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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 Jul 27. 2022

마음이 배달되었습니다

갈비탕

퇴근 후 집에 돌아온 남편은 똥강아지들의 격한 환영을 받으며 그 정신없는 와중에 내게 포장 비닐을 건넸다.


‘마누라 내일 먹으라고.’


갈비탕이었다. 점심으로 갈비탕을 먹었다더니 포장을 해왔구나. 일 때문에 가다 들린 평택의 한 식당에서 갈비탕을 먹었는데 비록 한우는 아니지만 고기가 실했고 국물 맛도 꽤 괜찮았다고 했다. 오랜만에 먹은 갈비탕이어서였을 수도 있겠지만 정말 맛있게 먹었다더니 내 몫의 1인분을 포장해온 거다.


밖에서 맛있는 걸 먹을 땐 언제나 내 생각을 해 주는 사람. 이렇게 포장을 해오기도 하고, 다음에 같이 가자고 말을 해주기도 한다. 물론 다음에 가기로 하고 그러지 못한 경우가 더 많지만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 한 번은 잔뜩 술에 취해 들어와 자켓 안쪽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는데 거기엔 티슈로 잘 싸 온 생밤이 가득했다. 술집에서 안주로 나온 생밤을 보고 밤 좋아하는 마누라가 생각이 났다나. 그래서 바로 티슈에 싸서 품 안에 넣었다는 거다. 그 얘기를 하면서 배시시 웃던 남편의 얼굴이 꽤 오래 지났는데도 바로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반복되는 유산으로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졌을 때 회사에 출근한 남편은 그렇게 내 밥을 챙겼다. '나는 지금 점심 먹으러 가니 마누라도 챙겨 먹어'라던가, '차려 먹기 귀찮으면 밖에 나가서 맛있는 거 사 먹어'라던가, 아니면 그냥 간단하게 '점심 먹었어?'라고 하면서. 마치 내가 밥을 먹었는지 확인하는 게 그의 큰 숙제 같은 느낌이었다.


그때의 나는 하루하루가 너무나 힘들었고 나의 그 고통스러움이 자연스레 남편에게도 전해 졌겠지. 그리고 그때의 그에겐 그렇게 내 밥을 챙기는 것이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이었을 거다. 문득, 괴로움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닌데 왜 돌봄과 위로는 나만 받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이내 미안해졌다.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나 이렇게 밥 먹었어'하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던 게.


내가 먹은 걸 남편에게 보여주려다 보니 대충 먹을 수가 없었다. 그저 냉장고에 있는 반찬을 꺼내 먹는 것일지라도 접시에 옮겨 담고 보기 좋게 차려서 먹기 시작했다. 사실 혼자 먹다 보면 바쁜 일도 없으면서 그릇 째 꺼내 주방에서 선 채 먹기도 하고, 그러다 보면 급하게 먹고, 내가 어제 뭘 먹었는지 생각도 나지 않기 일쑤다. 그런데 사진을 찍으려다 보니 한 번 더 신경을 쓰게 되었고, 그렇게 신경을 쓰다 보니 어쩐지 나에게 대접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 나 스스로를 아끼는 마음이라고 해도 괜찮겠다. 사소한 밥 한 끼지만 나를 아끼는 가장 기본이 아닐까 하는 마음. 출근해서 일하는 사람에게 조금이나마 안심을 주기 위해 시작한 일이 이제는 어느덧 나를 위한 습관이 되었다.


맛있는 걸 먹으며 마누라를 생각해 주는 마음. 혼자서 대충 때우지는 않을까 걱정되는 마음. 어느 쪽이 먼저인지 알 수는 없지만, 어느 쪽이 먼저여도 상관없이 고마운 마음을 고맙게 받아 고맙게 먹는다.


'잘 먹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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