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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 Sep 02. 2022

엄마의 김치는 배우고 싶지 않아요

김치

김치 있니?


열무김치가 먹고 싶어요.

이서방이 오이깍두기를 찾네.

요즘 총각김치가 그렇게 먹고 싶드라.


라고 하면 엄마가 웃는다.


나도 나이가 먹었나 봐. 이제는 꾀가 나는지 음식 하기가 싫어.


엄마는 오래전부터 이런 말씀을 하셨다. 아무래도 두 분이 지내시고 심지어 아버지는 언젠가부터 식사량도 많이 줄어 음식을 해도 버리는 양이 많아지다 보니 더 그러시겠지. 그래서 음식은 하되 정말 기본만 하고 이따금 반찬도 전문점을 이용하고 계시지만 단 하나, 김치만큼은 꼭 직접 담그신다. 아들 딸 집에 보낼 것을 하시면서 당신들 드실 양을 추가하신다는 게 맞을 테지만. 직접 담근 김치를 자식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볼 때 느끼는 보람이 크다고 하셨다. 그래서 요리는 흥미를 잃었어도 김치만큼은 손에서 놓고 싶지가 않다고.


결혼 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다.

엄마의 김치가 얼마나 맛있는 김치인지.

내게 엄마의 김치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김치다.

맛 평가라는 건 지극히 개인적인 기준에 의한 거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내게는 엄마의 김치가 가장 맛있다.


언젠가부터 아무리 한식 맛집이라고 해도 김치가 맛없으면 와닿지가 않는다. 식당에 가면 일단 김치의 원산지부터 살피고, 미안하지만 중국산이라면 손도 대지 않고 거른다. 자고로 한식 맛집이라 함은 직접 담근 김치가 맛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한 번은 정말 좋아하는 칼국수 집이었는데 김치가 중국산이라는 걸 확인 한 이후로는 발길을 끊었다. 그동안 너무나 당연히 직접 담근 거라고 생각했던 나의 실수이기도 하지만 칼국수집의 김치가 직접 담근 게 아니라니 어쩐지 뒤통수를 제대로 맞은 기분마저 들었기 때문이다. 아니, 칼국수와 직접 담근 김치는 절댓값에 가까운 공식이지 않은가.


사실 김치처럼 종류도 많고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 또 없다. 내가 친정에 가는 날이면 엄마는 전날 늦게까지, 혹은 새벽 일찍 일어나 김치를 담근다. 전혀 피곤하지 않다고 하시지만 알고 있다. 친정을 나설 때쯤이면 엄마 눈에 졸음이 가득 채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그래서 가끔은 이제 김치는 담그지 마시라고 속에도 없는 말을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내 새끼들 이런 거라도 해줘야지. 힘들지 않아. 난 이게 재밌어.라고 대답하는 분.


이따금 바로 먹을 겉절이를 만들거나 소량의 동치미를 담그기는 해도 아직까지 시판 김치를 사서 먹은 적은 없다. 이게  친정과 시가, 양가의 엄마들이 애써 주고 계신 덕이라는   알고 있다. 그러나 엄마도 점점 늙어가고, 어쩔  없이 조금씩 맛이 달라질 테고, 그러다 나중에 언젠가는  이상 엄마의 김치를 먹을  없는 날이  거다. 그런 날을 생각하면 어서 엄마의 김치 비법을 배워야겠지만 어쩐지 엄마의 김치는 지금처럼 엄마가 계속 해주시면 좋겠고, 그렇게 계속 엄마의 김치 비법을 배우고 싶지가 않다.


지금 김치냉장고에는 엊그제 가져온 엄마의 오이깍두기가 이쁘고 맛있게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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