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은 Jun 20. 2022

원이를 위한 카레

카레

아침에 눈뜨면서 하는 생각 중 하나가 '오늘 뭐 먹지?'다. 어쩌면 저녁에 누우면서, 아니 저녁밥을 먹으면서부터 다음날 저녁의 메뉴를 생각하기도 한다. 외식을 즐기지 않고, 그렇다고 배달음식도 즐기지 않는 집밥 선호자의 피할 수 없는 숙명 같은 고민이라고나 할까.


그래. 오랜만에 카레를 먹자.

사실 난 카레를 그다지 좋아하진 않는다.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어쩐지 소화가 잘 안 되는 것 같기도 하고. 해서, 먹을 땐 맛있게 먹으면서도 막상 자주 만들지는 않는 메뉴다. 그렇게 카레를 먹겠다는 결정을 하고 넣을만한 재료가 뭐가 있나 생각하다 보니 문득 원이가 떠올랐다.


원이. 사랑하는 나의 조카 원이.

작년 이맘때. 원인을 알 수 없는 통증으로 온갖 검사를 다 받고 힘들어하던 원이. 수많은 검사 끝에도 통증의 원인은 찾아지지 않았고, 결국 학교를 휴학했다. 휴학하고 열흘도 안되어 숟가락도 들지 못했던 팔의 통증은 완전히 사라져 그제야 몸이 아닌 마음이 힘든 거였다는 걸 확인하게 되었다. 아이는 어느 순간 안으로만 계속 움츠려 들고 있었다. 부모가 아닌 고모로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 무작정 손을 내밀었다. 다행히 녀석은 내민 손을 거부감 없이 잘 잡아주었고, 그렇게 작년 여름이 시작되면서부터 겨울이 오기 전까지 그 짧은 몇 달 동안 우리는 서로에게 친구가 되었다.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오늘 뭐 먹지?'를 생각하다 녀석이 카레를 좋아한다는 말에 급하게 카레를 만들었다. 나 못지않게 외식과 배달음식을 선호하지 않는 올케언니라는 걸 알기에 가급적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게 해 주고, 무엇보다 우리 집에서 밥을 먹는 날은 평소 엄마가 해주던 것과는 다르게 만들어 주고 싶었다. 각종 재료를 카레 속에 넣어 함께 끓이는 게 아니라 카레 자체는 최대한 심플하게 끓이고, 위에 여러 가지 토핑을 올려 입에 넣기 전 눈으로 먼저 즐길 수 있게 만들었지. 아니나 다를까 자리에 앉기 전부터 돌고래 소리를 내더니 배부르면 숟가락을 놓는 아이가 눈에 띄게 과식을 했으며, 양손의 엄지를 다 세워 '쌍따봉'을 선사해 줬다. 원이는 지금까지도 가끔 그날의 카레가 먹고 싶다는 얘기를 하곤 한다.


음식을 하는 사람은 차려  음식을  먹는 사람을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심지어 먹는 동안 열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상대를 만났으니 오죽할까.  앞에  사람이 없어도  메뉴 앞에서 그 사람이 떠오르게 되는 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일 테다. 그리고 그날 이후 내게 카레는 다의어가 되었다. 흔히 알고 있는 음식으로서의 카레와, 조카 원이로.


원이가 요즘 다시 힘들어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느 정도 예상하고 걱정하던 일이지만, 다시 또 휴학을 하지는 않을 테니 부디 잘 이겨내기를. 입안에 카레를 가득 넣고 꼭꼭 씹으며 응원을 보내야겠다.



그날의 카레


이전 05화 감자는 추앙을 싣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