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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사 May 13. 2020

참치와 식민사관

나의 첫 참치집은 26세 6월 영등포구청역 근처에서다. 룸으로 된 참치집에서 주방장이 돌아다니며 참치 눈알 술도 주고 부위 설명도 해준다. 좌식 참치집에서 폭탄주라니! 국회의원들이나 이렇게 먹는 거 아닌가. 나 좀 성공했나봐. 스물여섯의 사회 초년생에게 룸에서 먹는 참치는 캐비어를 올린 푸아그라만큼 고급지게 느껴졌다.


"ㅇㅇ씨 오늘 이 자리에서 잘 보여놔. 그래야 회사 생활 편해."


당시 사수가 그 자리에 동석했다. 모임의 주최는 외주 카메라맨. 내가 일했던 일본계 언론사에서 촬영 아웃소싱을 하는 곳이었다.


요점은 이 카메라맨이 우리 회사와 가장 오래 일을 해왔고 지국장이나 다른 특파원들이 모두 신뢰하니 잘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알코올쓰레기인 나에게 계속 술을 권한다. 남기면 남긴다고 재미없다고 한다. '난 회 먹느라 재밌는데? 아저씨가 더 재미없어요.' 왜 그땐 이렇게 말을 못 했을까. 술은 못 마시지만 잘 보여야 한다는 생각에 무슨 말을 하든 웃음으로 화답했다.


"너무 안 마시는 거 아냐? 진짜 사회생활 못하네."


이 말을 듣고서야 웃음을 멈췄다. 아니, 울음을 터뜨렸다. 죄송하다고. 나도 술 마시고 놀고 싶은데 몸이 안 따라준다고. 진짜 들어오고 싶던 회사라 그래도 잘해보고 싶다고. 선배랑 잘 지내고 싶다고.


여자의 눈물에 이길 남자 누가 있으랴! 그의 눈빛에서 측은지심이 느껴진다.


한 달 후. 인사권을 가진 일본인 기자가 따로 불러 이렇게 말한다. '너만큼 우리 회사의 문화와 니즈를 이해하는 사람은 없다고 확신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너랑 일하기 싫어한다.' 나가라는 얘기였다. 당시 나는 3개월 수습 후 정규직 전환 조건이었고 4대 보험 등도 모두 가입된 상태였다. 일부 직원들은 부당해고 아니냐고 되레 화를 냈다. 아무 인사도 위로도 없던 사람은 그 카메라맨과 사수. 나에게 보낸 눈빛은 측은지심이 아니라 경멸이었나 보다.


그 후로도 계속 같은 업계에서 일하며 소식을 종종 들을 수 있었다. 신입 누가 들어와도 카메라맨과의 술자리는 통과 의례였다. 거기서 잘 비비면 정규직 전환, 그렇지 못한 신입은 아웃이었다.


일련의 사건을 알고 있는 한 일본인 기자와 훗날 일본에서 따로 만나 술 한잔할 기회가 생겼다. 우파이지만 우파이지 않으려고 하는 기자였는데 이따금씩 식민사관이 튀어나온다.


"그때 일 생각하면 한국인들은 정말 분쟁을 좋아하고 파벌을 짓는 거 같지 않아? 같은 한국인들끼리 그때 그럴 필요가 있었어? 사실 역사로 따지면 우리가 적일 텐데 왜 너네끼리 싸우는 거야. 서로 험담하고."


그 사건을 '당파성론'으로 접근해서 지적하다니. 진정 뼈우파인가. 다짜고짜 '조센징들은 항상 분열하고 서로 싸운다'라고 했다면 나도 발끈하며 '너네도 자민당 민주당 맨날 싸우잖아. 막부 시대는 그럼 뭐야?'라고 했겠지만. 딱 그 사건을 두고 '너네끼리 분열하네'라고 하니 '확대 적용하지 마세요'라는 말 정도밖에 할 수 없었다.


확대 적용하지 말라고는 했지만 정작 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한 건 나였다.


세상 어딜 가도 파벌 싸움은 꼭 있다. 새로 일하게 된 회사에서도 사내 정치와 라인 타기는 너무나 일상적이다. 입사 3년 차쯤인가, 한 선배가 술에 취해서는 'ㅇㅇ아, 라인을 설 거면 딱 한 곳 잡고 서. 그렇게 왔다 갔다 하면 이도 저도 안 된다'라고 하더라. 당시 팀장이 바뀌어서 새 팀장에게 충성을 다하는 내 모습을 보고는 한 말이었다. 그게 아니라 난 그냥 상사면 깍듯이 대하는 건데.


그게 꼭 나만의 일은 아니다. 다른 회사에 다니는 친구는 '본부장주(酒)'라는 걸 조제한다고 한다. 본부장 주재 회식 때 꼭 '본부장님 제가 본부장주 한잔 말아 올리겠습니다'라며 소주와 맥주를 황금 비율로 탄다. 그 비율은 친구인 우리들에게도 여전히 기밀이다. 취해서 사실 비율이란 게 있을까 싶지만. 아무튼 여기에 그는 회식마다 편의점에서 1포로 나오는 홍삼정을 사서 섞어 올린다고 한다. 홍소맥이다. 어떤 본부장이 이걸 보고 '아첨하지 마, 이 가벼운 자식아'라고 하겠는가. 그래서 그 친구의 운명은? 본부장이 회사 전략 부서로 발령받자 따라갔다.


외국계라고 다르지도 않다. 유럽계 회사 영업팀에서 일하는 지인은 회사 생활을 하며 모든 종류의 병법을 봤다고 한다. 먼저 고육계(苦肉計). 스스로의 영업 실적을 깎고 상사의 공으로 돌려 마음을 얻는다. 성동격서(聲東擊西). 고객이 자사 제품에 클레임을 넣고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고 보고하고는 고객과 짜고서는 자기 팀 이름으로 재계약한 것처럼 보이게 한다. 재계약 인센티브를 노린 것. 이 사실을 알고 있는 팀장은 당연히 눈을 감아준다. 인센티브를 다시 받을 수 있는데 왜 굳이 말리겠는가. 미인계는 당연지사.


사실 파벌 짓기가 어디 우리 사회만의 문제겠는가. 끼리끼리 어울리고 싸우는 건 인류 역사에서 반복돼 온 일이다. 그럼에도 유달리 직장 내에 라인 만들기가 부끄럽고 거부감이 드는 건 그때 그 일본인 기자가 지적한 당파성론이 자꾸 생각 나서다. 식민사관은 잘못됐다고 부정하려고 해도 그가 목격한 그 사건은 너무나 자명하게 직장 내 파벌 싸움, 라인 만들기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희망적인 건 시대가 바뀌고 회사의 세대 교체가 일어나면서 개인주의적인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요즘 세대 중에 어느 누가 평생 직장을 기대하는가. 평생 다닐 곳이 아니니 인간 관계에도 다소 의연해질 수 있게 된다. 시대의 변화로 끼리끼리 문화가 없어질 거라고 기대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내 라인 아니면 다 망해라' 이런 악습은 근절되지 않을까. 아직도 그런 족속이 있다면 참치회처럼 떠내버려야 한다.


라인 만들기는 한 민족을 멸시하는 이론으로 둔갑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하지 못한 행동이다. 자기 힘으로 자생할 수 없다는 방증일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실력 대단한 그 친구'가 어디 사람에 연연하던가? 돈 많이 주는 곳으로 여기저기 옮겨 다니면 옮겨 다녔지. '나는 그런 비범한 사람은 아니야.' 그렇다면 이 말을 마음에 새기면 편하다. '회사 내 인간관계 스트레스도 월급에 포함되어 있는 비용이다. 회사 생활이 즐겁고 편하면 네가 회사에 월급을 줘야지 않겠어?' 그래서 우리는 회사에서 돈을 받고 다니나 보다. 나 역시 평생 월급쟁이로 즐겁게 살아야 할 운명인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회사에서 감사패 받고 퇴직하는 날까지 충성 충성.



Photo by Michael Wave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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