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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 Jun 14. 2022

평냉, 먹고 갈래?

평양냉면

을지면옥이 재개발 때문에 위기에 봉착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갑자기 없어질지도 모르니 서둘러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이 든 건 그러니까 아주 자연스러웠던 거다. 그곳은 무려 '문 닫기 전에 가야 할 맛집'이라는 평을 받고 있지 않은가! 아, 물론 아예 문을 닫는 것이 아니라 이전을 하게 되는 거겠지만 오래된 노포가 어떤 이유에서건 이전을 하게 되면 어쩐지 지금까지와는 다를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할까. 아무래도 음식이라는 게 입에서 느끼는 맛 못지않게 그곳의 분위기가 주는 맛도 적지 않으니 말이다.


처음부터 평양냉면을 좋아했던 건 아니다. 때는 바야흐로 2015년의 봄. 남편과 함께 나간 나들이에 E가 합류했고, 여의도에서 만나 아직 이른 벚꽃을 구경한 후 냉면과 돼지갈비가 땡긴다는 이유로 봉피양에 갔다. 호기롭게 주문한 평양냉면이 나왔고 셋은 말없이 눈치게임을 하게 되었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았다.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했지만 사정없이 흔들리는 동공이 말해주고 있었으니. 행주 빤 물. 정말 딱 그랬다.


안타깝게도 그 자리에 앉은 셋은 모두 평양냉면과의 첫 만남이었다. 기억을 되짚어가며 '면에 식초를 뿌리랬나?'하고 면을 들어 식초를 뿌려보기도 하고, '겨자를 어떻게 넣으랬지?'하고 겨자도 넣어봤다. 맛을 살리기 위해 뭔가를 더 추가할수록 기대했던 맛은 점점 더 산으로 가고 있었다. 더불어 우리의 흔들리는 동공은 멈출 줄 몰랐고, 결국 어느 순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젓가락을 놓고 말았다. 그래 봤자 냉면인데, 이렇게 진입장벽이 높을 수 있다니. 당혹스러웠다.


이후 한동안 평양냉면의 ㅍ도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 입 밖은커녕 생각조차 하지도 않았다. 그랬다. 분명 그랬었다. 그런데, 그러던 어느 날. 정말 아무런 계기도 없이 평양냉면이 먹고 싶어졌다.


이게 무슨 조화지? 아니야, 아닐 거야. 말도 안 돼. 정신 차려!


먹고 싶은 마음을 부정했고, 그럴수록 이놈의 평양냉면 생각이 머릿속 깊이 박혀 떠나질 않게 되었다.


결국 동네 평양냉면 집을 찾았고, 맛은 걱정했던 것보다 괜찮았다. 아니, 솔직히 맛있었다. 이후 을밀대를 거쳐 우래옥, 을지면옥까지 다녀오게  거다. 어디 그뿐인가. 평소라면 절대 가지 않을 강남 한복판에 진미평양냉면을 일부러 찾아간 것은 물론이거니와, 집안 행사로 갔던 강화도에서는 이미 배가 부른 상태임에도 평양냉면 맛집을 발견하고 언제 또 올 수 있겠나 싶어 들어가 한 그릇 뚝딱 먹고 나오는 지경에 이르렀다. 머릿속을 떠다니는 평양냉면에 대한 생각을 부정하던 시간이 아깝다가도 이제라도 제대로 알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


아직까지  입엔 우래옥이 일등. 육향이 가득한데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담백한 육수가 정말 최고다. 을밀대는 우래옥에 비해 육수가  약한 듯한데 면은  쫄깃하고, 을지면옥은 육수에서 기름기가 느껴졌지만 냉면에 올려진 고기가 정말 맛있었다. 뭐야,  지금, 가게   평가를 하고 있니?  맛을 구분한다는  스스로가 놀랍다.   생각나버렸다. 정확히 지금 우래옥의 평냉이 먹고 싶다.


가끔 남편과 평양냉면을 처음 만났을 때의 그 혼란스러움을 떠올리며 우리 둘 다 지금은 평양냉면을 좋아하게 된 게 정말 다행이라고 이야기한다. 둘 중 누구라도 아직까지 평양냉면을 거부하고 있다면 우리의 먹는 즐거움 중 커다란 하나를 포기했어야 하는 것일 테니.


평양냉면을 극찬한 인사들은 많다.

그 가운데 배순탁 작가가 그랬다지.

'처음이라 그래 며칠 뒤엔 괜찮아져'

물론 며칠보다는 조금 더 긴 시간이 필요했지만 괜찮아지는 정도가 아니라 빠져버렸다.

아니, 더 이상 긴 말은 됐고, 일단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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