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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숲오 eSOOPo Jul 04. 2022

17. 언어의 냄새

알다가도 모르겠네

<기본 표현>
알다가도 모르겠다

<응용 표현>
참, 알다가도 모르겠어


I    그림자처럼 변하는 상대의 무정형을 새삼 인식하는 언어


가끔씩 길을 걸어가다가 멈추어 뒤를 돌아봅니다. 공기를 가르며 걸어온 이 길이 과연 내가 가려고 했던 길인가 하고 갸웃합니다. 나 스스로 결정한 걸음들도 이러할진대 타인의 마음은 오죽할까요? 그가 보여준 것만 보고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상황에서 보여 주는 것만 가지고 상대를 알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상대는 언제나 나의 편견들의 조각들로 만들어진 이미지를 전복시킬 가능성을 품고 있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놀라지 마세요. 몰랐던 걸 이제야 알게 된 것이지 알았다가 모르게 된 건 아니니까요. 그래서 조금 아는 것이 더 위험한 건지도 모르겠어요. 실망의 감정이 담겨 있습니다.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내가 아는 것들을 다시 업그레이드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됩니다. 상대를 알려고 하는 것은 무모한 그림자밟기 놀이 같아요. 눈에 보이는 듯 하지만 만질 수도 잡을 수도 맡을 수도 없어요. 그런데 상대의 그림자 위에 있으면 그림자를 밟고 그 안에 있는 것이라 착각을 하죠. 그때 우리는 잠깐 머무르는 동안 상대를 알았다고 느끼나 봅니다. 마치 빛에 따라 그림자의 형태가 변하듯이 상대는 상황에 따라 다르게 자신을 보여줍니다. 때로는 극과 극의 모습이라 당황스럽지만 그때도 그 사람이고 지금도 그 사람이 맞습니다. 그러니 알다가 모르고 모르다가 알아가는 겁니다.



II    변함없음이 더 끔찍할 수도 있어요


무엇보다도 누군가를 모르면서도 계속 알아가고 싶어 한다는 것에 의미를 두어야 합니다. 그리고 어떤 형태로 고정되어 있다는 것이 무서울 수도 있어요. 대상에 대해 완전히 알 수도 없지만 완전히 아는 것도 의미가 없는 일이죠. 결말을 알아버린 영화에 시들해지듯이 현재성은 삶을 유일하게 만들고 가치 있게 만들죠. 그래서 저는 계속 당신을 모르고 싶어 집니다. 당신에 대한 무관심이 아닌 무한한 변형 가능성을 믿으니까요. '오늘도 알다가도 몰라서 너무 다행스럽고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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