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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 Aug 04. 2022

카페인에 약한 카페인

좋아할 수는 있잖아요

잘 자라는 인사를 하고 습관처럼 에어팟을 양쪽 귀에 꽂는다. 코를 고는 남편과 새벽에 일어나 혼자 놀다 잠드는 작은 똥강아지 보아 때문에 시작된, 보다 나은 수면을 위한 선택이다. 유튜브에 접속해 이완명상을 재생한다. 긴 시간은 필요 없다. 20분짜리 영상이 끝나기도 전에, 아마도 채 5분을 넘기기도 전에 난 잠이 드는지도 모르게 잠들어버린다.


그러나 지난밤은 얘기가 좀 달랐다. 이상하게 평소 즐기지 않던 카누를 꺼내 벤티 사이즈 텀블러에 무려 세 봉지를 넣고 오며 가며 종일 마셨다. 심지어 다 마시지도 못해 냉장고에 넣었는데 저녁 운동 후 샤워를 하고 나와 물 대신 커피를 마신 게 화근이었을까.


잠자리에 누운 시간은 대략 11시 40분경. 이완명상에 제격인 요가소년의 목소리가 유난히 생생하게 귀에 꽂혔고, 이 영상에 이런 부분이 있었나 싶은 소리, 그러니까 평소에는 잠이 들어 차마 듣지 못했던 부분이 들렸다. 잠깐 잠들었나 싶으면 남편의 코 고는 소리와 보아의 혼자 노는 소리가 에어팟을 뚫고 들어왔다. 순간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생각. 아, 나는 카페인에 약한 카페인이었지!


10년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동네에서 작은 카페를 약 2년 반 정도 했었다. 회사 다닐 때야 사약같이 쓰디쓴 커피를 여러 잔 달고 살아도 거뜬 없었는데 의식적으로 줄이다 보니 그렇게 된 건지 정작 카페를 할 때는 오후가 되면 커피를 마실 수가 없었다. 오후에 커피를 마신다는 건 심장이 부담스럽게 뛰는 건 물론이거니와 뜬눈으로 지새우게 될 밤을 예약하는 것과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카페인(caffeine)에 약한 카페인(caffe-人)이었던 과거가 떠오르니 더 이상 마음과 달리 잠들지 못하는 몸을 애써 재워야겠다는 생각은 버리고 이불 밖으로 나왔다. 시간을 보니 새벽 4시 48분. 결국 밤을 새우고 말았구나.


뇌과학자 정재승박사님이 언젠가 알쓸신잡에서 했던 '우리 사회가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하루를 보낼 수 없는, 굉장히 피로한 사회'라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직장 생활을 할 때의 나는 커피를 마셔도 밤이 부담스럽지 않을 만큼 피로했던 거고, 이후의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볼 수 있는 걸까. 그렇다면 비록 지금 이 순간은 몹시 괴롭지만 궁극적으로 봤을 때는 반가워해야 하는 일은 아닐까. 그러니 하룻밤 지새웠다고 힘들어하지 말자. 직장을 그만두고 무려 10년이 지나 얻은 깨달음.


이불 밖으로 나와 창밖을 보니 아직 고요하다.

이제부터 나는 뭘 해야 할까.

 하긴. 커피   마시고 모두 잠에서 깨기 전에 노트북 켜고 이렇게 뭐라도 쓰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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