. 오름은 제주도에 분포하는 기성화산체를 말한다. 조금 자세히 설명하면 2007년 산림청에 따르면 386개의 오름이 있다고 한다. 즉, 화산활동으로 생긴 언덕을 오름이라 생각하면 된다.
그렇다면 왜 헷갈리게 산이란 명칭을 쓰는 것일까? 한 가지 설로는, 옛 선비들의 한자숭상 문화로 인해 오름보다는 산과 봉을 썼다는 이야기가 있다. 과거 등으로 육지로 올라갈 때 오름정기 받고 공부했어보다 산과 봉의 정기를 받고 공부했소 라고 말하는게 더 폼나지 않았을까 하는 이야기이다. 계피는 촌스럽고 시나몬은 무언가 고급져 보이는 현상처럼 말이다.
한라산에 대한 공부가 계속되고 어느 정도 익숙해질 무렵 한라산에 대한 또 다른 흥미로는 설화를 알게 되었다. 육지사람과 연관된 한라산의 설화 말이다.
제주도에서 여유로움을 즐기자 다짐하면서 내려오긴 했지만 낯선 도시에 대한 두려움은 감출 수가 없었다. 성인이 되고 제주도에 놀러 간 적도 한 번도 없는 나였기에 제주도에서의 직장생활은 앞으로 즐길거리도 모르는 것도 많은 도시였다. 가끔은 다시 고향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일주일에 7번 정도 들기도 했다. 그런 심리적 불안 상태에서 타 부서 과장이 신기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과장은 “제주도 오면 차 타고 바다만 보러 다니고 하는데 제주도는 오름을 올라가야 한다. 근데 오름보다는 한라산을 올라가 봐야지. 요즘 젊은 친구들 중에서 힘들다고 백록담을 못 가본 사람이 있어 제주도민이라 이래서 할 수 있겠나.”라고 말씀하시면서 라떼 한 모금 하셨다. 그리고 다음 멘트가 가장 중요하다.
“육지사람들이 제주도 오잖아, 이게 신기한게 기운이 있어 한라산의 기운이. 육지사람들은 한라산을 3번 오르면 제주도를 떠나게 된다. 내가 본 사람들도 다 그랬어.”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만화 포켓몬스터에서 주인공 지우가 피카츄와 함께 전 세계 포켓몬을 찾기 위해 힘차게 발걸음을 내딛던 그 마음이 이해가 갔다. 지우는 포켓몬을 찾기 위해 발을 디뎠지만 나는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한라산에 발을 디뎠다. 나는 이 것을 나는 이것을 陸人漢拏三登歸鄕 설화라고 명명했다. 그리고 3번을 하루빨리 채우기 위해서 태풍이 불고 다음 날, 비가 내리는 날, 상관없이 한라산에 올랐다. 내가 6월에 제주도에 내려갔고 같은 해 9월 백록담을 3번 눈에 남았다. 즉, 한라산을 3번 올라갔다. 그리고 나는 제주도를 떠날 날을 기다렸다. 그리고 3년이 지났다. 이 설화는 나에게는 미적용 대상이었나보다. 나는 아직 제주도이다.
한라산의 설화도 흥미롭기 하지만 그보다 재미난 건 사계절의 백록담과 한라산을 눈에 담는 것이다. 한라산의 정상을 3번 이상 올라가 본 입장에서 제주도의 바다보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그리고 한라산에는 백록담만 있는 것도 아니다. 한라산의 정상인 백록담을 볼 수 있는 등산코스는 성판악 탐방로, 관음사 탐방로 2가지이다. 다들 이 2가지 코스만을 생각하는데 한라산에는 다양한 오름이 있고 백록담 이외에도 한라산을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코스가 있다. 어승생악 코스, 윗세오름으로 갈 수 있는 어리목, 영실, 돈내코 탐방로 그리고 석굴암 탐방로이다. 타 부서 과장의 陸人漢拏三登歸鄕 설화 때문에 한라산을 백록담을 3번 등산하고 혹시 백록담이 아니라 코스 3번이 아닌가 생각이 들어 모든 코스를 다 올라가 본 입장에서 가장 추천하는 코스는 어승생악 탐방로이다.
올라가기도 편하고 한라산의 풍경을 즐길 수 있고 무엇보다 백록담을 올라가는 코스보다 시간이 덜 들고 몸이 덜 피곤하다. 백록담을 올라간다하면 하루 날을 잡고 새벽부터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직장인에게는 주말 하루가 날아간다. 그리고 다음 날도 몸이 아파서 누워있어야하므로 실상 이틀이 날아간다. 주말이 없어진다. 그래서 제주의 직장인에게 가장 적합한 등산코스는 어승생악 탐방로라 볼 수 있다. 기억해라 한라산은 절때 동네 뒷산이 아니다. 무리하지 말자.
그래도 제주도에 친구들이 놀러 오면 꼭 한라산에 오르는데 무조건 백록담을 봐야 한다고 똑같이 말한다. 제주도에서 한라산을 올라가려는 대다수가 백록담을 눈에 담고 싶어 하긴 하다. 보통 어승생악 코스를 추천하는데 고집이 센 친구들이 오면 서슴없이 백록담을 보러가기도 한다. 백록담을 오르는게 쉬운 것이 아닌데 이제 어느 정도 경험이 생겨 짐은 가볍게 등산의 즐거움은 무겁게 만드는 노하우가 생겼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산에서 먹는 김밥과 라면이다. 아무래도 3년 차 제주 직장인이기 때문에 24시나 새벽에 문을 여는 김밥집을 빠삭하게 알고 있다. 등산 전 김밥을 사가고 라면은 컵라면을 준비해간다. 중간 진달래 대피소에서 먹는 라면의 맛은 정말 맛있다. 가끔 까마귀들이 내 라면을 호시탐탐 노리지만 난 절 때 뺏기지 않는다. 친구들도 말하는 것이 한라산의 풍경보다 라면먹은게 더 재밌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라면 먹는 것 말고 또 다른 한라산의 즐거움은 겨울의 한라산을 보는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한라산은 겨울이 진국이다. 눈 때문에 등산이 위험하긴 하지만 새하얀 눈이 덮인 한라산은 보기만해도 눈이 정화되는 느낌이다. 겨울 한라산의 정기를 받고 공부했으면 서울대를 갔을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이다. 사계절 별로 한라산의 볼거리가 다르다는 것도 매력적이다. 다만 백록담에 물이 차있는 것을 본 적이 별로 없는데 차있어도 일부만 차있거나 했을 뿐이다.
내려가서 물을 부을 수도 없고.. 90년대는 백록담에 내려가 캠핑도 하고 사진도 찍을 수 있었다는데 신기하기만 하다. 낭만이 있다면 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쓰레기 투기 등 문제점이 심각해져 현재는 백록담에 내려갈 수 없고 야영 등이 금지되어있다. 또한 한라산 탐방 예약제가 시작되어 하루 500여명만이 백록담에 올라갈 수 있다. 혹시 백록담을 보고 싶으신 분이 있으시다면 미리 예약하길 바란다.
사진 1. 한라산 진달래대피소에서 먹는 라면(너무 맛있다. 진짜 너무 맛있다.)
사진 2. 한라산의 겨울 풍경(새하얀 옷을 입은 한라산)
설마.. 한라산 3번 올라야 한다는 게 백록담에 물 찬 것 3번 봐야 한다는 건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