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레
아침에 눈뜨면서 하는 생각 중 하나가 '오늘 뭐 먹지?'다. 어쩌면 저녁에 누우면서, 아니 저녁밥을 먹으면서부터 다음날 저녁의 메뉴를 생각하기도 한다. 외식을 즐기지 않고, 그렇다고 배달음식도 즐기지 않는 집밥 선호자의 피할 수 없는 숙명 같은 고민이라고나 할까.
그래. 오랜만에 카레를 먹자.
사실 난 카레를 그다지 좋아하진 않는다.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어쩐지 소화가 잘 안 되는 것 같기도 하고. 해서, 먹을 땐 맛있게 먹으면서도 막상 자주 만들지는 않는 메뉴다. 그렇게 카레를 먹겠다는 결정을 하고 넣을만한 재료가 뭐가 있나 생각하다 보니 문득 원이가 떠올랐다.
원이. 사랑하는 나의 조카 원이.
작년 이맘때. 원인을 알 수 없는 통증으로 온갖 검사를 다 받고 힘들어하던 원이. 수많은 검사 끝에도 통증의 원인은 찾아지지 않았고, 결국 학교를 휴학했다. 휴학하고 열흘도 안되어 숟가락도 들지 못했던 팔의 통증은 완전히 사라져 그제야 몸이 아닌 마음이 힘든 거였다는 걸 확인하게 되었다. 아이는 어느 순간 안으로만 계속 움츠려 들고 있었다. 부모가 아닌 고모로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 무작정 손을 내밀었다. 다행히 녀석은 내민 손을 거부감 없이 잘 잡아주었고, 그렇게 작년 여름이 시작되면서부터 겨울이 오기 전까지 그 짧은 몇 달 동안 우리는 서로에게 친구가 되었다.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오늘 뭐 먹지?'를 생각하다 녀석이 카레를 좋아한다는 말에 급하게 카레를 만들었다. 나 못지않게 외식과 배달음식을 선호하지 않는 올케언니라는 걸 알기에 가급적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게 해 주고, 무엇보다 우리 집에서 밥을 먹는 날은 평소 엄마가 해주던 것과는 다르게 만들어 주고 싶었다. 각종 재료를 카레 속에 넣어 함께 끓이는 게 아니라 카레 자체는 최대한 심플하게 끓이고, 위에 여러 가지 토핑을 올려 입에 넣기 전 눈으로 먼저 즐길 수 있게 만들었지. 아니나 다를까 자리에 앉기 전부터 돌고래 소리를 내더니 배부르면 숟가락을 놓는 아이가 눈에 띄게 과식을 했으며, 양손의 엄지를 다 세워 '쌍따봉'을 선사해 줬다. 원이는 지금까지도 가끔 그날의 카레가 먹고 싶다는 얘기를 하곤 한다.
음식을 하는 사람은 차려 준 음식을 잘 먹는 사람을 볼 때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심지어 먹는 동안 열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상대를 만났으니 오죽할까. 내 앞에 그 사람이 없어도 그 메뉴 앞에서 그 사람이 떠오르게 되는 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일 테다. 그리고 그날 이후 내게 카레는 다의어가 되었다. 흔히 알고 있는 음식으로서의 카레와, 조카 원이로.
원이가 요즘 다시 힘들어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느 정도 예상하고 걱정하던 일이지만, 다시 또 휴학을 하지는 않을 테니 부디 잘 이겨내기를. 입안에 카레를 가득 넣고 꼭꼭 씹으며 응원을 보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