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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Jun 20. 2022

4. 언어의 냄새

오해하지 말고 들어

<기본 문형>
오해하지 말고 들어

<응용 문형>
이 얘기를 해야 하나 모르겠지만
기분 나쁘라고 하는 얘기는 아닌데


I    이미 소모한 감정을 가져와 상대방에게 전염시키려는 비겁함    


친구와 오랜만에 카페에 왔습니다. 모처럼 차 한잔을 하자는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죠. '아니, 술 한 잔도 아니고 남자 둘이서 무슨 커피냐?'라고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이내 삼킵니다. 이 친구가 진지하게 만나자고 하는 것도 흔히 있는 일은 아니었으니까요. 오늘은 어인 일일까요? 나보고 먼저 자리 잡고 앉아 있으라고 하고는 커피값을 지불합니다. 그를 멀리서 바라보는데 어찌나 친구가 든든하던지요. 진동벨이 울리자 몸소 달려가 차 두 잔을 다소곳하게 받아 들고 옵니다. 한참을 의미 없는 질문들을 하더니 꼰 왼쪽 다리를 오른쪽 다리로 바꾸며 말을 꺼냅니다. "오해하지 말고 들어!" 


갑자기 오만 가지 생각이 듭니다. '오해를 하지 말라고 했으니 오해를 하지 않아야겠지? 우린 친구니까! 근데 내가 오해를 할 생각조차도 하지 않았으니 그대로만 있으면 되는 거잖아. 근데, 자꾸 오해하고 싶어 지네? 당나귀를 생각하지 말라고 하니까 자꾸 당나귀가 생각나서 미치겠다. 이 자식, 술자리에서 맨날 계산할 때 없는 신발끈도 만들어서 고쳐 매던 녀석이 무슨 일로 차값을 지불할 때부터 말렸어야 했어. 가만 보자. 지난주에 동창모임 카톡방에서 나간 후 오늘 처음 본거지? 내가 뭘 서운하게 했나? 아냐 아냐 아무것도 없어. 분명히!'


여러분들은 말머리에 이 표현을 먼저 듣게 된다면 어떤 기분이 드나요? 그리고 말하는 이는 어떤 심정일까요? 무언가 단단히 마음을 먹고 말을 꺼내는 인상을 주기에 상대방은 잔뜩 긴장을 하게 되고 표정이 굳어지고 생각이 복잡해집니다. 그리고 오해를 하지 않고 들을 내용이라는 것이 무척이나 궁금해집니다. 법정 스님도 말했듯이 '자네는 이해를 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늘 오해하고 있는 걸세'처럼 이해를 시키려 열심히 노력해도 말의 불완전성은 오해를 낳는 것이 다반사인데 굳이 말도 하기 전에 오해하지 말라고 하니 뒤에 나올 이야기들은 단단히 오해의 여지가 다분해 보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대체로 말하는 이의 감정이 한쪽으로 치우쳐버려 스스로 각오하고 말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자신의 마음을 완고해진 상태로 준비하려는 것을 입 밖으로 내뱉은 것에 불과합니다. 비슷한 표현으로 '기분 나쁘라고 하는 얘기는 아닌데'도 그렇습니다. 이미 내가 기분이 나빠있는데 그걸 나만 안고 있자니 억울한 면도 있고 너는 잘 모르는 것 같으니 같이 유사한 감정상태를 공유하자는 심보도 있는 거죠.     



II    좋은 대화의 핵심은 상대를 편안하게 해주는 것


항상 대화에서 아름답고 숭고한 이야기만 나눌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늘 좋은 분위기와 기분일 수만도 없죠. 하지만 어떤 자신의 어려운 결정이나 진짜 상대가 오해를 느낄만한 이야기라면 더욱 신중해야 합니다. 우리는 말하는 이가 사용하는 단어나 어투, 표정을 통해 말의 내용보다 의도를 먼저 알아차리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오해하지 말고 들어'는 말하는 이의 단호함과 미리 배려한다는 -그야말로- 오해에 비해 다소 효과적이지도 않은 표현입니다. 차라리 살짝 바꿔서 활용하면 이벤트 표현이 될 수도 있겠네요. 

-오해하지 말고 들어. 넌 이미 내가 보기에 최고야. 너만 알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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