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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 Aug 11. 2022

작지만 확실한 행복

샌드위치

언제부터였는지 알 수는 없지만 정확한 건 난 적어도 어릴 적엔 책을 가까이하는 아이가 아니었다는 거다. 사람을 상대하는 일을 하면서 스트레스 해소의 방법으로 술도 많이 마셨지만 못지않게 책도 많이 읽었다. 술과 책이라 어쩐지 간극이 좀 느껴지기는 하지만, 그랬다. 내게 책은 잠시 현실을 벗어나 쉬어가게 만들어주는 그런 의미였다. 


최근에는 침대 머리맡에 책을 두고 잠들기 전 30분씩 책을 읽고 있는데 사방이 고요해서인지 낮시간보다 문장이 더 깊게 파고드는 듯하다. 그렇게 읽었던 문장을 다시 곱씹어 읽고, 마음에 와닿는 문장을 기록하다 보면 시간에 비해 읽는 양은 많지 않지만 낮시간에 읽는 것과는 또 다른 울림을 느낄 수가 있어 그 시간이 제법 행복하다.  마음에 와닿는 문장을 가슴에 품고 책을 덮는 순간 문득, 문득 지난봄의 어느 하루가 떠올랐다.


봄날의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던 일 하나. 가방에 가벼운 책과 커피가 담긴 텀블러를 넣고 산책을 하다 작은 공원 그늘진 벤치에 앉아 책을 읽는 거다. 햇살은 뜨겁지만 바람은 시원한 계절. 이어폰은 챙기지만 굳이 귀에 꽂지는 않는다. 나무 그늘 아래 앉아 책을 읽다 보면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와 다양한 새들의 노래가 그 어떤 곡보다도 설레는 BGM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살랑이는 바람이 불고 나무 그늘이 드리워진 공원 벤치에 앉아 책을 읽고 일어나는 순간은, 카페에서나 내 방에서나 혹은 이동 중인 차 안에서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의 충만함이 있다. 단순히 '기분이 좋다'라는 말로는 부족한 감정이다.


이런 감정을 나의 가장 가까운 친구인 남편과 나누고 싶었다. 그 차오르는 감정을 공유하고 싶었다. 


어느 화창한 주말, 점심으로 샌드위치를 먹고 싶다는 그를 위해 냉동실에서 크루아상을 꺼내 데우고 소스를 만들어 바른 후 로메인과 얇은 햄과 달걀 프라이를 넣어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로메인과 버터 헤드, 토마토와 베란다 텃밭에서 금방 딴 바질을 넣은 샐러드도 함께 준비했다. 그리고 그에게 말을 꺼냈다.


우리, 밖에 나가서 먹자. 나가서 샌드위치 먹고, 커피도 마시고, 책도 읽자. 피크닉처럼!


밖에 나가 산책하다 책을 읽자고 하면 바로 거절할 거라는 걸 알기에 접근 방법을 좀 달리 한 거다. 그리고 예상대로 흔쾌히 좋다는 답을 들었다. 커피를 내려 각자의 텀블러에 담고 아직 봄이지만 햇살이 뜨거우니 더위에 취약한 남편을 위해 작은 선풍기도 꺼냈다. 당시 그가 읽고 있던 불편하기보다는 따뜻한 편의점 이야기도 함께 준비하고 출발. 멀리 가지 않고 아파트 단지 안에 놓여있는 테이블에 앉았다. 자리에 앉아 고개를 살짝 들어 올리면 바로 우리 집이 보이는 곳. 집 앞이지만 정말 어쩐지 나들이를 나온 기분. 가벼운 산책은 빠졌지만 대신 피크닉이 더해졌다.


샌드위치와 샐러드를 맛있게 먹은 남편은 비록 살랑이는 자연바람과 틀어놓은 선풍기 바람 앞에서 가지고 온 책은 펼치지도 못한 채 졸기만 하다 들어왔지만 괜찮다. 졸면서 잠깐씩 눈을 떠 책을 읽고 있는 나를 보고, 곁에 있는 똥강아지들 루피와 보아에게 간식을 주는 그 순간을, 따뜻한 햇살과 살랑이는 바람 아래의 시간을, 그 나름의 방식으로 즐긴 걸 테니.

 

그래, 꼭 같은 모습일 필요는 없다. 

나의 의도를 알아주고, 함께해 주고, 그 안에서 각자 원하는 방법으로 행복한 순간을 만끽하면 되는 거다. 이렇게 작지만 확실한 행복의 순간을 차곡차곡 함께 쌓아가고 있다는 것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행복은 강도보다는 빈도다. 


입추가 지났지만 아직은 많이 더운 날의 연속이다. 그러나 어느덧 뜨거운 이 계절도 절정을 지날 테고 이내 가을을 풀벌레 소리가 가득 울리겠지. 그렇게 다시 산책하기 좋은 계절이 오면 지난 어느 봄날처럼 다시 가벼운 피크닉을 즐기고 싶다.  그날도 가벼운 책 한 권과 심플하지만 맛있는 샌드위치와 커피를 준비해야지. 그렇게 또 하루 행복의 기억을 쌓아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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