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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 Aug 24. 2022

미련은 바이, 추억은 하이!

아포가토

바쁜 아침을 보내고 16:8 간헐적 단식을 아이스크림으로 마무리했다. 정확하게는 아포가토로. 얼마 전 창고형 대형마트에 갔다가 사 온 바닐라 아이스크림은 아포가토에 최적화된 깊은 바닐라맛이다. 진하고 쌉싸름한 에스프레소와 만나면 달콤함은 오히려 상대적으로 극대화가 되는 듯한 기분이랄까. 한 스푼 떠서 입안에 넣는 순간 반사적으로 으음- 하고 콧소리가 새어 나오고 만다.


버리시는 자전거가 있으면 받고, 달달한 커피로 보답드릴게요.


그 밤. 지역 카페에 올라온 글이 눈에 띄었다. 지역 카페 특성상 주로 육아를 하는 엄마들의 장 인지라 무자녀 주부인 나는 게시글은 물론 댓글 참여도 거의 하지 않고 그저 눈으로만 동네 돌아가는 얘기들을 살피곤 한다. 그러다 유독 눈에 들어온 자전거를 구한다는 글.


내게는 10년도 더 된 자전거가 있다. 결혼한 해에 산 것으로 나름 여러 추억이 깃들어 있지. 그러나 연식이 오래되기도 했고, 1년에 한두 번 탈까 말까 하는 지경에 이르러 언젠가부터는 짐스러워진 게 사실이다. 


어느 초여름 밤 장미가 가득한 올림픽 공원을 달리기도 했고, 어느 한여름 밤 성수대교 아래서 타이어가 펑크나 애를 먹기도 했다. 천호대교에서 여의도까지 왕복으로 다녀오기도 했고, 루피와 생태공원도 여러 번 다녀오고, 보아까지 넷이서 인천 대공원을 달리기도 했다. 타다가 넘어져 다치기도 했지만 참 좋았던 기억이 함께 있는 자전거. 기꺼이 드리겠다고 댓글을 달아놓고는 생각지도 못하게 살아나는 지난 추억에 마음이 잠시 흔들렸다. 옆에서 지켜보던 남편도 정말 자전거를 보내기로 한 거냐, 그럼 우리 이제 자전거는 같이 못 타는 거냐며 놀라기도, 서운하기도 한 반응을 보였다. 너무 성급하게 댓글을 달았던 걸까.


약속시간이 되어 자전거를 끌고 약속 장소인 아파트 정문으로 나가는 중,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함께 나온 루피가 자꾸 자전거에 미련을 보인다. 남편은 괜히 기분 탓이라고 했지만 느끼기엔 마치 자전거에 태워달라는 모습처럼 보여 루피를 안아 잠깐이지만 바구니에 태웠다. '루피야, 이게 마지막이야. 잠시지만 즐겨' 하면서. 그동안 바구니에 올라 함께 달린 적이 여러 번이니 어쩌면 루피는 정말 타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남편의 말처럼 루피의 행동이 그걸 바라는 게 아니었다 해도 난 내 오랜 추억과 이별하러 가는 중이니 그 정도의 감성적인 마음은 가질 수 있는 거잖아?


고등학생 조카가 학원 다닐 때 탈 자전거가 필요하다고 했다. 나 또한 또래의 조카가 있어서인지 내게는 추억이 가득하지만 사실은 오래된 이 자전거가 너무 낡은 건 아닌가 하는 마음에 괜스레 미안해지기도 했다. 뒷바퀴에 바람이 빠졌던데 잘 좀 채워서 드릴 걸. 먼지라도 한 번 더 닦아서 드릴 걸. 하는 후회를 하기도 했고.


빈손으로 오셔서 자전거만 가져가시라는 말에도 굳이 아이스크림을 들고 와 손에 쥐어주신 덕에 자전거를 보낸 다음 날에도 오늘처럼 나름 바쁜 오전을 보내고 아이스크림으로 당 충전을 했었지. 지금도 이따금 지난 추억이 밀물처럼 떠밀려 올 때가 있지만, 이 달콤 쌉싸름한 아포가토를 다 먹을 때쯤이면 이제는 미련이 아닌 소중한 추억으로 남겨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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