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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몬도 Feb 12. 2021

나는 사랑이 당하고 싶어서

내 인생에서 가장 슬픈 날


슬프다는 단어가  끝나기도 전에 탈혼이라는 거대한 시간을 불러온다. 탈혼 결혼생활의 종결을 의미하는 동시에 주체적인 선택이 더해져 인생에서  이상 슬프지 않기로  의사결정이다. 직접 고른 단어임에도 ‘탈혼이라는 말이 주는 어감처럼 씩씩하지 않은 날도 있다. 어쩌면 강력한 어로 더욱 강해지고 싶은 지를 담았을 지 모르겠다.


사회가 여전히 이혼, 이혼한 여성에 대해 안타까운 시선이 많은 만큼 나만큼은 나의 이혼을 다르게 해석하고자 하여 탈혼이라는 언어를 사용하고자 한다. 세상이 쉽게 사용하면서 발음도 편리한 이혼을 버리고, 입을 닫았다가 입술을 열면서 터뜨리는 파열음인 ‘이라는 글자를 결혼의 옆에 는다.


입술을 박차고 숨을 터뜨리며 날숨을 공기 중으로 퍼뜨린다. 낯선 단어에 직접 소리를 내는 나도, 듣는 이도 귀가 쫑긋한다. 탈출, 탈춤 같은 흥겨운 분위기를 끌어올린다.

그 소리에 힘을 실어 결혼으로부터 막혀있던 나를 해방시킨다.


탈혼 하는 , 감정적으로 슬펐던가? 정작 슬플 수는 있었을까. 결심하고 실행하던 날의 모습은 비장했다. 거실에 앉아 까만 밤이 새는  바라보았고 날이 밝자 짐을 싸기 시작했다. 신혼여행    용량의 캐리어에 다음 날부터 당장 입고 출근할 옷들을 담았다. 결혼을 시작한  여름이었고 겨울에 나오기로 했다.

두꺼운 겨울 옷은 몇 개 넣지 않았는데도 금세 캐리어가 꽉 찼다.


출발하기 전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더 이상 나 못 살 것 같아. 지금 집으로 갈게.

차에 시동을 걸어 본가로 돌아왔다. 엄마가 차려준 따뜻한 국과 밥을 먹고 간밤에 자지 못한 잠을 먼저 잤다.  날은 나의  슬픔을 끝내기로  날이다. 본가로 돌아와서 까무룩  낮잠은 달았다.


슬픔이라는 감정은 언제 느낄 수 있을까.

커피포트에 생수를 붓고 스위치를 내렸다. 물이 끓는 3분 사이에 좋아하는 머그컵을 고르고 무슨 차를 마실까 고민을 한다. 최근에 새로 구입한 머그잔 세트를 꺼내기로 했다. 머그에 어울리는 티백을 고민하는 동안 더없이 신중하다.


결혼을 할 때, 찻잔과 티를 고르는 것만큼이나 숙고했던가.


7년 동안 한 사람과 연애를 했다. 대학생 시절에 만난 사람과 길기만 한 교제를. 세상은 오래된 연인이 있으면, 그중 여성이 30대에 진입하게 되면 이른 결혼을 하라며 참견을 했다. 신혼을 즐기고 첫 아이 출산은 35세 이전이 되어야 한다는 이유를 들었다. 결혼을 해야 한다는 생물학적인 이유 말고 결혼은 오랜 꿈을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나는 원가족에서 독립하고 싶었다. 딸(여성)로 가족의 재산 중 일정 부분을 받으면서 주거 독립의 힘을 이루는 방법은 결혼 외엔 없었다. 옆에는 연인이 있었다. 결혼을 할 이유보다 하지 않을 이유가 더 부족했고 결혼을 하기로 했다. 이렇게 결혼 계획을 명확히 하자 세상은 다시 조용해졌다. 결혼 준비 기간에 연인과 많이 싸운다고 말을 하면 너 나할 것 없이 ‘모두가 그렇다’고 하며 침묵을 종용했다. ‘모두가 결혼 준비할 땐 싸운다’는 말속에 ‘얼마만큼 싸우는지, 어떻게 싸우는지’는 없었다. 결혼을 준비하는 동안 더는 함께 나아갈 수 없다는 걸 이미 여러 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알고 있어도 변하는 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  연애의 맹점으로 나 그는 헤어지는 법을 몰랐다. 돌이킬  있는 시기는 지난  같았다. 나와 그의 가족 주변에 모든 사람들에게 청첩장은  뿌린 후였다.

그 남자의 손을 잡고 식장에 서있다. 지난 계절에 예약한 채플 예식장에 두 발을 가지런히 놓고서.

그리고 수많은 사진이 찍히는 셔터와 셔터 사이에, 좋아하는 친구들이 나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 사이사이, 혼란하기도 한 나는 입꼬리가 자주 쳐지곤 했다.


결혼식을 한 그 날이 가장 슬펐나 하고 고민을 하는 사이 커피포트의 물이 다 끓고 달칵하는 소리가 났다.

뜨거운 물을 곧장 머그잔에 콸콸 다 붓지 않았다. 고작 티백 하나였지만 정성을 기했다. 차를 내리기 전 머그잔을 먼저 따뜻한 물로 데웠다. 어느 정도 따뜻해진 머그컵에 티백을 넣고 주둥이가 뾰족한 주전자에 옮겨 담아 티백 위로 물을 쪼르르 떨어뜨렸다. 배향을 머금은 녹차의 향기가 공기 중에 퍼졌다.


티백 봉지에 적힌 1 30초가 지나고서 그제야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연인이라는 이유로 처음 섹스를 했던 날을 가장 슬펐던 날로 떠올릴  있었다.

찻잔과 티를 고르는 것만큼, 결혼이 신중했을까.




만난 지 삼 년쯤 되었을 때부터 그는 섹스를 하고 싶다고 조르기 시작했다. 나는 그와 섹스를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때의 나는 단지 남자 친구가 있다는 사실이, 교제를 하면서 한 사람의 온전한 사랑을 받는 일이 좋았다.

그 일이 정말 좋았다.

나는 그로부터 뜨거운 사랑을 당하는 일이 좋았다.




아빠의 험한 말과 폭력 사이에서 자랐다. 그랬기에 언제나 아빠와 다른 모습을 가진, 나를 소중히 대해주는 사람을 바랐다. 성인이 되고 다정하고 따뜻한 남자 친구와 교제를 하면서 그 바람은 실현되었다.

당시에 성교에 대한 거부감을 친구들에게 고민으로 꺼내면 그들은 내 친구들이었음에도 남자 친구가 너무 불쌍하다며 성화였다. 남자 친구가 너무나 아끼고 잘해주는데 잠자리도 안 해주면 안 된다고, 다른 데 가서 풀게 된다고 했다. 혹시나 다른 이야기를 들을까 싶어 또 물어도 돌아오는 대답은 같았다. 여러 대답을 듣고 오래 지나지 않아 이별하지 않으려고 처음으로 섹스를 했다.

머릿속은 혼란스러웠고 첫 섹스는 좋지 않았다.



행복함과 기대감 없이 모텔로, 결혼식장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결혼생활에서 빠져나와 30대 중반이 되어서 나는 페미니스트가 되었다. 지금의 나는 원하지 않는 섹스를 하기 위해 모텔로 들어가던 20대 중 하루를 인생에서 가장 슬픈 날로 떠올릴 수 있다. 나의 욕구가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던 시간이었다.

내가 경험하지 않은 걸 먼저 경험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의 목소리보다 더 크게 섞여 들어와 있었다.

마냥 사랑을 당하고 싶었던 시절을 살아냈다.



10대엔 아빠의 폭력이 무서웠고 20대엔 연애가 끝이 날까 두려웠다. 30대 초반, 이혼을 하면 인생이 망할 것만 같았다. 지금 나는 나의 이야기를 쓰고 비슷한 사람들과 함께 목소리를 내면서 살아간다.

내게만 일어나는 일 같아 고통스러웠지만 지금 이 글을 세상에 내놓으면 사랑하지 않는데 결혼을 해야 할 것 같아 고민하는 한 사람, 사회의 시선이 두려워 탈혼을 못하는 누군가가, 그리고 사랑당하고 싶어 연애를 놓지 못하는 한 이에게 닿을 수 있기를 바란다.

무엇보다 지금의 나보다 어린 나이의 자신에게로 달려가 타인에 의해 사랑당하는 걸 욕망하지 않아도

결국 스스로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본인이 될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영화 <벌새> 속 영지선생님과 은희 이야기를 자주 떠올린다. / 상상마당 포토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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