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사 Apr 03. 2020

당신의 탈코, 탈롤을 기원합니다

결혼 몇달 전, 옷장 문을 활짝 열어봤다. 한 벌에 수십만원씩 주고 산 우아한 원피스, 하늘하늘한 카디건, 등이 훤히 보이는 롬퍼 등을 하나하나 꺼내기 시작했다. 


신혼집으로 이사를 가기에 앞서 버릴 옷을 정리하는 중이었다. 옷을 집어들 때마다 여기에 얽힌 소소한 사연들이 떠올랐다. '옷 하나에 추억과 옷 하나에 사랑과 옷 하나에 쓸쓸함과 옷 하나에 동경과...' 마지막으로 보드라운 실크 점퍼수트를 집어 들자 그가 애처롭게 속삭였다. '제발 날 버리지마. 우리 한 때 좋았잖아.' 


버린 옷들은 하나같이 남들 보기에 예쁘고 비싸 보이는 옷들이었다. 이 옷들 덕분에 직장 생활도 더 편했다. 옷차림을 보고는 사람들이 함부로 대하지 않았으니까. 미우미우 코트를 입고 갔을 때 직장 여자 선배의 한 마디가 아직도 기억난다. '우리 후배 이제 좀 사람답게 입고 다니네~ 요즘 일도 잘하고 옷도 잘입네!' 나는 몇 백만원을 주고 일도 잘하고 센스 있는 사람이라는 칭찬을 샀다. 


결혼과 함께 그런 이미지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아졌다. 옷차림보다는 내 본질을 봐주는 사람을 만나서 가능했던 일이기도 하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탈코르셋을 하고 있던 것일지도 모른다.


탈코르셋. 이 말만 나오면 요즘 남자들은 경기를 일으킨다. 입에 꺼내는 순간 '아 너도 페미니스트니?'라고 세모난 눈으로 쳐다보며 조소를 날린다. 이면에는 피로감마저도 스며있다. '탈코르셋=숏컷, 노메이크업, 노브라'라는 또 다른 획일적인 이미지가 생겨버려서 그렇다.


원래 탈코르셋은 남의 시선에 휘둘려서 자신을 꾸미는 노동을 중단하자는 운동이다. '아름다운 여성상'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색을 찾자는 취지다. 코르셋의 모습으로는 긴 생머리와 원피스, 네일아트, 명품 가방 등을 들 수 있다. 이런 까다로운 이미지 때문에 패션뷰티 산업에 쏟아 부은 돈이 대체 얼마인가.


타인을 위한 이미지는 사실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에게도 피로감을 주는 요인이다. 특정 업계에서는 남성 직원들에도 말쑥하고 잘 정돈된 겉모습을 요구한다. 빼입은 정장에 소품 하나는 꼭 페라가모나 루이비통. 헤어 스타일은 포마드로 정갈하게 넘겨 줘야 한다. 소위 잘 나가는 남자들의 전형이다. 


여기에 남자들의 경우 명품 시계와 자동차로 성공의 이미지를 완성한다. 무슨 시계를 차고 있는지, 어떤 차를 타는지로 서로의 성공 수준을 평가한다. 자기 기준에 맞지 않는 차림을 한 사람은 '급이 맞지 않음'으로 분류해둔다. 친한 사이에는 서로의 아이템에 대해 조언을 해준다. 네 나이, 직급쯤 되면 이 정도는 사줘야 하는 거라고.


IT 스타트업에서 일했던 A는 정장은 몇 벌 갖추고 있지도 않았다. 3년쯤 일했을까. 그간의 경력을 살려 한 중견 기업으로 이직하게 됐다. 다행히 이직한 회사도 비즈니스 캐주얼을 요구하길래 있는 옷으로 편하게 다닐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입사 후 2개월간은 줄곧 플리마켓에서 산 에스파듀만 신고 다녔다. 중고등학교 때 신던 실내화 비슷하게 생긴 신발이다. 에스파듀를 신고 하청업체 미팅도 나가고 부장한테 보고도 했다. 회식도 갔고 심지어 워크숍도 다녀왔다. 신발이 없어서가 아니다. A는 그냥 그런 사람이었다. 뭐 하나에 꽂히면 계속 그거만 고집하는 그런 사람 주변에 하나씩 있지 않은가.


어느날 A의 사수가 운을 뗐다. 그 신발 참 좋아하는구나. 누군가 알아봐줬다는 생각에 신나서 신발에 얽힌 추억을 떠들었다. 말하는 중간 사수가 딱 잘라 얘기한다. "아니 그런 신발 신고 안쪽팔려?"


갑작스러운 지적의 요지는 이거였다. 우리가 뭐 학생도 아니고 신생 회사도 아닌데. 너도 계속 사람 만나는 업무 하는데 신발 정도는 갖춰 신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부장님도 넌지시 네 옷차림 갖고 나한테 뭐라고 한다고.


'그런 너는 얼마나 잘 갖춰 입니.' 마음의 소리가 목구멍에서 자꾸 일탈을 시도한다. 짜증을 가라앉히고 그의 옷차림을 뜯어봤다. 신발은 루이비통 스니커즈, 청바지는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인터넷 쇼핑은 아니다. 셔츠는 대체로 톰브라운 아니면 꼼데가르송. 좀 식상하긴 하지만 그래도 돈 좀 번다는 대기업 직원의 일반적인 모습 아닌가. 오늘 입은 옷 가격만 해도 100만원은 훌쩍 넘겠네. 


부장이란 사람도 다를 바 없다. 누가 봐도 알만한 명품 로고가 박힌 허리띠를 위세 당당하게 차고 다닌다. 그게 그의 챔피언 벨트다. 자동차며 넥타이며 하나같이 누가 봐도 알기 쉽다. 그냥 알기 쉬운 사람이다. 구두, 벨트는 특정 브랜드에서 사야 하고, '남자가 40대 중 후반쯤 되면 벤츠 E클래스나 아우디 A6 정도는 끌어줘야 하지 않냐'라고 말하는 형들 중 하나다.


우리는 사회 속에서 자신의 진짜 취향과 자아는 조이고, 다수가 요구하는 이미지를 추구한다. 여성들은 아름다움, 남성들은 성공이란 이미지다. 직장이라는 밀집된 사회 속에서 정형화된 이미지는 강화되고 재생산된다. '우리 사회에 속하려면 이 정도는'이라는 친절한 조언을 듣기도 하면서 말이다. 조언을 수용하면 나도 그들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동시에 나의 ‘진짜 나’는 이면에 잠시 감춰둬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사실 남자들도 탈코르셋을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아 코르셋은 차지 못하니 탈롤렉스 정도로 불러야 할까. 우리 사회 많은 여성과 남성의 탈코, 탈롤을 기원한다.



Photo by Justin Chrn on Unsplash

이전 04화 참치와 식민사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