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수의힘 May 31. 2023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삶

잘하는 일이 아닌 좋아하는 일

 우리 때만 해도,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이미 진로는 결정 난다고 봐야 했다. 문과와 이과의 벽은 남녀 성별의 차이만큼이나 확고했고, 문과는 이과의 직업을 가질 수 없었다. 고등학교가 비평준화인 지역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해당 지역에서 가장 공부를 잘하는 인문계 고등학교를 진학했다. 수학을 못한다고 생각했던 적은 그때까지 한 번도 없었는데, 지역의 날고 기는 아이들 앞에서 내 수학 점수는 너무 초라했고, 수학에 대한 자신감을 잃어버리는 것은 1학기면 충분했다.

  2학년이 되기 전, 문과와 이과를 고르는 상담에서 담임 선생님은 문과를 권했다. 당연하게도, 수학 성적이 높지 않기 때문이었다. 국영수 3과목 중 그래도 국어의 성적이 영수보다는 높았기 때문에, 국어에 재능이 있다는 말을 덧붙이시면서. 아마 그나마 국어 성적이 좋았던 것은 당시 유행하던 판타지 소설이나 무협지 등을 많이 읽어서였겠지만 나도 그 당시에는 국어를 잘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권유를 저항 없이 받아들였다. 

  2학년 이후부터는 본격적으로 국어 공부를 시작했다. 난 문제집 수집가였다. 시중에 새로 나온 문제집이 있으면 사지 않고서는 참지를 못했다. 어떻게든 부모님을 졸라 문제집을 사서 집에 돌아오면 마음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문제집을 사고, 풀고 하는 동안 원래 있었던 재능이었는지 아니면 그렇게 공부해서 생긴 재능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름 국어에 대해서 만큼은 자신 있는 사람이 되었다. 당연히 3학년 진로는 국어교사로 정했다. 국어를 잘해서 할 수 있는 직업이 많지 않았을뿐더러, 당시는 IMF의 영향이 남아 있었던 시기라 안정적인 직업에 대한 수요가 폭발하던 시기였다. 나도 그 흐름에 몸을 싣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 고등학교에서 느꼈던 충격을 다시금 느꼈다. 나름 국어를 잘한다고 생각하고 들어왔지만, 나보다 잘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다. 특히 어렵게 느꼈던 건 문학과 독서였다. 진심으로 문학과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내가 수능을 보기 위해 배웠던 것들은 이들 앞에서는 부족했다. 점점 학과 공부와는 멀어지기 시작했고 대신 더 재미있어 보이는 일을 찾아다녔다. 동아리 활동을 했고 기타를 배우고 노래를 불렀으며 매일 다양한 사람들과 술을 마셨다.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를 다녀온 후, 학원 강사 또는 학교의 인턴 교사 자리 등을 전전하며 임용을 준비했다. 내가 스스로 잘한다고 생각했던 나의 능력은 이미 초라해져 있었고, 아무런 자신감도 없던 상태에서 제대로 된 준비 없이 시험을 응시하는 생활이 반복되었다. 누구에게나 어려운 시절은 있을 것이다. 현재 시점에서 내 인생에 가장 어두웠던 시기가 바로 이 시기였다.

 지역 사립고등학교의 기간제 교사 모집도 뜨는 대로 다 지원했다. 이 시기에는 대학 성적증명서가 지원서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했기 때문에 지원하는 족족 떨어졌다. 사범대 학생들은 거의 대부분이 성실한 사람들이라 평균학점 3.0 이하가 거의 없다. 그리고 그 거의 없는 특이한 사람이 바로 나였다. 심지어 면접에서 면전에 대고 '다 맘에 드는데 학점이 좀...'이라고 말하는 사람까지 있었다.

 몇 년을 그렇게 허송세월하다 간신히 1년 기간제 교사 자리를 구했다. 나중에 듣고 보니 학교에서 급하게 사람을 뽑아야 하는 상황이어서 대학교 성적이나 경력 등을 참고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면접을 보러 가기  전 학교 홈페이지에 쓰여 있는 말들을 거의 다 외우고 갔다. 덕분에 좋은 평가를 받아 채용이 되었고, 그 이후로 10년 동안 기간제 교사 생활을 했다.

  10년 동안의 기간제 교사 생활이 즐겁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좋은 학생들을 많이 만났고, 그들을 가르치는 시간 동안 많은 행복을 느꼈다. 학교와 학생으로부터 나름 인정받는 교사라 생각했고, 더 인정받기 위해 매일매일 노력했던 시기였다. 아마 내 인생에서 가장 뜨거웠던 시기로 남지 않을까 싶다.


  40대가 된 지금에야 난 다시 내가 좋아하는 일로 돌아왔다. 비록 내 실력이 20대부터 이 일을 해온 사람에 비해서는 한참 부족하다는 것을 잘 안다. 이 일이 내 전공도 아니고, 제대로 배워 본 적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스스로 잘한다고 생각했던 일을 할 때보다 더 많은 행복을 느끼고 있다. 

  내가 잘한다고 생각했던 일을 하던 시기는 끊임없는 경쟁의 시기였다. 임용시험뿐 아니라 동료 기간제 교사 선생님들과의 보이지 않는 경쟁도 있었다. 내가 져서 학교를 나갈 때도 있었고, 내가 이겨서 학교에 남아 있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겼다는 사실이 날 행복하게 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그 일을 필요로 하는 이가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나에겐 가장 큰 행복임을 깨닫기까지 참 오래 걸렸다. 10년 뒤에도 20년 뒤에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