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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 Jul 14. 2022

생각을 바꾸면 마음이 가벼워진다

어묵탕

그날은 내사랑 김여사와 동해 나들이를 가기로 한 날이었다. 가보고 싶은 횟집이 있다고 하셔서 나름 당일 코스를 짰고 시간 약속을 잡으려던 차 갑자기 취소가 되어 아쉽게도 다음으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연휴 중 하루 시간이 나자 남편은 조카가 보고 싶다고 했고, 그렇게 조카가 집으로 놀러 오게 되었다. 조카.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시누이의 큰 딸. 시조카.


조카를 부르는데 흔쾌히 동의했지만 보다 솔직한 내 마음은 굳이 휴일에 조카를 부를 필요가 있을까 싶어 마냥 반갑지만은 않았다. 그리고 그 기저에는 불편한 마음이 깔려 있었다. 아직 중학생 아이라지만 내게는 마냥 편할 수는 없는 시누이의 딸이고 내게는 곧 시댁 식구라는 생각이 우선이었던 것 같다. 그러다 문득, 나의 외숙모가 떠올랐다.


나의 외숙모. 이명숙 여사.

친정의 김장은 매번 외삼촌 댁에서 이루어진다. 외숙모가 재료를 준비해두시면 알아서 배추 속을 채워 각자의 통에 담아 가는 형식이다. 그런데 그게 무려 열 집 가까이의 양이니 말이 쉬워 재료 준비지 배추를 절이고 씻고, 속재료를 준비하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것쯤은 누구나 알 수 있을 테다.


외가는 한 마을에 터를 잡고 내사랑 김여사가 어렸을 때부터 쭉 살고 계시는지라 한 번 가게 되면 동네 어르신들께 인사하느라 정신이 없다. 사실 내가 하는 인사라고 해봤자 '아, 네가 OO이 딸이냐?'라는 말씀에 '네, 맞아요' 라며 인사하는 게 대부분.  언젠가 어릴 적부터 잘 알고 지내던 외삼촌 친구분이 '그래서 넌 애가 몇이니?'라고 물으셨다. 그때는 무자녀의 삶을 살겠다 결심하지 못했을 때라 가볍게 건넨 인사가 비수처럼 다가왔고, 아직 없다며 자리를 피하려던 나를 잡고 말을 이어가려던 그분을 막아주신 건 바로 외숙모였다.


'요즘은 옛날이랑 달라서 일부러 안 갖는 애들이 얼마나 많은데, 사실 애가 뭐 필요 있어. 워낙 둘이 사이가 좋으니 애 없는 게 낫지 뭐. 안 그래요? 우리 때랑은 달라요.'


내게는 늘 외삼촌만큼 따뜻한 분이셨고,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내사랑 김여사에겐 친정엄마 대행이 된 나의 외숙모. 그런 외숙모의 애정을 마음으로 느끼면서 정작 나는 왜 이 아이를 시조카라는 이유만으로 부담스러워하지?라는 생각이 들며 나 스스로가 부끄러워졌다. 참 못난 나.


생각을 바꾸면 세상이 바뀌는 건 둘째치고 일단 마음이 가벼워진다. 삼촌 집에 온 만큼 자유를 주고, 먹고 싶은 것 먹게 하고, 부족한 게 없나 살피고, 조금 더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게 신경을 쓰고,... 그런 일들이 피곤해도 싫지는 않았다. 늦은 저녁으로 뚝배기 우동을 끓여준 후 정말 맛있게 잘 먹었다는 말을 들으니 오히려 기분이 좋고 뿌듯해졌다. 더불어 내가 외숙모께 받은 마음을 이렇게 다시 조카에게 줄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기도 했다.


그랬던 중학생 조카가 어느덧 성인이 되어 얼마 전 집으로 찾아왔었다. 방학이 되었으니 삼촌 집에 놀러 가고 싶다 했고 불편하고 부담스러운 마음은 하나도 없이 환영했다. 요즘 한참 다이어트 중이라고 했지만 내 집에서 살이 빠져서 나가는 건 볼 수 없다며 다양한 메뉴를 준비했다. 셋이 마주 앉아 술잔을 기울이고, 뉴스를 보며 같은 포인트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그러다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웃으며 보드게임을 하고, 다시 또 배를 채우며 보낸 1박 2일.


 . 해장  야식으로 어묵탕이 먹고 싶다는 말에 기꺼이 늦은 시간에 다시 주방에 서서 어묵탕을 끓이꼬꼬맹이가 언제 이렇게 컸나 싶어 마음이 뭉클해졌다. 나의 외숙모 이명숙 여사만큼은 못하더라도 방학이 끝나기 전에 다시 오겠다는 약속이  지켜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티끌 하나 없는 진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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