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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 Sep 21. 2022

스물한 살의 어린 엄마에게

미역국

적당히 물에 불려 몸집을 몇 배는 키운 미역과 국거리 양지를 크게 한 덩이 준비한다. 냄비에 조선간장과 참기름을 적당히 넣은 후 뒤적뒤적하다 뚜껑을 덮고 뚜껑 사이로 김이 폴폴폴 올라오면 뚜껑을 열어 두어 번 더 뒤적뒤적하고 고기의 겉이 익은 듯 색이 변하면 물을 붓고 불을 키운다. 파르륵 기분 좋게 끓어오르면 불을 한껏 줄이고 뚜껑을 닫고는 다시 40분쯤 푹 끓인 후 불을 끄고 고기를 꺼내 한 김 식히고 결대로 찢은 다음 다시 냄비 안으로 넣어준다.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있게 미역국을 들통으로 끓여주면 좋겠다는 남편의 주문이 있었다. 그동안 여러 번 얘기했는데 같은 메뉴를 연이어 먹는 걸 내가 즐기지 않다 보니 못 들은 체하다 어쩐지 이번엔 끓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전 시누이가 첫 조카를 낳고 집에 와서 몸조리를 할 때 산모보다 미역국을 더 많이 먹었다는 얘기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그만큼 미역국을 좋아하는 사람인데 그게 뭐 어려운 거라고 그걸 안 해줬었나.


남편의 주문으로 미역국을 끓이고 고기를 찢다가 김여사가 생각났다. 어쩌면 미역국을 들통으로 끓이겠다고 마음먹은 순간부터였나 보다. 평소라면 절단되어있는 호주산 국거리를 샀을 텐데 이번엔 나도 모르게 양지를 커다란 덩어리로 샀으니. 그것도 등급 좋은 한우로 말이지.


김여사. 내 엄마.

열일곱 어린 나이에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찢어지게 가난한 집으로 시집와 열여덟에 아들을 낳고 스물 하나에 딸을 낳은 나의 김여사.


아들을 낳고는 석 달 가까이 친정에서 지내며 미역국에 쌀밥도 넉넉하게 먹었지만, 딸을 낳고는 모든 게 힘들었다. 시어머니에게 맡겨 놓은 아들이 걱정되어 출산 후 일주일 만에 시가로 돌아왔고 몇 달 전 출산을 한 손아래 동서가 사다 준 미역으로 국을 끓였지. 시부모와 손윗동서가 함께 살고 있었으나 누구도 아이의 기저귀를 빨아주거나 살림을 하지 않았으며, 효자 남편마저 부모에게만큼 어린 아내에게 다정하지 못했다.


11월 말. 겨울의 문턱에서 태어난 딸의 기저귀를 직접 빨아야 했지만 뜨거운 물은 엄두도 낼 수가 없었다. 마당에 우물이 있었지만 물의 양이 너무 적었고 그마저도 철분이 많았는지(혹은 알 수 없는 녹 때문인지) 너무 붉어서 먹기가 어려웠다. 고개를 넘어 물을 길어 와야 하는 상황에서 식수도 아닌 빨랫물이라니. 언감생심 꿈도 못 꿀 노릇이었다. 얼어붙은 도랑을 깨고 속 장갑도 없이 얇은 고무장갑에 의지해 찬 물에 기저귀를 빨았다. 그 와중에 제대로 먹지 못해서인지 젖이 잘 돌지 않았고, 배가 고파 우는 아이에게 젖은 줘야 하니 맹물에 미역만 넣고 국을 끓여서 먹고 또 먹었다. 그마저도 어느 순간 미역 살 돈이 없어 맹물에 끓인 미역국도 먹지 못하였다. 갓난쟁이 딸아이는 배가 고파 젖을 물고 온 힘을 다 해 빨아대지만 그 배를 다 채워 줄 수가 없었다. 무의식 중에 나타나는 집착이었을까. 딸아이는 그녀의 젖을 놓지 않았고, 악착같이 세 살까지 물고 살았다고 했다.


나는 알지 못하는 파란만장 김여사의 이야기는 그동안 익히 들어와서 마치 직접 본 것처럼 생생하게 다가오는데 그중 얼어붙은 도랑을 깨고 빨래를 한 것과 맹물에 끓인 미역국은 손에 꼽는 일화이다. 그것은 아마도 김여사 스스로가 말하는 인생 최대의 고난기인 아들이 돌이었을 때부터 딸이 7개월이 될 때까지를 장식했던 일이어서였을 테지. 그래서인지 언젠가부터 미역국을 끓일 때마다 그 얘기가 떠오르곤 한다. 나는 기억도 나지 않는 스물한 살의 어린 엄마가 눈앞에 보이는 것만 같다.


엄마를 생각하며 들통 가득 끓인 미역국을 보고 남편이 웃는다. 아침밥은 먹지 않고 빈속으로 출근하는 사람이 굳이 국을 데워 국만 한 그릇 후루룩 먹고 출근하기도 하고, 술 마신 다음 날 속이 허하다며 한 그릇 뚝딱 비우기도 한다. 그렇게 잘 먹는 남편을 보니 어쩐지 고기가 듬뿍 들어간 미역국 한 그릇을 그 시절의 엄마에게 대접해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은 이렇게 대수롭지 않게 먹을  있는  돈이 없어 먹지 못하던  시절의 김여사, 엄마, 영란에게. 스물한   같은 나이의 어린 엄마 젖을 세차게도 빨아 댄, 이미 그때의 엄마보다 곱절 이상으로  나이가 들어버린 딸이 바치는  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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