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문형>
거의 다 오다
<응용 문형>
거의 도착했어요
목적지에 가까워졌습니다
I 몸과 마음의 이동이 결코 일치하지 않음을 증명하는 언어
약속 장소에 먼저 와 있는 사람이 아직 도착하지 않은 사람에게 전화를 겁니다. '어디쯤 왔니?' 어김없이 그는 말합니다. '거의 다 왔어.' 여러분은 이 말을 듣게 되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그래, 그럴 수도 있지. 배차간격이 조금 벌어져 몇 분 늦는 건데 괜히 내가 성급하게 다그쳤네.'라는 생각보다는 '이제 중간쯤 왔겠군' 아니 '이제 출발하는지도 몰라'라는 생각이 더 많이 들 겁니다. 우리가 약속을 한다는 것은 미래의 어느 시간과 장소에 나의 육체와 함께 나의 마음을 고스란히 가져다 놓겠다는 것입니다. 약속은 곧 예언입니다. 그것도 엄청 무섭고 기적에 가까운 예언입니다. 우선 약속이 성사되려면, 나와 상대방이 미래의 그날까지 모두 살아있다는 전제가 있습니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생에서 어제도 살아있었으니 내일도 살아있을 거라는 오만한 생각을 하면서 우리는 약속을 합니다. 설령 그날까지 모두가 살아 있더라도 과거의 어느 날 기약했던 그 마음이 여전히 약속일에도 변치 않아야 한다는 참 쉽지 않은 조건 또한 충족되어야 합니다. 그것도 한쪽만이 아닌 양쪽 둘 다의 마음이 약속 장소에 적극적으로 가야 합니다. 그러나 매일의 바이오리듬과 오늘의 운세처럼 약속한 시점만큼 약속된 시점의 의욕이 동일하기는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 만남의 구성원 수가 많으면 그 불일치의 가능성은 더 높아집니다. 투철한 시간 개념이나 성향에 따라 먼저 도착하기도 하지만 더 그리운 이가 늘 기다립니다. 이쯤 해서 상대방이 도착지점으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오는 중에 이 말을 했습니다. '거의 다 와 가'. 묻는 이는 '니 몸뚱이가 어디쯤 오고 있냐' 고 말한 건데, 답하는 이는 '내 마음은 이미 도착지점에 와 있다'라고 말하는 것이죠. 그러니 상대방의 답변은 그리 틀린 것만은 아닙니다. 마음의 느긋함이 몸의 움직임을 더디게 했을 뿐 마음이 없는 것도 아니고 몸을 두고 온 것도 아니니 말입니다. 몸과 마음이 함께 움직여야 할 때 그 불일치를 보여주는 표현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네요.
II 때로는 힘겨워하는 누군가의 등을 가볍게 밀어주는 말이 있어요
모처럼 건강을 위해서 마을 뒷산을 오르고 있습니다. 운동이 부족한 탓에 자주 걸음을 멈추고 정상을 바라봅니다. 그러나 빽빽한 나무들과 구부러진 길 때문에 정상은 보이지 않습니다. 잠시 쉴까 생각하는 참에 저만치 앞에서 등산객이 웃으며 내려옵니다. '저기요, 정상이 아직 멀었나요?' '거의 다 왔습니다'. 다시 기운 내서 걸음을 재촉합니다. 아무리 가도 정상은 나오지 않고 배신감만 밀려옵니다. 아까 등산객은 무슨 연유로 내게 거짓 정보를 알려주었을까요. 과연 그의 말은 거짓말일까요? 내가 예상한 '거의'보다 한참을 걸은 후에야 드디어 정상에 올랐습니다. 정상의 공기는 저 아래의 그것보다 상쾌했고 달콤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해 봅니다. 아까 등산객이 '지금 등반이 서툰 초보 신 것 같은데, 그 체력으로는 아마 끝까지 가지 힘드실 것 같네요. 경험자로서 조언을 드리는 건데 걸음을 돌리시는 건 어떠세요?'라고 말하거나 '정확하게 앞으로 29분 14초 후에 가파른 고비가 올 거예요 그로부터 41분 30초를 더 가시면 정상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라고 정확한 정보를 알려준다면 정상까지 갈 엄두가 났을까요. 그의 부정확하고 가벼운 답변이 오히려 지속할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러나저러나 힘겨운 요즘입니다. 당신은 누군가에게 어떤 힘이 되는 말을 하거나 들어본 적이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