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딸 파업 14편
1인분의 자유
앞선 글에서는 내 마음을 챙기는 직장 생활을 다루었다. 이번 편에서는 회사가 아닌 내 집에서의 생활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우선 나는 걱정했던 것보다는 1인 살림을 곧잘 해냈다. 워낙 꼼꼼한 성격이라 처음 보는 세탁기도 인터넷에서 매뉴얼을 찾아 사용법을 익혔고, 식비를 통제하기 위해 근처 시장과 마트를 적극적으로 돌아다니며 장을 봤다. 이외에도 병원, 약국, 헬스장 등 동네의 인프라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살고 있다.
1인 살림가의 가장 좋은 점은 집안일을 내가 원하는 주말에 몰아서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본가에 있을 때는 엄마가 원하는 때에 집안일을 해야 했고, 눈치를 보는 탓에 치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에 쉴 새 없이 집안을 정리하고 치웠다. 4인 식구였기에 장도 엄청난 양을 봤고 나뿐만 아니라 식구들의 니즈를 고려해야 했다. 때문에 내 머리는 24시간 쉬지 않고 집안과 식구들에게 집중하느라 지쳐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혼자 있으니 머리카락이 좀 있어도 거실화를 신은 채 한쪽 구석에 슥 몰아놓고 나중에 치운다. 청소나 빨래도 필요할 때, 원할 때 조금씩 하거나 피곤하면 주말에 몰아서 한다. 장을 보러 갈 때도 미리 정해둔 것만 사는 편이라 크게 피곤할 일이 없다. 생활 패턴이 자유로워지면서 피로도가 놀라울 정도로 낮아졌다. 물론 직장이 가깝고 출퇴근이 편해서일 수도 있다. 그러나 매일 점심 도시락을 싸는 수고도 있으니 꽤 바쁘게 사는 셈인데, 이런 점을 감안하면 변화가 참 놀랍다. 퇴근하고 눈치 보이지 않으니 저녁만 해 먹고 원하는 시간까지 푹 쉬다가 설거지를 한다. 역시 1인분이라 양이 적어서 금방 끝난다.
이외에 소소한 자유는 바로 천연수세미와 설거지 비누다. 오래전부터 나는 제로웨이스트 살림을 하고 싶다는 로망이 있었다. 하지만 본가에는 선물 받은 아크릴 수세미가 가득했다. 대신 내가 제로웨이스트 박람회에서 사온 천연수세미 하나가 내 방 한구석에 있었다. 베란다에 출처를 모르는 설거지 비누도 하나 있었지만, 엄마가 거들떠보는 일은 없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살림을 하기엔 엄마의 영향력이 막강했기에 이야기를 꺼낼 엄두도 못 냈다. 그러던 차에 독립하게 되어 지금은 본가에 있던 천연수세미와 설거지 비누를 자취방에서 쓰고 있다. 거품도 잘 나고 향긋해서 잘 쓰고 있다.
1인분의 앞가림
달콤한 자유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이다. 제일 큰 책임은 바로 월세다. 고정비가 생겨서 생활비 통제는 필수가 되었다. 이전에도 근검절약하며 살았지만, 혼자 살게 되면서 수입과 지출 관리를 더 빡빡하게 하게 됐다. 잠시 쉬었던 가계부도 5월 들어 다시 쓰기 시작했다.
대신 혼자 사니 불필요한 지출이 줄었다. 본가에서 살 때는 부모님에게는 필요하지만 내게는 불필요한 지출이 종종 있었다. 예를 들어 외할머니께 정기적으로 보내는 영양식 음료라든지. 그 음료는 2달에 한 번 보냈는데, 거의 8만원이 들었다. 통신 요금도 아까워서 월에 1만원이 조금 넘는 알뜰폰 요금제를 쓰던 내게는 너무 큰 지출이었다. 그 지출은 지금 오빠가 감당하고 있다. 언젠가 오빠도 독립하게 되면 그 비용을 부담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솔직히 나는 외할머니를 위한 음료를 주문할 때마다 엄마가 해야 할 효도를 내가 대신 하는 것 같아서 부담스러웠다. 그 사실을 독립이 임박해서야 말씀드렸다. 할머니께 보내는 음료만 1년으로 환산하면 48만 원이라고, 구체적인 금액을 말씀드리니 그제야 내 부담을 이해하신 듯했다.
본가에 붙어서 살아온 세월은 내게 여러 감정을 안겨주었다. 서른이 넘어서도 부모님께 경제적으로 의존한다는 초라한 느낌과 동시에 부모님을 경제적으로 지원해드려야 한다는 부담이 함께 있었다. 그 어느 쪽도 결코 건강한 감정은 아니었으리라. 어쩌면 나는 진정한 자유를 누리기 위해 독립한 것일지도 모른다.
경제적인 독립 이야기는 이만 줄인다. 나는 우울증이 나아지면서 현실적인 고민을 다시 하기 시작했다. 지출은 월세와 보험료 등 고정비가 있어서 통제에 한계가 있다. 그러나 수입은 내가 마음만 먹으면 늘릴 수 있다. 직장 월급 같은 경우에는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 칼퇴근하는 지금의 생활이 좋아서. 다만 퇴근 후 남는 시간에 부수입을 창출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브런치에서는 수익 창출이 어렵지만, 이외에 출판사 계약이 필요한 상업적인 글을 써보려 한다. 한동안 쉬었던 장르의 글이라서 쉽지 않겠지만,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더불어 블로그를 새로 시작할 계획이다. 나는 재능 판매 사이트에서 글쓰기 관련 컨설팅을 종종 해왔는데, 블로그를 키워서 그 서비스를 홍보해보려고 한다. 새로운 도전이지만, 이전에 잠깐 운영했던 창업 블로그를 통해서도 종종 수익이 나고 있어서 꾸준히만 한다면 어떻게든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나는 요즘 내 앞가림 하기도 바쁜 삶을 살고 있다. 수입과 지출을 관리하는 것은 미래를 위한 계획 중 일부이다. 코앞에 닥친 어려움이기도 하지만, 내 삶을 스스로 개척한다는 기분은 말로 형용하기 어려울 만큼 짜릿하다. 나는 언제 우울증을 겪었냐는 듯, 빠르게 나아지고 있다. 앞으로도 나의 독립 라이프는 내 마음이 진정한 쉼을 누릴 수 있는 수단일 것이다. 그리고 독립 외에도 이런 수단을 늘리는 것이 간절한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