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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사 Dec 19. 2019

신입사원이 휴가를 간다고?

오전 11시 한창 업무에 집중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대학교 절친에게 카카오톡이 왔다.



"야 내 후배 미쳤나 봐"


이 대학 동기는 외국계에서 마케팅을 하는 친구다. 빡센 언니들만 버티고 성공할 수 있는 곳이다. 엄청나게 화려한 외모와 언변, 매너가 장착된 사람들이다. 그런 그녀 손가락에서 '미쳤나 봐'가 튀어나왔다. 대체 무슨 일이길래.


아직 카카오톡을 열어보진 않았지만 그녀의 메시지는 연달아 오고 있다. 굳이 채팅창을 열어볼 필요도 없이 미리보기로 그녀의 울화통을 관조한다. 메시지를 쭉 이어서 보면 이렇다.


"아니 걔가 갑자기 다음 달에 5일 연차를 쓴다는 거야. 근데 우리 업계가 다음 달이 진짜 바쁠 때거든? 그래서 나도 6년 동안 단 한 번도 그때 쉬어본 적이 없어. 그냥 연말까지 기다렸다 몰아 쓰고 그러지. 여름에 5일, 겨울에 5일 이게 정석이잖아. 근데 이것이 생각 없이 다음 달에 당장 쓰겠다는 거야. 그것도 일주일간. 그럼 그 일을 누가 해? 걔 사수가 하겠지. 그게 나야. 아 진짜 미쳐버려. 나랑 상의도 없이 진짜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그녀가 속사포처럼 보내는 메시지에 내 숨마저 가빠지는 느낌이다. 여하튼 알람이 멈추고 나서 3분 정도 호흡을 돌린 뒤 채팅창을 열었다.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 일단 걔는 미쳤다고 동조해줘야겠지. 동조와 공감은 여자 친구들 사이의 신사협정 같은 거다. 동조 없는 대화는 여자들끼리 있을 수 없다. 비난은 곧 전쟁의 시작이다.


"걔 진짜 미쳤다. 몇 살이야?"


공감과 함께 얘기를 돌려 본다. 몇 살이냐고.


"30살. 딱 90년생이야. 진짜 90년생 지긋지긋하다. 진짜 사고가 달라 그냥."


90년생이 온다는 책 이후로 이들 세대는 뭔가 공공의 적이자 신인류처럼 취급당하게 됐다. 이미 그녀는 90년생이라는 이유로 이해할 수 없는 존재가 된 거 같다. 친구의 얘기를 듣고 있는 나도 더욱더 대처가 쉬워졌다. 그저 90년대생이 얼마나 우리와 다른지만 계속해서 비난하면 되는 거다.


그렇게 1시간 정도 그녀의 후배가 얼마나 개념 없고 사회생활을 못하는 친구인지 떠들고 있었다. 더불어 우리 회사의 신입사원들, 90년대생들은 얼마나 유별난지도 함께 말이다. 사실 90년대생이라고 해서 다 이상한 것도 아니고 다 자유분방하거나 솔직한 것도 아닌데 이미 시대가 그들을 라벨링 해버렸다. 그러던 중 친구가 불쑥 묻는다.


"야 넌 근데 신입 때 휴가 썼어?"


하나도 안 썼다. 정말 단 하루도 쓰지 않아서 선배들이 '너 그러다 후회한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근데 내 대답이 더 가관이었다.


"괜찮습니다. 저 휴가 써도 할 일이 없거든요. 그냥 일하는 게 좋습니다."


아 미쳐도 진짜 이런 미친 사람이 다 있나. 돌이켜 생각하면 뼛속부터 참꼰대요 꼰대의 바이블이다. 오죽하면 내 별명이 꼰망주일까. 꼰대 유망주의 줄임말이다.


이 얘기를 해주니 친구는 더 뒷목을 잡는다. 너는 역시 사회생활의 정석이라고. 이 계집애 어떻게 잡으면 좋겠냐고.


잡아봤자 사람이 바뀌나. 그냥 다녀오라고 하고 네가 걔보다 5년 이상 선배인데 일로 혼쭐 내라. 그 이상의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내 얘기를 하다 보니 내 안의 라떼충이 회심에 찬 미소를 짓는다. 라떼충은 꼰대들이 잘 쓰는 "나 때는 말이야"를 "라떼는~"으로 바꿔 비난하는 말이다. 그러고 보면 나 때는 신입사원이 휴가를 가는 건 참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었는데.


입사하고 첫 해에는 아마 생일 휴가 하루 쓴 게 전부일 것이다. 선배들이 휴가를 가라고 종용해도 '정말 할 일이 없다'는 이유로 안 갔다. 후배가 없어서 다행이었다. 나쁜 선례를 남길 뻔했으니.


한 해가 지나서도 마찬가지였다. 휴가를 내고 딱히 하고 싶은 일도 없었고 결국 11월 말까지 휴가라고는 3일 정도 써본 게 전부였다. 그래도 회사에 조금 적응한 건지 겨울에 동남아시아 한번 가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3일 휴가를 내서 홍콩에 갔다. 회사 노트북도 들고서는 말이다.


더 가관인 건 휴가에 가서도 업무를 하고 귀국일 오전엔 메신저로 업무를 처리했다. '형식이 이게 뭐냐'는 부장 질책에 '죄송합니다. 그런데 10분 후에 귀국 비행기가 이륙해서 수정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라는 메시지를 남기고는 부득이하게 휴대폰을 껐다. '나 때는 말이야' 그런 게 일반적인 때였다.


직장 생활 좀 했다고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공통으로 나오는 불만이 있다. 해가 지날수록 새로 들어온 직원들이 휴가를 권리인 줄 안다는 것이다. 후배들이 한해 한해 들어오고 점점 휴가를 쓰는 것도 자유로운 분위기가 되어간다. 작년 신입사원이 입사 후 3달 내로 휴가를 썼다면 이번 신입사원은 수습 기간 내에 휴가를 쓴다. 


연차 휴가는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근로자의 권리다. 여기에 대해서는 가타부타 논할 수 없다. 혹시 당신이 "나 때는 휴가는 무슨 주말에도 출근했는데"라고 말하고 있다면 후배들은 뒤에서 나지막하게 중얼댈지 모른다. "틀니 챙겨 가세요."


하지만 휴가라는 권리를 행사하려면 어느 정도 조직, 타인에 대한 배려와 센스를 발휘할 필요가 있다. 피곤한 사회생활이 아니라 타인에 대한 예의다. 내가 휴가를 가고 싶다고 다른 구성원들의 사정이나 시기를 살피지 않고 가는 건 민폐다. 아무 때나 권리를 행사하면 다른 동료들도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 결국 내가 내팽개친 업무, 책임은 당신의 선배, 후배, 동료들이 떠넘겨 받게 된다. 휴가를 쓸 때는 어느 정도 타인과 조율을 하고 바쁜 시기는 피하는 게 서로 스트레스 받을 일 없다. 책임을 다한 시점에서 권리를 행사하는 건 아름답다. 


결국 앞에 소개했던 대학 친구는 휴가를 간 후배 덕분에 일주일 내내 야근에 시달렸다. 6시 퇴근은커녕 주말에도 집에서 업무를 마무리했다고 한다. 요즘 분위기에 휴가 갖고 뭐라고 하면 꼰대 소리를 들어서 결국 아무 말도 못 했다. 시간이 꽤 지난 지금도 이를 간다. ‘걔는 아직도 똑같다’며. 그러면서 다음 인사 때는 다른 팀에 지원해보려고 한단다. 그 후배는 개인의 권리는 지켰을지 몰라도 회사 동료의 신뢰와 우정은 잃어버린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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