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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 Jun 24. 2022

감자는 추앙을 싣고

하지감자

   「OOO고객님 안녕하세요!

     미소로 행복을 전하는 △△택배 입니다.」


카카오톡 메시지 알림이다. 월요일에 주문한 초피 액젓은 오전에 이미 우체국 택배로 도착한 상태였다. 더 올 게 없는데 뭐가 도착한다는 건지 도대체 모르겠어서 그냥 잠이 덜 깬 상태에서 중요하지 않은 무언가를 충동구매했었나 생각하고 있었다. 택배 도착 알림은 잘 확인하지 않는데 혹시 몰라 들어가 보니 보낸 사람이 S다. 


일이 있어 멀리 나왔다가 바쁘게 움직인 탓에 전화를 해야겠다는 생각만 하고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보니 현관 앞에 덩그러니 놓인 택배 상자들이 똥강아지들 보다 먼저 나를 반긴다. 아, 참, S가 택배를 보냈지. 흥분한 똥강아지들을 진정시키고 그제서야 박스를 열어보니 그 안엔 동글동글 참 귀엽게도 생긴 감자가 있었다. 


S는 n년차 텃밭러다.

아파트에 살면서 집 근처 텃밭을 분양받아 각종 쌈채소는 물론이거니와 김장에 필요한 배추와 무, 고추까지 직접 텃밭을 통해 농사를 짓고 있다. 그녀에게 텃밭은 말 그대로 힐링 스페이스. 그녀의 차는 텃밭에 필요한 물품으로 가득 차 있고, 마음이 시끄러울 때에 텃밭에 가면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다고 했던가. 만나서 이야기를 하다가도 텃밭 얘기가 나오면 반사적으로 입꼬리가 올라가는 사람이다. 그런 S가 직접 농사지은 감자를 보내준 거다. 


신나고 고마운 마음에 바로 전화를 걸었다. 내 목소리는 '라'혹은 '시'톤이었을까. 올해는 비가 적게 내려 가문 탓에 기대보다 결과가 좋지 못해 씨알도 작고 그마저도 조금밖에 보내지 못했다며 속상하다는 말도 안 되는 말을 한다. 난 그런 건 모르겠고 일단 너의 그 맘이 너무나 감사해 고맙게 잘 먹겠다,는 말을 거듭 전하고 통화를 마무리했다. 그러고 보니 작년 이맘때에도 S는 내게 감자를 보냈었다. 


S가 보낸 감자는 그냥 감자가 아니다. 아무리 텃밭농사가 잘 되었다 한들 마음이 없으면 굳이 택배까지 보내며 나눌 생각은 하지 못할 테니까. 하물며 올해엔 오히려 흉작에 가깝다고 하지 않았나. S가 보낸 건, 그리고 내가 받은 건 마음이다. 


요즘은 어쩐지 내 사람들로부터 여러 가지로 마음이 담긴 진짜 응원을 받고 있는 것 같다. 덕분에 내 마음은 벅차게 차오르고 있다. 산포에 사는 미정이 말대로 추앙받는 기분이랄까. 내가 조금은 괜찮은 사람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고, 지금보다 조금은 더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들어 주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 


비가 쏟아지기 전 서둘러 산책을 다녀왔다. 산책 내내 내 머릿속은 맛있는 하지감자를 더 맛있게 먹을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깨끗하게 감자를 씻고, 넓은 냄비에 감자와 물을 넣고, 맛을 높여줄 약간의 설탕과 소금을 더해 불 조절을 해가며 최선을 다 해 삶아낸다. 30분쯤 시간이 지나니 입에 올리기만 해도 맛있는 하지감자가 적당히 단짠이 가미되어 포슬포슬한 찐 감자로 변신되어있었다. 


내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냉침 녹차를 곁들여 궂은 날 가장 채광이 좋은 창가에 테이블을 옮기고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S에게 전송하고 맛있게 먹는 것으로 고마운 마음을 담은 화답을 한다. 


자, 이렇게 보내마음을 야무지게 먹었으니 오늘을 씩씩하게 만들어 갈 충분한 힘이 생겼다. 움직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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