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감당의 연속일지도 모릅니다. 지난 한 달간 사용한 물과 가스와 전기료를 감당하기 위해 일을 합니다. 지난주 계약한 프로젝트를 약속된 기간 내 감당하기 위해 시간을 보냅니다. 며칠 전 연인에게 고백한 말을 감당하기 위해 오늘 밤 분홍빛 편지지 앞에서 하얗게 지새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뒷감당하는 유일한 동물일지도 모릅니다. 호모 뒷감당쿠스!
이러한 감당 거리로 둘러싸인 나에게 누군가 이렇게 말해준다면 어떨까요? '걱정 마! 나만 믿어!' 등에 메고 있던 큰 짐을 내려놓는 홀가분한 기분이 듭니다. 게다가 마음마저 든든해집니다. 불신이 만연한 이 시대에 누군가를 온전히 믿는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런 불신의 크기만큼 어딘가에 고스란히 의탁하고 싶은 것도 사실입니다. 경계가 단단한 이가 오히려 이 같은 말에 쉬 무장해제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허술하고 허세기있는 이 표현이 의외로 심쿵하게 만듭니다.
'나만'이라고 말함으로써 믿어야 할 대상이 구체적이라는 것이 이 말에 힘이 실립니다. 게다가 그 신뢰의 당사자가 내 눈앞에 있는데 얼마나 든든할까요? '믿어'는 명령형입니다. 나를 이롭게하는 명령은 공포가 아닌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이만큼 듣는 이를 꼼짝 못 하게 제압하는 언어가 또 있을까요?
II 때로는 자신을 가두는 경우도 있어요
이 표현 앞에 '나는'이라고 붙이면 세상에서 가장 고독한 말이 됩니다. 온갖 세상 풍파에 상처받고 돌아와 너덜너덜 해진 자신의 처지와 모습을 푸념하듯 말하는 듯합니다. 어느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태일 때가 우리는 가장 슬프고 나약한 존재가 됩니다.
하나의 언어가 이렇게 극단적인 표정을 담고 있는 경우가 또 있을까 할 정도입니다. 자신감 있는 그 이면에는 외로움을 혼자서 감내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닮은 언어 같습니다. 여러분은 누구에게 거침없이 나만 믿으라고 말할 수 있나요? 또 누구에게 나만 믿으라는 말을 듣고 싶으신가요?