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사 Jul 22. 2020

남정네 팬티 차림 별로 안 보고 싶어요

꽤나 보수적인 아버지 덕에 나는 남동생을 두고도 '남정네 팬티 차림'을 보고 자라지 않았다. 우리 집에서 남자 가족 구성원들은 샤워 후 물기까지 다 말리고 속옷은 물론 겉옷까지 갖춰 입은 뒤 욕실에서 나왔다. 여름 더운 날 하얀 러닝셔츠 바람으로 앉아 있는 아버지? 그런 모습은 집에서 상상할 수도 없다. 반바지 조차 입지 않는 분이다. 남동생의 반라 역시 그가 10세 이후엔 거의 본 기억이 없다.



정작 가족의 팬티 차림은 본 적도 없는데 대체 왜 그리 외간 남자들은 팬티 노출을 좋아한단 말인가. 첫 경험(?)은 중학교 1학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 반에는 전교생이 다 아는 남학생이 하나 있었다. 하도 하는 짓이 얼치기 같아서 모두의 놀림거리였다. 여학생들은 그와 말을 섞는 것만으로도 '야 너 ㅇㅇ(그 남학생 이름)이랑 사귀냐?'라고 놀림받았고 그 놀림은 대체로 한두 달은 지속됐다.


어느 날 우리 반의 한 일찐 멤버가 나를 포함한 여러 여학생들이 있는 무리로 다가온다. 본인 이번에 '카메라폰' 하나 장만했다고, ㅇㅇ이 사진 보고 싶지 않냐고. 당시는 이제 막 흑백 휴대폰에서 카메라폰으로 넘어가던 시기였기 때문에 여학생들 모두 신기해했다. 신기했던 대상은 빨간 눈이 달린 카메라폰이었지 ㅇㅇ의 사진은 아니었다. 여학생들은 '와 나도 카메라로 사진 찍어볼래!'라며 달려들었다. 나 빼고.


달려들었던 여학생들은 갑자기 핸드폰을 바닥에 던진다. '꺄 이게 뭐야!!'


휴대폰 배경화면에는 남정네 팬티가 떡 하니 박혀있었다고 한다. 직접 보지 않아서 자세한 묘사는 불가능하지만 그냥 팬티 사진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여학생들이 최신식 카메라폰을 던졌는데도 그 일찐님은 숨이 넘어가게 웃는다. '야 너네 다른 사진도 볼래?'


그 무리의 여학생들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일찐은 카메라폰을 들고 앉아 있던 여학생들 얼굴에 사진을 불쑥 내밀었다. 그가 보여준 사진은 앞서 팬티 사진보다 더한 것. ㅇㅇ이의 생식기였다고 한다.


어떤 여학생들은 울었고 나 같은 방관자는 친한 친구들 무리에 숨어서 연신 욕을 해댔다. 남학생들은 재밌다며 포복절도한다. 우는 여학생이 나오자 '쟤 운다'며 또 웃는다. ㅇㅇ은 피해자 아니냐고? 그 역시 웃고 있다. 자기 몸이 더럽냐고 어디 가서 못 보는 거라고 한번 봐보라고 한다.


선생은 뭐하라고 있나. 이럴 때 가르치라고 있지. 당시 담임은 27세 총각 남자 선생님이었다. 반장은 똑 부러지는 여학생이었는데 종례시간에 용기를 내서 담임한테 말했다. 아침마다 휴대폰 걷어서 사물함에 보관하는데도 이런 일이 발생한다고, 확실히 해달라고. 일찐은 '저 xx'이라며 눈을 부라리고 있고 여학생들은 진정 어린 고마움을 얼굴로 드러내고 있었다.


진지하게 듣던 담임은 'ㅇㅇ의 거기 사진'이라는 말에 피식하고 만다. 반장한테 되묻는다.


'그니까 거기 사진을 찍었다고?'

'네.'

'반장 너 봤어?'

'아뇨 전 안 봤는데요.'

'아 ㅇㅇ 골 때리네. 남자애들이 원래 좀 짓궂어. ㅇㅇ. 앞으로 찍어서 너네끼리만 봐라. 돌리지 말고.'



그 사건은 그렇게 일단락됐다. ㅇㅇ과 일찐은 계속해서 그런 류의 사진을 찍었고 이따금 앞자리에 앉은 여학생들 치마 속으로 몰카를 찍기도 했다. 그때마다 담임을 비롯해 학교 측에서는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고 '남자애들이 장난이 심해서'라는 말로 상황을 마무리시켰다. 조금 심했을 때 '하지 마라' 정도였달까. 이게 20년 전의 일이다.


그게 끝일 리 없다. 전혀. 직장 생활을 하면서는 업무상 술자리에서까지 자기 물건과 부부 생활을 자랑하는 남성들이 수두룩하다. 참고로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최소 수도권 4년제, 대단한 사람이라면 아이비리그에서 석박사까지 한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 중에 어떤 이는 '여의도 대물회'에 속해있다고 공표하는 사람도 있었다. 믿기지 않는다면 당신도 직장 생활 중에 상사 또는 남자 동료가 한번 고주망태가 될 때까지 마시게 놔둬보라. 코로나 때문에 이 또한 쉽지 않겠지만.


그 동창생들은 지금 30대 중반이 됐고 선생은 아마도 50대 초반쯤 됐을 거다. 그때 그렇게 지도받고 자랐으니 지금은 지하철에서, 여자 화장실에서 찍은 몰카를 보며 '원래 야동이 다 그런 거지'라며 아무렇지 않게 다른 여성의 존엄성을 짓밟고 있지는 않나 (그 여성들이) 걱정도 된다. 자신의 팬티 사진, 생식기 사진을 찍으며 채팅으로 만난 10대 여학생들한테 보내고 있지는 않은지 모르겠다.


우리 담임이 젠더 감수성이 떨어지는 남자였을 수도 있고, 우리 학교가 교양이 없는 선생들만 있던 것일 수도 있다. 그렇게 받아들이고 싶은데 사회 전반을 보면 그 선생이, 그 학교 분위기가 예외적이진 않은듯하다.



얼마 전 자살한 서울시장이 꼭 그렇다. 고인께 죄송하지만 중학교 때부터 제대로 교육을 받지 않았나 싶었다. 표면적으로는 여성 인권을 존중하고 미투를 지지한다고 했던 분인데 말이다. 그가 비서한테 했다고 알려진 일들이 꼭 나의 중학생 때 기억과 별반 다르지 않다. 속옷 차림 사진을 메신저로 보내는 건 20년 전 그때 그 교실에서 일어난 일과 대체 뭐가 다른가. 여성으로 분류되는 우리는 그간 살아오며 얼마나 원치 않는 성추행, 성희롱에 노출됐나. 그걸 '남자들이 하는 장난이지'라고 넘기며 말이다.


하하하. 장난도 심하셨어 정말.


젠더 감수성 교육이 너무나 시급한 때다. N번방이든 뭐든 일련의 사태가 교육의 부재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생각해보면 언제 우리가 '몰카 찍지 마세요' '성을 존중하세요'라는 교육을 받았나. 초등학교 때 무수히 당한 아이스케키는 늘 '남자들 장난'이라며 어물쩡 넘어가지 않았나. 이번 일을 계기로 제발 초등학교 혹은 그 이전부터 '남자들 장난'에 대한 교육이 확실해지길.



Photo by Anthony Tran on Unsplash

이전 06화 조직을 '죽이는' 건배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